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잣집 같았던 그 집은 단층 주택 네 채가 마당 하나를 빙 둘러싼 구조였다. 그나마 눈뜨고 봐줄 만한 집이 주인집이었고, 우리 집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허름한 이웃집엔 모택동을 닮은 할머니와 삐쩍 마르고 신경질적인 할머니가 살았다.
삐쩍 마른 할머니는 닭을 쳤다. 할머니네 집 뒤로 닭장이 있었는데 얼른 생각해도 스무 여 마리는 됐던 것 같다. 그런데 개중 한 마리가 유별났다. 닭장은 있으나마나, 툭하면 울타리를 뛰어넘을 정도로 힘이 셌고 성격도 지랄 맞았다. 탈옥범 주제에 멀리 도망가기는커녕 마당에서 한가롭게 모래를 고르다 사람만 보면 부모 죽인 원수를 만난 듯 달려들었다. 어른 머리 꼭대기까지 날아올라 공격적으로 쪼아댔으니 어른들도 '미친 닭'이라고 부르며 피해 다녔다.
건너편 이웃 중에 임신한 언니가 놀러 왔다가 미친 닭에게 호되게 당하고 혼비백산한 적도 있었다. 지금 같으면 닭 간수 좀 잘하라고 항의를 하고도 남았겠지만 그땐 좋은 게 좋은 시절이었다. 어른들은 짐승이 어디 사람 마음대로 되겠냐며 그저 알아서 도망치라고 일렀다. 주인집 애들과 우리 4남매도 한데 모여 놀다가 미친 닭만 나타나면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곤 했다.
부모님은 종종 우리만 두고 집을 비웠다. 주로 제주도에 전화하러 가는 날이었다. 시외전화 요금이 비싸서 집전화를 두고 먼 공중전화 부스까지 가야 했다.
"엄마 아빠 없을 땐 언니가 부모나 마찬가지다. 말 잘 듣고 있어."
신이 난 언니는 권력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매번 엄마 아빠가 나가자마자 다짜고짜 우리 세 사람을 일렬로 꿇어 앉히고는 아무 이유도 없이 머리 한 대씩 쥐어박고 집안일을 시켰다. 우린 언니가 무서워 고분고분 말을 들었다. 난 어린 마음에 그런 언니가 멋있었고, 언니도 엄마 아빠를 따라 전화 걸러 가는 날엔 쌍둥이 앞에서 큰소리를 쳤다.
"야, 잇썌끼들아! 무릎 꿇어!"
"왜?"
큰누나 앞에서 똑같이 꿇어앉았던 작은누나가 느닷없이 센 척을 하니 통할 리 없었다.
"꿇으라면 꿇어!"
쌍둥이들은 코웃음을 쳤다.
"야, 잡아!"
한 놈이 내 뒤에서 두 팔을 잡아당겨 뒤로 꺾었고 다른 한 놈은 내 앞을 공격했다. 아, 녀석들이랑 헐크 호건과 워리어가 짐승처럼 날뛰는 WWE를 같이 보는 게 아니었는데.......
난 언니에게 밟히고 남동생들에게 치이는 가여운 둘째, 그 자체였다. 언니는 못 이겨도 두 살이나 어린 쌍둥이는 어떻게든 짓누르고 싶었으나 쪽수에서 밀리고 말았다.
쌍둥이가 운다. 나는 극강의 T이므로 공감하지 못한다. 내가 남자 한복을 입고 있는 이유는 지지난 회를 참고하시길.
그러던 어느 날, 거짓말처럼 쌤통 도라무통 깡통 같은 일이 벌어졌다.
여섯 살 난 쌍둥이가 나란히 유치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봉고차에서 내려 개천 나무다리를 건넌 뒤 손을 잡고 재잘대며 집으로 오던 쌍둥이는 그만 미친 닭과 마주쳤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쌍둥이와 닭 사이에 집으로 들어가는 뒷문이 있었다. 발만 동동거리던 쌍둥이들. 그런데 그때. 그나마 발육이 조금 빨랐던 형이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뒷문을 열고 잽싸게 안으로 들어갔다. 세이프였다. 간발의 차로 미친 닭을 따돌린 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뿔싸! 동생은 아직 밖에 있었다.
형은 미안했지만 도저히 문을 열어줄 용기가 나지 않았으므로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꼭꼭대는 닭 울음소리나 푸드덕대는 날갯짓 소리, 동생의 비명이 들리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밖이 유난히 조용했다. 상대는 미친 닭인데 무사할 리 없었다. 설마, 죽은 거야?
형은 용기를 내어 뒷문을 빼꼼 열었다. 그리고 듣고 말았다. 동생이 간절하게 애원하는 소리를.
"닭 님,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동생은 미친 닭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미친 듯이 빌고 있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동생의 정성에 감동한 미친 닭은 고개를 갸웃대다 얌전히 돌아갔다. 미친 닭과의 한판 승부는 그렇게 찜찜하게 막을 내렸다. 형은 가만히나 있을 것이지 걸핏하면 그 에피소드를 들먹이며 동생을 약 올렸고, 쌍둥이는 그 후 앙숙이 되어 나이 서른을 먹고도 눈만 마주치면 싸웠다.
나도 고등학생 시절에 막내가 얄밉게 굴기에 녀석을 놀리려고 이 사연을 이의정의 라디오에 보낸 적이 있었다. 당시 홍록기가 내 사연을 읽어주고 7만 원짜리 의류 상품권을 보내준 기억이 난다. 혹시 그 시절, 라디오를 통해 이 에피소드를 들은 적 있는 분이 있다면 댓글로 반갑게 인사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