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아무도 소녀의 마음을 겨울바다처럼 외롭고 차갑게 만들지는 않았을 거예요.
사춘기 소녀는 예전에 가질 수 없는 고뇌가 생겼고 생각이 많아졌겠지요.
천방지축 아이는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디로 가는지 많은 생각들을 하기 시작했을 거예요.
그 깊은 생각이 소란스러운 외부로부터 떨어져 나와 스스로 외롭고 기다림에 사무친 감정을 느끼게 했던 거겠지요. 지금 생각해 보아도 이 당시 소녀는 정말 밝고 쾌활한 아이였어요. 통지표에는 항상 '교우관계가 원만하고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고'라고 적혀 있던 소녀는 겨울바다처럼 적막하고 고요할 새가 없없어요. 친구들과 재잘재잘 웃고 작은 것 하나에도 웃음이 터져 나오던 아이였습니다. 까르르 웃다가도 혼자가 되면 깊은 생각을 하며 왔다 갔다 하는 소녀는 드디어 사춘기가 시작되었나 봐요.
그 당시 저는 제가 생각해도 사춘기이다 싶었어요.
거울을 너무 자주 보는 거예요. 한 번도 언니, 오빠에게 큰 소리를 내보지 못했던 것 같은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큰 소리도 내기 시작합니다. 나이 차이가 났던 언니 오빠가 어려웠던 막내는 어린양이나 생떼를 부렸을지는 몰라도 정면으로 덤비거나 반항 한번 해보지 못했어요. 스스로 세상에서 막내가 제일 착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컸으니까요. ㅎㅎ 언니, 오빠를 향해 불만을 내비치는 스스로의 모습에 '오! 내가? 이것이 바로 사춘기?' 하며 스스로 놀랬던 기억이 나요. 가정 시간에 교과서에서 사춘기에 대해 배우는데 사춘기가 되면 나타나는 증상의 대표되는 모습이더라고요. 수업을 들으면서 '사춘기'구나 생각했어요.
딸아이가 14살 꿈 많은 중1이 되었어요.
이 아이도 딱 사춘기 맑음과 흐름을 왔다 갔다 해요.
누군가 말 하지요.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수가 없다고요."
엄마는 말합니다. "사춘기와 재채기는 숨길수가 없다고요"
동생들과 마냥 천방지축 "하하호호 낄낄 깔깔"하다가도 급 저기압이 됩니다.
목에 힘을 주고 목소리를 깝니다. 그리고 혼자 있고 싶은지 "좀 조용히 좀 해줄래"하며 동생들의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표현이 과장되고 확대 해석을 하는 것도 같습니다. 그런 딸아이의 모습을 보며 딸아이가 드디어 깊은 사색의 항해를 떠나고 있구나 생각합니다. 딸은 그 당시 저와는 다르게 엄마를 붙들고 많은 얘기들을 합니다. (이마저도 엄마의 착각일 수 있습니다. ㅎㅎ 비밀 보따리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딸아이가 엄마를 붙들고 이 얘기 저 얘기를 쏟아내면 때로는 '얼굴도 모르는 각 반 아이들의 연애사를 내가 왜 들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예전의 저와 같이 거울 앞에 한참을 앉아있는 딸, 혼자 무언가를 쓰거나 생각하는 딸을 보면 엄마는 그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주고 함께 웃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느새 더 많이 커버려 아무 말 없이 많은 일들을 해나갈 때가 오기 전에 말이지요. 이렇게 시답잖은 대화들로 함께 웃었던 시간들을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 오늘도 엄마는 딸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