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나동 Jun 17. 2023

경기 찢은 농구초보 아들의 일취월장

두 달 만에 결전의 날이 밝았다.

승패는 상관없다. 얼마나 기량이 향상됐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스웨덴 와서 농구를 배우기 시작한 둘째가 지난 2월 정식 경기를 가진 뒤 참 많은 감정이 오갔다.

둘째는 많이 모자라는 실력이었지만 최선을 다했다.

아빠로서 더욱 칭찬하고 북돋워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참 미안했다.

경기 후 다음엔 좀 더 나아진 플레이를 하자고 둘째와 결의했다.

일주일에 한 번 농구 수업을 한 뒤 주말마다 시간이 되면 1~2시간 농구 연습을 해왔다.

동네 학교 운동장에서 농구 연습하는 둘째

그래봐야 지난 2달간 10여 번 남짓이겠지만 둘째는 연습에 집중했다.

처음엔 골밑에서 조금만 멀어도 공이 골대 근처에도 못 가던 것이 조금씩 슛 비거리가 늘었다.

슛폼도 예전엔 힘이 없다 보니 온몸을 비틀어서 공을 밀었는데 무릎을 이용하고 리듬을 타면서 군더더기 없이 변했다.

기본적인 농구 파울과 바이얼레이션 규칙을 익히고 이를 위반하지 않도록 연습했다.

드리블, 패스 방법을 재점검하고 공을 소유하지 않았을 때 움직임도 달라지도록 노력했다.

리바운드가 정말 중요하며 공격 수비 시 적극적으로 가담해야 한다는 인식과 실천을 하려 했다.

실전에서 얼마나 써먹을지 모르겠지만 2대 1 돌파나 피벗도 간간이 연습했다.

방법을 알면 언젠가는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경기 날짜가 확정된 이후부터는 매일 저녁 농구장을 찾았다.

써놓고 보니 개별 연습만 한 거 같은데 매주 농구 코치 선생님의 집중적인 지도가 훨씬 큰 효과를 발휘했으리라 생각한다.

농구장에 늦게 도착해 이미 경기가 진행 중이었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스톡홀름 Thorildsplan 역 인근의 농구 코트를 찾았다.

지난번 정식 경기가 열린 곳이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경기였는데 경기 시작 시간을 착각하는 바람에 한 시간 늦게 도착했다.

제시간에 왔다면 두 게임을 뛸 수 있었는데 이날 한 게임밖에 출전하지 못해 너무 속상했다.

그래도 한 경기라도 최선을 다해 뛰자고 둘째랑 다짐했다.

이날 평소 함께 농구훈련을 받던 친구는 한 명밖에 오지 않아 즉석에서 다른 팀 선수와 합쳐 팀을 만들었다.

매주 연습하던 친구들이랑 경기를 했다면 손발이 잘 맞았을 텐데 아쉬웠다.

늦게 도착한 둘째는 몸도 못 풀고 경기를 뛰었다.

경기는 미니 풀 코트에 3대 3 대결이었다.

역시 시합은 시합이었다. 연습과는 차원이 달랐다.

몸과 몸이 맞부딪히고 우리 팀과 상대 팀 선수들은 초반부터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양 팀 모두 첫 골이 쉽게 터지지 않았다.

공방전을 벌이다가 상대 팀이 먼저 선취점을 넣었다.

우리 팀도 반격에 나섰다.

선수와 코치가 앉은 벤치 풍경

그때였다. 상대 코트 45도 각도에서 패스를 받은 둘째가 곧바로 슛을 던졌는데 림도 맞지 않는 클린슛을 터트렸다.

벌떡 일어나 너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정말 좋았지만 슬펐다. 동영상을 찍으려고 하는 찰나에 골이 들어가 이 기념비적인 첫 골은 내 머릿속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이후 행여 하나라도 놓칠까 동영상을 계속 찍었다.

전반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이번엔 상대 진영 사이드에서 동료가 준 로빙 패스를 골밑에 있던 둘째가 받자마자 슛했다.

좀 높이 올라간다 싶었던 공은 백보드를 맞고 그대로 림으로 빨려 들어갔다.

주책바가지같이 또 소리를 너무 크게 질렀다가 '입틀막'했다.

이어진 상대팀 공격에서 전반전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전반 10분 중 6~7분가량 뛰며 두 골을 터트린 둘째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고 코치 선생님과 힘찬 하이파이브를 했다.

점수도 우리 팀이 상대 팀보다 2점 앞서는 듯했다.

