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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나동 May 26. 2023

스웨덴축구는 처음이지? 알스벤스칸 직관기

나에게 스웨덴은 운동 쫌 하는 북유럽 스포츠 강소국의 이미지였다.

내 기억 속의 스웨덴 운동선수를 떠올려보면 셰이크핸드로 기막힌 수비와 허를 찌르는 공격을 했던 탁구 황제 발트너, 세리팍과 함께 LPGA를 삶아 먹었던 골프 여제 애니카 소렌스탐, 소싯적 테니스 중계 때 보던 스테판 에드베리, 축구에는 골도 많이 넣지만 뭔가 괴짜 같은 즐라탄, 지난해 토트넘 손흥민과 좋은 케미를 보인 데얀 클루셉스키(한국 애칭 ‘셉셉이’), '우생순' 한국여자 대표팀에 번번이 패배를 안긴 스웨덴 핸드볼 등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써놓고 보니 뭔가 아재스럽다.

스웨덴을 대표하는 스포츠 스타 얀 발트너와 애니카 소렌스탐 (사진=dagens nyheter)

암튼 나에게 스웨덴은 스포츠 강국이긴 한데 축구에서는 특출한 성적을 보여주지는 못한 나라였다.

피파 랭킹은 2023년 5월 현재 우리나라보다 5단계 높은 22위다.

러시아 월드컵 때는 우리나라와 같은 조에서 맞붙어 0대 1로 통한의 패배를 안긴 팀이기도 하다.

지난해 카타르월드컵의 치열한 유럽 예선을 뚫지 못하고 막판 폴란드에 져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스웨덴이 월드컵 본선에 올랐더라면 거리응원이나 축구 열기를 느껴볼 수 있었을 텐데 정말 아쉬웠다.

그럼에도 스웨덴에 온 이상 축구 직관은 꼭 하리라 생각했다.

또 5년 전 스웨덴 여행 때 축구장 코앞까지 와놓고 망설이다 못 간 기억 때문에 이번엔 무조건 보고 싶었다.

경기 시작 전 축구장으로 걸어가는 인파

표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스톡홀름 라이브(stockholm live)라는 앱에서 표를 예매했다.

특히 아이를 동반할 수 있는 가족석 가격이 저렴했다.

5세인 막내는 무료였고 둘째와 나 이렇게 200크로나(약 2만5천원) 정도 준 것 같다.

스웨덴 남자 축구 1부 리그는 알스벤스칸(Allsvenskan) 리그라고 부른다.

1924년 시작돼 1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총 16개의 축구팀이 있어 역시 16개 팀으로 구성된 2부 리그인 수페레탄(Superettan)과 승강제로 운영된다.

스웨덴 인구가 대략 1천만명인데 축구 리그가 제법 탄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남자 축구 못지않게 다말스벤스칸 리그라고 불리는 여자 프로 축구도 인기다.

스웨덴 여자 축구는 월드컵에서 우승 후보일 만큼 강하다.

최근엔 한국 여자 국가대표 골키퍼 윤영글 선수가 BK헤켄에 입단하기도 했다.


관람한 경기는 지난해 8월 22일 함마비와 데게르스포르스와의 대결이었다.

리그 2위와 15위의 경기였다.

홈경기로 치르는 2위 함마비의 우세가 예상됐는데

함마비는 마치 스코틀랜드 리그팀인 셀틱처럼 흰색과 녹색의 유니폼이 인상적이었다.

난 함마비의 홈 경기장과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인 굴마르스프란(gullmarsplan) 역 부근에 살았는데 경기가 있는 날이면 대낮부터 스포츠바나 거리주점이 함마비 팬들로 북적댔다.

스웨덴 축구 직관하러 가는 길. 축제분위기다.

일단 식전주로 생맥주를 마시고 오늘 경기 예상도 하면서 실컷 떠들다가 축구경기 시작 전 글로벤(globen) 역으로 어슬렁거리며 이동했다.

함마비 팬들은 몹시 시끄러웠다. 경기 시작도 안 했는데 걸어가면서도 응원가와 고함을 지르는 열성팬이었다.

흥겹고 축제 같은 분위기였다.

부모 손 잡고 온 아이들도 많이 보였다.

스웨덴은 지역마다 유소년 축구클럽이 있을 만큼 축구를 즐긴다. 그만큼 인기스포츠이기도 하다.


나는 막내와 둘째를 데리고 일찍 저녁을 먹고 집을 나섰다.

팬들은 저마다 함마비팀의 상징인 녹색과 흰색이 섞인 머플러, 모자, 수건, 유니폼 등을 걸쳤다.

그 틈에 끼어 경기장으로 향했다.

함마비의 홈구장인 텔레2 아레나(TELE2 Arena)는 축구 전용경기장인데 외형이나 내부 모두 세련되고 멋졌다.

