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에서 통영으로 건너온 후 우선 카페에서 당 충전을 좀 했다. YG쌤의 폭풍 검색으로 찾아낸 힙한 카페는 통영에서 꽤 유명한 곳인지 사람이 아주 많았다. 운전 요정 덕분에 늘 차를 타고 이동하기는 하지만 여기 저기 걷다 보면 하루 만 보 이상은 기본이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감정 소모까지 잔뜩 하다 보면 중간 중간 카페를 꼭 들러줘야 한다. 덕분에 역사 답사를 다니며 전국의 숨겨진 카페를 탐방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앙버터가 씹히는 약과쿠키, 시럽과 버터가 뿌려진 빵을 먹으면서도 마음은 계속 콩콩거리며 진정되지 않았다. 학수고대하던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통영에 내려온 이유, 이번 답사를 기획한 이유! 이 카페 바로 근처에 이순신 장군이 왜놈을 무찌른 그 바다가 있다. 삼도수군 통제사 이순신이 머물던 통제영이 있는 '한산섬 달 밝은 곳'으로 건너갈 수 있는 바다다. 표를 끊고 여객선을 타러 선착장으로 나가니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봉산탈춤을 춘다. 이렇게 바람 부는 바다에서 싸우셨다니... 덕후의 가슴엔 벌써부터 울컥 무언가 차오른다.
이 넓고 푸르고 깊은 바다에서 수백 년 전에 어떤 치열한 울음들이 있었을까 생각해보는 것만으로 전율이 끼친다. 파도가 세게 칠 때마다 바닷물이 높은 뱃전에까지 튀기는데, 숨이 벅차게 몰아치는 바닷바람이 시원하고 좋지만 우뚝 서 있기도 힘든 순간이 있다. 어떻게 여기서 목숨 걸고 싸움까지 한 것일까.
우리가 탄 여객선에 태극기가 위풍도 당당하게 걸려 있는데 바람에 따라 휘날리는 모습에 감수성 빼면 시체인 나는 또 울컥한다. 너무 자주 울컥하니 T교사인 MZ쌤은 이젠 내가 신기해보이는 듯하다. 본인은 역사 공부를 하며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이입하지는 않는다고. 그래서 나는 역사적 사실보다도 사람에게 더 이입하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역사에 흥미를 갖게 된 계기도 '사람'이었다. 어쩌면 나는 '역사'가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를 탐구하고 있는 것일지도.
왕복 도합 30분 정도의 짧은 여객선에서도 '사람'과 관련된 해프닝이 생겼다. 배를 운항하는 선장님(?)은 가만히 실려가지 않고 자꾸 바닷바람을 맞으러 나가는 우리를 어여삐 보셨는지 특별히 불러다가 태극기 앞에서 사진도 찍어주시고, 거북선 등대를 지날 땐 하나밖에 없는 거라며 얼른 찍으라고 귀띔도 해 주셨다. 그리고 드디어 그 한산섬에 도착했는데...
여길 통과하여 쭉 올라가면 장군이 수하들과 작전 회의 등을 하던 제승당, 그리고 시와 고뇌를 읊던 수루도 있는데... 우리는 못 들 어 갔 다...
이유는 시간을 잘못 알았기 때문이다. 동절기여서 그런지 통제영을 통제하는 시간이 마침 우리가 간 날 딱 앞으로 당겨진 것. 여객선 측에서는 그 사실을 놓치고 늦은 시간에 섬에 당도하는 운항을 한 것이다. 아, 내가 이걸 보려고 서울에서 여기까지 내려왔음을 담당자에게 읍소하고, 강아지같은 눈망울도 지어보고, 불쌍해서 열어줄까 봐서 다른 손님들 다 떠날 때 떠나지 않고 미적거리며 앞에 있어보기까지 했다. 특히 우리의 YG쌤은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의 인간화로서 어떤 난감한 상황에도 꼭 부딪쳐 보아 우리가 원하던 바를 이루게 해 주시는 분이었는데, 이번에는 모두 통하지 않았다. 설상가상 빗방울이 흩뿌려지기 시작. 결국 처량하게 돌아나왔는데, 이런 우리를 보고 선장님은 너무 미안해 하셨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빗방울이 미스트처럼 퍼지는 속에 침울하게 여객선은 다시 통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여객선 회사측에서는 우리에게 뱃삯을 돌려주었다. 그거 얼마 한다고... 돈 벌자고만 한 일은 아니겠지만 돌아올 때 괜히 울적해보이던 선장님의 얼굴과 어깨가 자꾸 떠올라 나는 마음이 너무나 안 좋았다. EK쌤은 내 마음이 여린 것이 본인의 따님과 꼭 닮았다며 착해서 잘 살거라고 덕담을 해 주셨다. 덕담엔딩.