두 골 넣고 기분 좋은 전반전 마친 둘째

잠시 쉬었다가 후반전이 시작됐다.

상대 팀엔 여자 선수도 있었는데 덩치도 좋고 드리블도 잘해 연달아 몇 골을 먹었다.

둘째는 전반과 달리 체력적으로 약간 힘들고 집중력도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둘째에게 뭔가 말하고 싶은 욕구가 꿈틀댔지만 참았다.

농구 게임을 지휘하는 코치 선생님이 있는데 선수 부모가 나대는 것도 꼴불견인 거 같았다.


후반전 중반 둘째는 홈 코트에서 상대 팀의 공격 패스를 가로챈 후 달려 나가는 동료에게 빠르게 패스했다.

공은 상대 수비 키만 살짝 넘길 정도로 날아와 뛰어가던 동료 앞에 딱 떨어졌고 동료는 그 공을 잡아 단독 드리블한 뒤 멋지게 골을 성공시켰다.

멋진 속공 어시스트였다.

자율신경계와 교감신경의 작용으로 나의 의지와 상관 없는 자동 반사적인 함성이 터져 나왔다.

가로채기 후 멋진 속공 어시스트 뿌리는 둘째

난 둘째가 전반에 터트린 두 골보다 후반의 어시스트 하나가 더 짜릿했다.

상대 패스를 스틸해 동료에게 단독 찬스를 만들어주는 날카로운 패스와 동료의 깔끔한 마무리, 정말 멋졌다.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그 어시스트와 속공으로 이미 게임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양 팀 통틀어 가장 멋진 장면이었다고 나 혼자 생각했다.

둘째도 자신의 패스를 받은 동료가 골을 넣으니 좋았는지 두 손을 들고 손뼉을 치며 기쁨을 나눴다.

둘째는 몇 번의 슈팅 찬스가 있었는데 더 좋은 자리에 있던 동료에게 패스하기도 했다.

그동안 둘째가 투핸드 슛 연습을 많이 해 좀 욕심을 부려도 좋을 것 같았는데 이타적 플레이를 선택했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경기 막판 몇 번 슛을 시도했지만 안타깝게 들어가지 않았다.

이날 경기는 우리 팀의 승리였지만 승패는 중요하지 않았다.

승리 후 친구와 기쁨 나누는 둘째

경기에 지각해 한 게임밖에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둘째의 이날 플레이를 개인적으로 평가하자면 괄목상대, 일취월장이었다.

첫 경기와 너무나 다른 움직임과 슛, 패스를 보여줬다.

이날 나 혼자 집계한 둘째의 경기 기록은 2골 3스틸 1어시스트 3리바운드였다.

이 중 스코어와 직접 관련 있는 공격 포인트는 2골 1스틸 1어시였다.

충분히 잘했다.

그동안 꾸준히 노력한 데 대한 보상이었다.

또 하나 긍정적인 건 공을 든 채 3보 이상 걷는 워킹 바이얼레이션, 더블 드리블이 하나도 없었다는 거였다.

경기 규칙을 완전히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패스도 띄우지 않고 낮게 연결해 패스 미스를 거의 하지 않은 점도 좋았다.

둘째도 자신의 플레이가 달라졌다고 느꼈는지 경기 후 표정이 밝았다.

코치 선생님께도 오늘 정말 멋진 게임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코치 선생님은 시크하게 수요일 연습 시간에 보자고 했다.

한 손엔 환타 들고... 이제 조금 뒷모습이 농구선수 삘이 난다.

둘째가 열심히 노력해 과정도 결과도 모두 좋았다는 경험을 몸소 느낀 것 같아 무척 보람찬 하루였다.

두 달 후 다음 공식 경기를 다시 준비해야겠다.

아직 어설프고 빈틈이 많은 드리블도 연습하고 강백호 풋내기 슛인 레이업 슛도 더 가다듬어야 할 듯했다.


집에 와서 뒤늦게 농구코치와 아내의 문자메시지를 보게 됐다.

다른 내용보다 '정말 잘했다'(played really well)는 코치 선생님의 짧은 문구만 뚫어져라 몇 번이고 봤다.

무려 느낌표도 2개나 달려 있었다.

물론 격려 차원의 말일 수도 있겠지만 둘째의 플레이를 나 혼자 고평가 한 건 아니라는 생각에 무척 기분 좋았다.

'역시 한국은 스파르타 엘리트 교육이야'하면서 말이다.

"He played really well!!"
이전 10화 이제 '스웨덴빠'를 탈퇴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