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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Nov 25. 2023

불안한 아빠, 신박한 언니

정반합

삶은 정반합의 누적이다. 합이 어느 쪽으로 쏠렸느냐에 따라 성향이 갈릴 것이다. 그런데 우리 언니는 합은 없고 언제나 정과 반만 있는 사람 같다. 이 세상에서 제일 이상하고 오묘하며 희한하고 신박한 인간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부동산 같은 건 제 감만 믿고 속전속결로 사면서 인터넷으로 삼만 원짜리 홈드레스를 살 때는 결정장애로 괴로워한다. S/S 시즌부터 원피스를 고르던 언니는 결국 F/W용 원피스를 기웃거린다.




언닌 아빠 앞에서 착한 딸 노릇을 하면서 아빠 몰래 일탈을 일삼기도 했다.


내가 대여섯 살, 언니가 일고여덟 살쯤 되었을 무렵의 일이다. 서울 연립주택에 살던 당시 언니는 부모님이 잠들면 몰래 집을 빠져나가 구멍가게에서 불량식품을 사 먹었다. 아빠는 백 원만 달라고 하면 이백 원을 주고, 새우깡이 먹고 싶다고 하면 자갈치까지 사다 주는 사람이었다. 물론 불량식품을 대하는 부모님의 태도 역시 더할 나위 없이 너그러울 때였다. 그런데 왜 굳이 오밤중에 집을 나가 몰래 군것질을 했을까? 그리고 나는 왜 꼭 끌고 가는 건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날도 언니랑 구멍가게 앞에 서서 엿 같은 걸 우물거리고 있었다.


"이놈들아! 거기서 뭐 하냐! 빨리 안 와?"


아빠가 저 멀리 집 앞에 서서 우릴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언니는 들켰다는 두려움보다는 반가움이 더 컸는지 아빠를 향해 해맑게 뛰어갔다. 나도 짧은 다리로 허둥지둥 언니를 따라갔다. 그런데 그때, 내 왼쪽으로 뻗은 골목 어귀에 근조(謹弔) 등 하나가 흔들거리는 게 보였다. 그 어린 나이에 한자를 알 리 만무하고 그 등이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압도적인 공포가 날 덮쳤다. 난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아빠는 언니 손을 잡은 채 계속해서 내 이름을 불렀지만 내 두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두 발이 땅에 달라붙은 것 같았다.


"으앙~"


내가 거기 선 채 울음을 터뜨리자 아빠가 다가와 날 들쳐 안았다.


"혼날 짓 한 줄은 아는구먼? 괜찮다. 뭐라고 안 할 테니 울지 마라."


아빤 날 다독이며 집으로 들어갔다. 난 아빠 어깨에 숨어 그 등을 힐끔거렸는데 다시 봐도 무서웠다. 결국 언니의 일탈은 그날로 끝이 났지만 최대 피해자는 나였다. 그 골목 안쪽에 내가 좋아하는 작은 놀이터가 있었는데 한동안 그쪽으론 발을 들일 수가 없었으니까.


언닌 아빠 말 잘 듣는 착한 딸이기도 했다. 다른 애들이 다 자전거를 배울 때도 언니 혼자 자전거를 타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빠가 큰일 난다고 못 타게 했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를 닮아서 하고 싶은 건 꼭 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아빤 내 고집을 꺾을 수 없었기에 결국 난 자전거를 배웠지만, 언닌 옆에 서서 구경만 할 뿐이었다.


하남시 판잣집에 살 때도 그랬다. 우리가 개천에서 고기를 잡거나 천둥벌거숭이처럼 여기저기 마구 들쑤시며 돌아다닐 때, 언닌 집에서 종이인형이나 마루인형을 갖고 놀았다. 하루는 내가 심술이 나서 언니 인형을 들고나가 지붕 위로 던져버린 적도 있었다. 자기만 공주냐고.


아빤 우리 중에 누군가 다치거나 죽을까 봐 늘 전전긍긍했다. 나는 워낙 청개구리라서 아빠가 하지 말라면 더 했고 쌍둥이는 말썽쟁이 사내놈들이라 그러려니 했지만, 아빤 언니를 유난히 과잉보호했고 언닌 아빠 말을 잘 따랐다.




물론 아빠의 불안에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제주도 깡시골에 오토바이가 통틀어 세 대뿐이던 시절, 그중 한 대가 아빠 거였다. 아빠의 선배가 한 번만 타보자며 오토바이를 가져간 후 소식이 끊기자, 아빠의 동생이 오토바이를 찾아오겠다며 선배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돌려받은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 동생은 쌍둥이였다. 그러니까 내겐 쌍둥이 삼촌이 계셨고, 엄마가 쌍둥이를 낳은 것도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남은 쌍둥이 삼촌마저 형제를 잃은 충격에 시름시름 앓다가 이내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아빤 졸지에 쌍둥이 동생 둘을 잃고 말았다. 그깟 오토바이 때문에.


그 후 아빠의 정반합은 불안으로 뒤덮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언니는 아빠를 사랑한 만큼 아빠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서 크고 작은 일탈을 감행한 것 같다. 우리 4남매 중에서 아빠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은 만큼 아빠의 불안을 제일 많이 느꼈을 테니까.


하지만 자전거도 못 타던 언니는 마흔 중반에 초6 아들 등하교를 위해 단박에 운전면허를 땄고, 면허를 따자마자 중고차를 뽑았으며, 중고차를 뽑자마자 운전을 시작해서 아빠를 비롯한 온 가족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렇게 언니는 도 아니면 모로 살았다. 그게 바로 내가 언니를 정반합의 이치를 거부하는 괴이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언니만의 신박한 삶의 태도일 것이다.


내 발은 지금도 저렇게 생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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