왠지 몽글몽글한 맘을 안고 옮겨간 곳은 이순신 공원. 늦은 저녁에 간지라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조선 수군을 향해서인지, 일본군을 향해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손을 뻗어 호령하는 장군의 동상이 서 있다. 위용이 엄청나다.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 조선의 남쪽 바다가 있다.
우리는 공원의 정자에 앉아 어두워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이순신 장군의 유명한 '한산도가'를 읊어보고 해석도해 보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할 적에
어디서 한 가락 피리 소리는 남의 애를 끓는가
이 시를 읽으면 저 장면이 그대로 그려진다. 어떤 소리였을지는 모를, 장군의 애를 끓게 한 그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 듯도 하다. 하루가 저물어 간다.
이틀째 밤, 통영에서 머문 숙소는 참으로 정갈하고 안온해서 하루밖에 머물지 않는 것이 아쉬운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또 맥주와 과자와 함께 대화를 하며 새벽을 달렸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다른 선생님들은 대화를 나누셨고, 나는 그 대화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하였다. 그리고 눈 번쩍! 아침이었다.
이번 답사의 알찬 마지막 하루를 위해, 조식이 오기 전 짧은 시간을 이용해 얼른 숙소 코앞의 충렬사를 다녀왔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 없고 적막한데, 날씨는 맑고 화창하여 충렬사 안에서 장군을 피부로 느끼는 기분이었다. 바닥에는 거북선을 의미하는 듯 거북이 모양의 돌이 있었다. 내부의 전시관에서 역사학적으로 가치가 높은 여러 유물들을 보고, 방명록도 남긴 후 숙소에 돌아왔더니
사장님이 충무김밥과 미역국으로 숙소를 닮은 정갈하고 가벼운 조식을 준비해 주셨다. 너무나 맛있었다. 먹으면서 통영과 관련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는 통영 출신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떠들었다. 다음에는 토지에 등장하는 지역을 따라 답사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든(?) 숙소를 뒤로 하고, 자극적인 서울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삼도수군 통제영을 보고 가기로 했다. 익히 알다시피 이순신 장군은 제1대(그리고 3대) 삼도수군 통제사 출신. 충청, 전라, 경상 삼도에 있는 모든 수군의 통제영은 얼마나 위용이 있을까?
엄-청 위용이 있다. 사실 나머지는 모두 복원된 건데, 이 세병관은 '찐'이다. 통제영의 객사로서, '은하수를 끌어와 무기를 씻는다'라는 심오하고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고 있다. 진짜 엄청 커서 아무리 뒷걸음질을 쳐서 찍어도 사진으로 한 장에 담아내기 힘들었다.
통제영을 내려가는 길에서는 통영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장군의 흔적들과 인사할 시간이다.
좀 슬플까봐 통제영 앞에 잔뜩 줄서 있는 가게에서 꿀빵으로 당 충전을 좀 하고, 시장에 가서 부모님이 시키신 멸치도 사고, 답사길 내내 이곳저곳에 있어 궁금증을 자아냈던 하삼동 커피에서 커피 한 잔씩 하는 것으로 답사를 마무리 했다.
영웅의 삶에서 느끼고 배울 수 있다는 것, 역사 공부가 주는 장점이다.
조선의 영웅, 나의 영웅.
시대의 부름 앞에서 묵묵히 책임을 다하는 자세.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 마음가짐. 일평생 한 번 겪기도 어려운 고통이 쏟아져도 피하지 않은, 그리고 무엇보다 고통의 무의미함과 꿋꿋이 맞서 싸운 끈기.
그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 넘치도록 충만했으며
학구적이고, 열정적이고, 따스하고, 계획적이고, 역사와 세상을 사랑하는 선생님들과 함께할 수 있어 벅차게 감사한 답사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