2013년 건립된 이 경기장은 약 3만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개폐가 가능한 슬라이딩식 지붕이 있어 돔으로도 사용 가능했다.

텔레2 아레나 경기장

아비치(Avicii)나 롤링 스톤즈 등이 텔레2 아레나에서 공연했다고 한다.

바로 옆은 공연장이나 아이스하키 경기장으로 이용되는 아비치 아레나도 있다.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경기장이 참 마음에 들었다.

특히 관람석 첫 줄과 터치라인 사이가 무척 가까워(6m) 선수들 움직임이 정말 잘 보였다.

하나 특이했던 점은 그라운드가 천연 잔디가 아닌 인조 잔디였다는 거다.

처음엔 1부 리그 경기가 가오가 있지 어떻게 인조 잔디에서 열릴 수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겨울이 긴 북유럽 기후 때문에 잔디 관리가 쉽지 않아 그럴 수도 있겠다는 혼자만의 생각을 해봤다.

이번에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이 연합해 여자 축구 대회 공동 유치에 나서기도 했다.

유치에 성공했다면 국제경기 룰에 따라 텔레2 아레나의 인조잔디를 천연잔디로 바꿀 계획이었지만 스위스에 밀려 무산됐다.


간단한 짐 검사 후 게이트를 통과해 계단을 오르자 녹색의 그라운드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것만으로 너무 흥분됐다.

FC바르셀로나 누캄프나 맨유의 올드 트래포드 등 유명 축구팀 홈구장 투어를 왜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관람석도 팬들로 가득 차고 경기 시작 전 함마비팀 응원가를 다 같이 부르는데 덩달아 가슴이 웅장해졌다.

경기가 시작되고 야생마 같은 양 팀의 선수들의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응원 함성 소리는 하늘을 찔렀다.

5년 전 왜 축구를 안 보고 발걸음을 돌렸나 싶었다.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특별한 경험이었다.

스웨덴 사람들 겉으론 무뚝뚝해 보였는데 축구장에서는 굉장히 열정적이었다.

한편 관람석이 꽉 들어찬 경기장을 보며 한국 프로축구도 꼭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근 뉴스를 보니 함마비의 공격수인 루빅손 선수가 울산 현대로 이적했다고 해서 반가웠다.

골!!!

경기 초반부터 리그 2위의 함마비의 매서운 공격이 이어졌고 데게르스포르스는 역습 작전으로 대응했다.

함마비의 첫 골이 이른 시간에 나오면서 경기가 기울었지만 상대팀의 반격도 만만치 않아 보는 재미가 있었다.

둘째와 막내는 뭔 말인지도 모르면서 일어서서 응원 구호 따라 하고 급기야 골이 터지자 옆자리에 앉은 또래 친구와 어깨동무하고 펄쩍펄쩍 뛰었다.

내가 앉은 곳은 가족석이라 비교적 조용(?)했지만 홈팀 응원석은 광란의 도가니였다.

하프 타임 때 스낵코너 풍경

전반전이 끝나고 화장실 갔다 오며 생맥주와 아이들 군것질거리를 샀는데 생각보다 비싸지는 않았다.

후반전에도 함마비는 공세적으로 나와 결국 5대 1로 크게 이겼다.

함마비FC의 5대 1 대승

잊혀지지 않는 장면도 있었다.

원정팀 응원단은 몇 명 되지 않아 함마비 홈팬이 절대다수였다.

후반전에 데게르스포르스팀이 한 골을 만회하자 홈팬들로 가득한 경기장이 일순 조용해졌다.

그때 아빠와 딸로 보이는 원정팬이 홈팬 사이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고 붉은 수건을 돌리며 격정적으로 기쁨을 표출했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도 홈팬으로 둘러싸인 관람석에서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팀을 응원하는 모습이 멋졌다.

주눅 들지 않는 원정팬의 당당한 응원

홈팬으로서는 그 모습이 그리 달갑지 않아 욕설 등 한 마디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나 세리에A 등에서는 홈팬 응원석에 앉은 원정팬은 골이 들어가도 홈텃세에 좋아도 소리 한번 못 지르고 붕어처럼 입만 벙긋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인지 이 담대한 부녀의 모습이 무척 기억에 남았다.


EPL이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등 유명 축구리그 직관기는 많지만 아직은 세계 축구계에서 변방인 듯한 스웨덴 축구 직관기는 없는 것 같아 한번 써봤다.

더불어 유럽 챔피언스리그나 유로파리그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스웨덴 축구 클럽의 선전도 기원해 본다.

올해 챔피언스 리그 1차 예선과 유로파리그 2차 예선에 진출한 클럽은 BK 헤켄, 유르고르덴IF, 함마비 IF 등 세 팀이다.

세계 유수의 클럽팀과 비교해 성적은 떨어지지만 스웨덴 축구팬 응원문화나 열정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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