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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Jun 30. 2023

난 이제 '스웨덴빠'를 탈퇴한다

불행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지난 23~25일은 스웨덴에서 가장 큰 여름 연휴였다.

미드솜마(mid sommar) 연휴로 우리로 치면 해가 가장 길어지는 하지와 맞물린 한여름 축제라고 할까.

이 연휴를 기점으로 많은 스웨덴 사람들은 길게는 두 달의 휴가에 들어간다.

도심의 많은 상점은 문을 닫고 거리도 한산하다.

이때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은 스칸센이나 그뢰나룬드 같은 유원지나 놀이동산이다.

연휴 마지막날 우리 가족은 스칸센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유르고르덴 입구에 내려 스칸센으로 걸어가는데 그뢰나룬드가 조용했다.(두 곳은 거리가 멀지 않다)

연휴 마지막날 소위 대목인데 문을 닫았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스톡홀름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121m 높이 회전그네가 멈춰 있었다.

인기 놀이기구인 몬스터를 탄 사람들의 유쾌한 비명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휴무일이겠지 쉽게 생각했다.

스칸센에서 때마침 아이들 국제학교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 역시 미드솜마에 아이들 데리고 놀러 나왔던 참이었다.

인사 후 선생님 첫마디는 '너희, 뉴스 봤냐'였다.

그제야 사고가 발생해 그뢰나룬드가 폐쇄됐다는 걸 알았다.

뉴스를 찾아보니 그뢰나룬드의 인기 어트랙션인 롤러코스터 ‘제트라인’ 탈선 사고로 1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다고 했다.

인명사고가 발생한 그뢰나룬드의 롤러코스터. 가장 앞 열차의 바퀴가 떨어져 나갔다. (사진=Dagens Nyheter)

등골이 오싹했다.

바로 하루 전 첫째가 학교 단짝 친구와 함께 그뢰나룬드에 다녀왔다.

첫째는 롤러코스터 '제트라인'을 4번이나 탔다고 자랑까지 했었다.

첫째가 오늘 그뢰나룬드에 갔다면? 소름 끼치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머리를 흔들어 빨리 지워버렸다.

나 역시 2주 전 둘째 친구네 가족과 그뢰나룬드에서 만나 놀았는데 문제의 롤러코스터를 3번 탔다.

그때 열차 좌석 앞에 붙은 문구를 잊을 수 없었다. '이 제트라인의 최고 속도는 시속 90km입니다.'

고점에서 급하강하며 이리저리 좌우로 비트는 롤러코스터에서 시속 90km의 속도를 맨몸으로 받아내는 아찔한 순간에 '사고가 나면 어떻게 될까' 아주 짧은 상상을 했던 것도 같다.

연간 100만명이 탄다는 이 롤러코스터에 사고 당일 오전 11시 30분 탑승할 가능성과 사고가 난 열차의 가장 앞 좌석에 앉을 가능성은 천문학적으로 적은 수치의 확률에 불과하겠지만 끔찍한 사고 앞에 감정은 이성을 지배한다.

아무리 작은 가능성이라도 누구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지난 25년간 스웨덴 놀이공원에서 각종 사고로 4명이 숨졌는데 그뢰나룬드에서 발생한 인명사고는 1970년대 이후 처음이었다.

특히 스톡홀름에서 유일한 놀이동산인 그뢰나룬드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1년에 2~3번은 가는 추억의 장소여서 시민들의 충격은 더 컸다.

이 사고는 축제 같은 미드솜마 연휴에 찬물을 끼얹었고 그뢰나룬드는 잠정 폐쇄됐다.

경찰과 국가조사위원회는 사고 원인 조사에 착수했다.

인명사고가 발생한 만큼 누군가는 과실 치사, 상해 등의 혐의로 책임을 져야 한다.

사고 재발 방지 대책도 나와야 할 것이고.

인명사고가 발생한 그뢰나룬드의 롤러코스터. (사진=Dagens Nyheter)

스웨덴에 온 지 1년이 다 돼 간다.

