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빙빙
호불호가 결정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난 그게 경험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세상 모든 벌레와 곤충을 싫어하는데 많은 사람이 그렇듯 바 선생을(ㅂㅋㅂㄹ, 입에 담기도 싫은 이름) 특히 극혐한다. 집에서 자그마한 바 선생을 발견한 날, 동이 트자마자 세스코를 불러 놈들을 박멸을 하고 나서야 집에 발을 들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다 중국에서 오 년 넘게 사는 동안 기숙사나 아파트에서 바 선생을 여러 번 마주쳤는데, 대륙답게 바 선생 사이즈가 거의 고양이 만했다. 그러고 나니 한국 바 선생은 아장아장 꼬까신 신은 아기처럼 귀여워 보였고, 어디서 마주쳐도 그럭저럭 봐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어릴 때는 잠자리를 참 좋아했다. 잠자리 떼가 무리 지어 비행하는 광경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황홀했다. 풀 끝에 앉은 잠자리 날개를 맨손으로 잡아 가지고 놀아도 재밌었다. 하지만 잠자리와 내 인연은 9세 어느 여름에 끝장나고 말았다.
잠자리 한 마리를 잡아서 검지와 셋째 손가락 사이에 날개를 끼우고 집으로 돌아간 날이었다. 부모님은 안 계셨고 언니와 동생들이 안방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언니가 내 손에 들린 잠자리를 보고 말했다.
"잠자리, 우리 반 애들은 꼬리에 실 묶어서 논다."
3호가 물었다.
"잠자리 연이야?"
"비슷해. 잠자리가 못 날아가니까. 날리면서 데리고 다니는 거야."
막내가 말했다.
"재밌겠다. 우리도 해 보자."
이윽고 언니가 바느질용 흰 실을 길게 잘랐다. 나는 날개를 잡고 있었고 3호는 꼬리를 잡았다. 언니가 꼬리에 실을 천천히 감은 다음 매듭을 지으려는 순간, 나와 3호가 각자 반대쪽으로 힘을 준 모양이었다. 잠자리 꼬리가 몸에서 완전히 분리되고 만 것이다.
"으악!"
우린 동시에 잠자리에서 손을 뗐다. 잠자리는 고통스러운지 날개를 퍼덕이며 방 안을 빙빙빙 돌기 시작했다.
"끼악!"
"꺄아!"
우리 4남매는 안방 문을 박차고 뛰쳐나왔고, 서로를 마구 밀치며 건넌방으로 도망쳤다.
"죽었을까?"
"피는 안 났잖아. 그러면 안 죽어."
"으앙~ 잠자리 불쌍해~."
누군가는 침착하려 노력했고 누군가는 이미 이성의 끈을 놓고 울부짖었다. 그렇게 1년 같은 1분이 흘렀다.
"지금쯤 죽었을까?"
"가 보자."
우린 까치발을 들고 안방으로 건너가서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잠자리는 이미 죽었는지 미동도 없었다. 해체된 잠자리 몸뚱이를 본 우리는 다시 꽥꽥 비명을 지르며 건넌방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부모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죽은 잠자리에게 용서를 빌며 찔끔찔끔 울었다. 너무 겁이 나서 안방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해 여름, 나는 그날보다 더 충격적인 일을 겪는다. 외갓집 친척 오빠 한 명이 직업 군인이었는데, 강원도 홍천으로 발령이 나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방학만 되면 애 넷 중에 하나라도 어디론가 보내야 그나마 숨통이 트였던 엄마는 여름방학을 맞은 나와 언니를 오빠네로 몇 주간 놀러 보냈다. 그 집엔 나보다 한 살 어린 여자애와 세 살 어린 남자애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 남자애는 고작 여섯 살쯤 되었으리라.
우린 오빠네 가족과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냈다. 개천에서 물놀이도 하고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딱히 특별한 계획이 없었던 나른한 오후에 심심해진 나는 남자애 방으로 들어갔다. 그 애는 혼자 창가에 서 있었는데, 창틀에 두 팔을 걸친 채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뭐 해?"
"놀아."
가까이 다가간 난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창틀에 해체된 잠자리 시체가 수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애는 갓 잡은 잠자리를 꼬리, 몸통, 날개, 다리 할 것 없이 몽땅 분해하고 있었다.
"으~ 뭐 하는 거야?"
"이거 재밌어. 죽어라, 죽어. 하하."
그 애는 계속해서 잠자리를 쥐어뜯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마치 게임을 하는 것처럼.
나는 그 후로 잠자리가 싫어졌다. 잠자리를 볼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다. 아니, 솔직히 징그러워졌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날 잠자리 꼬리에 실 묶기에 성공했다면, 그래서 재밌게 놀다가 실을 풀어주고 다시 날려 보내줬다면 지금도 난 잠자리를 제일 좋아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