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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Nov 18. 2023

10세, 최애 음료 막걸리

이게 다 모택동 할머니 때문이다

우리 옆집에 살았던 모택동 닮은 할머니는 푸근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그 할머니를 많이 의지했다. 할머니가 가출한 쌍둥이 형의 뒷덜미를 잡고 집으로 끌고 온 날부터.




엄마는 갈수록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기껏 서른서넛 밖에 되지 않은 젊은 주부가 감당하기엔 벅찬 생활고였으리라.


하루는 내가 콜라 한 병을 홀짝거리고 있는데 쌍둥이 형, 그러니까 4남매 3호가 한 모금만 달라고 들러붙었다. 먹을 것 앞에선 형제도 뵈지 않았던 때라 매몰차게 돌아섰더니, 약이 바짝 오른 3호는 한창 집안일을 하고 있던 엄마한테 달려가 징징거렸다.


"엄마, 누나가 콜라 안 줘~, 나도 콜라, 잉잉~"


어린 아들의 흔한 칭얼거림조차 받아줄 여유가 없었던 엄마는 3호의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치며 빽 소리를 질렀다.


"이 썅늠의 새끼, 콜라 안 먹는다고 죽어? 저리 안 가?"


3호는 분하고 서러웠다. 더 이상 이런 집에 있을 이유가 없었기에 주섬주섬 책가방에 짐을 싸기 시작했다. 왜인지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도 넣었다. 그리고 엄마한테 7년 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깍듯이 인사하고 집을 나갔다. 이미 내 고집과 떼에 이골이 난 엄마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그 후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어느덧 엄마의 머릿속에 3호의 가출이 희미해질 때쯤, 밖에서 모택동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 이 집 애가 기서 자고 있어. 그래서 끌고 왔다고."


밖으로 나가보니 모택동 할머니가 3호의 뒷덜미를 붙잡고 질질 끌고 오고 있었다. 씩씩대며 집을 나간 3호는 동구밖 비탈길 어디쯤에 앉아서 서럽게 울다가 깜빡 잠이 들었고 우연히 지나가던 할머니 눈에 띄었다. 누가 봐도 애 혼자 잠들기엔 이상한 장소였으니까.

 



그 후 엄마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할머니 방으로 건너가 수다 떨길 좋아했다. 우리가 종종 엄마를 따라가면 할머니는 옥춘 같은 사탕을 꺼내주셨고, 그래서 우리도 할머니를 잘 따랐다.


할머닌 가끔 내게 심부름을 시켰다. 언니는 새초롬해서 부려먹기 어려웠고 동생들은 심부름하기엔 아직 어렸으니 내가 제일 만만했을 터였다. 할머니의 주된 심부름은 걸어서 왕복 삼십 분이나 걸리는 가게에 가서 막걸리를 사 오라는 거였다. 남의 집 애한테 그 먼 데로 술 심부름을 시키다니, 지금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이지만 애초에 독거노인인 할머니의 수발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엄만 그냥 착한 마음으로 다녀오라고 했다.


짜증 나지 않았냐고? 아니. 할머니와 나, 사실 서로 윈윈이었다. 할머니는 겨우 몇 백 원으로 저렴한 심부름꾼을 살 수 있었고, 나는 할머니의 막걸리를 훔쳐 먹을 수 있었으니까.





난 그 심부름을 꽤 좋아했다. 당시 내 최애 음료가 막거리였기 때문이다. 내가 막걸리에 눈을 뜬 계기는 순전히 사고였다. 여덟 살 때 처음으로 모택동 할머니의 심부름을 하던 날, 지루함을 달래려고 막걸리 봉지를 앞뒤로 마구 흔들며 집으로 가고 있었는데 문득 손에 축축한 물기가 느껴졌다. 확인해 보니 병뚜껑 사이로 막걸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윽, 드러~."


본디 사람은 자기가 먹을 수 없는 음식은 오물 취급하기 마련 아닌가. 나는 얼른 옷에 손을 슥슥 닦고 냄새를 맡았다. 시큼하고 이상했다.


"우엑~"


그런데 이상했다. 자꾸 냄새를 맡고 싶었다. 몇 걸음 걷다가 냄새를 맡고, 몇 걸음 가다가 또 냄새를 맡았다. 신기하게 점점 구수한 향이 났다. 나는 병뚜껑 사이로 새어 나온 막걸리를 손가락으로 살짝 찍어 맛을 보았다. 이상할 줄 알았는데 달달하니 괜찮았다. 이내 병뚜껑을 할짝할짝 핥아 보았다(할머니 죄송...). 세상에, 쿨피스보다 맛있잖아!!


나는 좀 더 적극적으로 병을 흔들었고, 막걸리가 '치익~' 하는 신음과 함께 거품을 토하면 얼른 핥아먹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혼신의 힘을 다 해 막걸리를 훔쳐먹었다.


빵빵해진 막걸리 병을 본 할머니는 얌전히 들고 와야 술이 새지 않는다고 친절히 가르쳐주셨지만 그 말이 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할머니, 저도 막걸리 한 잔 주세요."...라고 말할 용기나 배짱은 없었기에 그 후로 오랫동안 심부름을 할 때마다 막걸리를 훔쳐 먹는 걸로 만족했다.


하지만 내가 막걸리를 끊은(?) 것도 3호 때문이었다. 3호가 이불에 오줌을 싼 날, 엄만 3호의 머리에 바구니를 씌우며 할머니한테 소금을 얻어오라고 했다. 3호는 오 분 후에 떨어질 날벼락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한 채 룰루랄라 모택동 할머니 집으로 달려갔다. 나도 재밌을 것 같아서 구경 갔는데, 인자하게 웃으며 소금을 가지러 들어갔던 할머니가 갑자기 악마로 돌변해 3호에게 마구 소금을 뿌리며 긴 나뭇가지로 3호를 때리는 것이 아닌가! 그 광경을 목격한 나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좋은 할머니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마녀였잖아! 난 그 후 막걸리 심부름을 해주지 않으려고 할머니를 피해 다녔다.


아무리 막걸리가 좋아도 내 동생을 때린 할머니는 미웠으니까.

(이럴 거면 그냥 콜라나 한 모금 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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