처음 스웨덴에 왔을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중심가에 가면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을까 무척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스웨덴 치안이 매우 좋다는 걸 느꼈다.

여성인 와이프와 첫째를 비롯해 둘째, 막내도 지금껏 거리에서 신변 위협을 느낀 경험이 없다.

스웨덴 사람들의 시민 의식은 높은 수준이었고 차량 운전자가 보행자나 자전거를 배려하는 교통 의식도 남달랐다.

스톡홀름 도심과 외곽에서 총격사고가 심심찮게 발생했지만 실생활에서 체감될 정도는 아니었다.

묻지마 범죄나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증오범죄가 아니었고 갱단의 갈등, 알력으로 그들만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강력범죄라고만 생각했다.

지금 거주하는 지역에서 단 한 건의 총격사고가 없었던 것도 그런 생각을 하는 데 한몫했다.

합리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안전사고 가능성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았다.

경험을 토대로 스웨덴은 안전한 사회라고 머릿속에 각인됐다.

나는 스웨덴에서 범죄나 안전사고 가능성에 있어 철저히 무장해제된 상태였다.

롤러코스터 사고 이후 그동안 스웨덴 사회에 가졌던 믿음과 경험칙에서 벗어나 차분하게 현실을 바라보려고 한다.

이번 롤러코스터 사고가 당일 오전 검사에도 아무 이상이 없었고 치밀한 조사에도 특별한 문제점을 찾지 못했다는 경찰 조사결과가 나오더라도 이미 의식은 사고 이전과 달라졌다.

롤러코스터 탈선 사고 당일 폐쇄된 그뢰나룬드

올해 초부터 스웨덴에서 논란이 된 이슈가 있다.

쿠르드족 분리 운동 단체와 이슬람 반대 단체가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소각하는 행위를 허용해야 하는지를 두고 시민 여론이 양분됐다.

법원과 검찰은 코란을 불태우는 행위는 특정 민족을 비난하는 목적이 아닌 종교 자체에 대한 반대로 봐야 한다며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는 판단을 내렸지만 코란 소각을 불허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법원 판단에 따라 경찰이 금지해 왔던 반터키 단체의 코란 소각 시위를 허가하면서 다시 논란이 불붙는 형국이다.

시위 이후 이라크 바그다드의 스웨덴 대사관이 시위대의 습격을 받았다.

이슬람국가이자 나토(NATO) 회원국인 터키는 스웨덴이 코란 소각을 금지하지 않으면 나토 가입에 절대 찬성할 수 없다고 다시 못 박았다.

인명사고가 난 그뢰나룬드 롤러코스터 레일 주변에 꽃이 놓여 있다. (사진=Dagens Nyheter)

내가 두려운 건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권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힌 스웨덴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자의 불특정 시민을 향한 과격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다.

스웨덴 경찰이나 비밀경찰 säpo(우리로 치면 국정원)가 코란 소각 이슈로 높아진 테러 위협을 사전에 차단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겁이 난다.

더군다나 여러 경로로 스웨덴에 총기가 반입되고 실제 관련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것도 이제는 무섭다.

특히 T-센트랄렌역이나 세르겔 광장 등 많은 시민이 오가는 스톡홀름 중심부에 가는 날이면 마음 한편 경계심이 발동한다.

한국에서 전혀 느껴보지 못한 종류의 두려움이다.

'호텔 뭄바이'라는 실화 영화를 본 이후 외국에서 무거워 보이는 스포츠가방을 든 사람을 보면 예의주시하는 버릇이 생겼다.

선량한 이슬람 교인이 근본주의자들의 말에 속아 무고한 시민에게 자동소총을 꺼내 난사하는 장면은 좀처럼 잊히지 않았다.

학기 중 아이들 학교에서 외부 침입자에 대비한 가상훈련을 한 날도 기억에 남았다. 미국에서 끊이지 않는 총기 사고와 유사한 상황에 대비하는 차원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날 첫째와 둘째는 훈련이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교실에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버티는 10분 동안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안전한 나라는 없다.

완벽한 나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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