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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Nov 14. 2023

쿨피스와 씨리얼

구토 파티

부르스타 폭발 사고와 미친 닭 사건을 겪은 후에도 그 집에서의 삶은 계속되었다. 아빠 혼자 벌어오는 수입으로 새끼 넷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쳐야 하는 부모님이 이렇게는 안 되겠다고 각성을 한들 마법처럼 갑자기 형편이 나아질 리 없었다. 엄마의 단짝이 찾아와 집 꼬락서니를 보고 오열을 해도 엄만 거기서 살아야 했다.


엄마는 예전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지금도 젊은애들 간다는 '스따빡스'에 가서 커피 시켜 먹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메뉴가 많고 어렵고 복잡해서 우왕좌왕할지언정, 딴 놈 다 하는 걸 내가 왜 못하냐는 무대뽀 정신이 있다.


그런 엄마가 어느 날 음료수 한 통을 사 왔다. 쿨피스였다. 지금이야 매운 떡볶이에 서비스로 딸려 와도 냉장고에 처박혔다가 버려지는 그 음료수가 당시 우리에겐 신세계였다. 엄만 양부터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이 정도면 넷을 먹이고도 남을 테니까. 하지만 한 컵씩 따르고 나니 끝이었다. 우린 어떻게든 아껴 먹으려고 최대한 조금씩 홀짝거렸지만 어느새 바닥난 잔에 코를 박고 남은 한 방울까지 핥기 시작했다. 한창 크는 시기, 먹성 좋은 네 놈 앞에 장사 없었다. 


일단 쿨피스는 합격이었다. 양도 많고 애들도 좋아하니까. 그렇다면 쿨피스 한 통을 더 오래, 더 배불리 먹일 방법은 없을까? 엄만 꾀를 냈다. 그리고 다음번 장을 볼 때 쿨피스 한 통과 식빵 한 줄을 샀다.


"와~ 쿨피스다~."


우리가 달려들자 엄만 상을 펴고 우리 넷을 둥글게 앉혔다. 그리고 커다란 대접에 쿨피스 절반을 따르더니 우리에게 식빵 한 조각씩 쥐여주며 말했다.


"찍어 먹어라."


"?"


"??"


우린 일단 엄마가 시키는 대로 식빵을 쿨피스에 찍어 입으로 베어 먹었다. 식빵이 입 안에서 달콤한 국물을 쭉 발사했다. 맛있었다. 쿨피스만 먹을 때보다 포만감도 느껴졌고 찍어 먹는 재미도 있었다. 돌아가며 지나치게 욕심을 낸 나머지 쿨피스 안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지체하기도 했는데, 그러면 식빵은 어김없이 녹아 떨어져 나갔고 나머지 세 사람은 갖은 타박을 다 했다.


엄마의 다음 타깃은 씨리얼이었다. 당시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는 콘푸라이트였는지 뭐였는지, 아무튼 광고를 꽤 많이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릇에 씨리얼을 붓고 우유를 촤르르~ 쏟아부은 다음 맛깔나게 와그작와그작 먹질 않는가.


엄마가 씨리얼과 우유를 사 온 날, 우리 넷은 쿨피스에 식빵을 찍어 먹을 때처럼 상에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엄만 국그릇 다섯 개에 씨리얼을 넣고 차례로 우유를 부었다. 하지만 광고에서 먹는 타이밍까지 알려준 건 아니었다. 게다가 매사 대충대충 하기로 유명해서 별명이 고 대충 여사인 우리 엄마가 설명서(?)를 꼼꼼히 확인했을 리도 없었다.


"일단 먹어 봐."


엄마는 씨리얼에 우유를 붓자마자 먹으라고 했다. 우유와 씨리얼은 완전히 따로 놀았다. 


"으~. 이상해."


"나 토할 것 같아."


우린 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막내는 그릇을 멀찌감치 밀며 헛구역질을 했다. 처음 먹는 씨리얼은 식감도, 맛도 이상했다. 엄마가 봐도 이건 아니다 싶었나 보다.


"우유가 좀 스며들어야 되나 보다. 좀 있어. 뒀다 먹어 보자."


우린 우유에 담긴 씨리얼을 방치한 채 TV를 보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지금인 것 같다."


엄마가 우릴 불렀다. 씨리얼이 우유에 완전히 절은 뒤였다. 씨리얼을 한 숟갈 퍼 올렸더니 축 늘어진 씨리얼이 제발 죽여달라고 애원하는 듯했다. 영 먹고 싶지 않은 비주얼이었다. 우리가 머뭇대자 엄마가 제일 먼저 용기를 내 한 숟갈 먹었다.


"으, 이거 뭐냐. 이런 걸 아침 대신 먹으라고? 순 사기꾼 놈들!"


우리도 한 숟갈씩 떠 넣었다. 그리고 줄줄이 다시 뱉었다. 


"웩~!"


아까부터 헛구역질을 하던 막내가 끝내 우르르 토를 쏟았다. 엄만 막내를 수습하고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씨리얼 그릇 다섯 개를 쟁반에 담아 전부 싱크대에 부어버렸다. 


"에이, 돈만 버렸네."


그후 우린 한동안 씨리얼 광고가 나올 때마다 눈을 흘기거나 콧방귀를 뀌거나 욕을 했다. 우리에게 씨리얼은 공공의 적이나 마찬가지였다.


훗날 한껏 세련되어진 우리는 씨리얼도 먹을 줄 아는 4남매가 되었다. 특히 씨리얼 토를 했던 막내는 시험공부를 하며 반 백수로 사는 동안 씨리얼을 주식으로 삼았다. 결혼한 언니는 가끔 친정에 들를 때마다 포대만 한 빅 사이즈 씨리얼을 사서 막내 방에 사식 넣듯 넣어주며 말했다.


"야, 여기 네 사료."


막내는 콧노래를 부르며 씨리얼을 말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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