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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몬까치 Jun 12. 2021

도망치고 싶을 때

바퀴벌레보다 강력한 글쓰기의 힘

도망 逃亡

피하거나 쫓기어 달아남


어제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 양치하려고 안방 화장실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온 집안이 떠나가게 소리를 질렀다. "으악! 바.. 바퀴벌레!!!!!!!!!" 내 등 뒤에서 나를 따라오던 아들은 더 격하게 반응하며 엄마 뒤로 숨었고, 나는 어떤 고민도 없이 본능적으로 화장실 문을 닫아버렸다. 1층 아파트로 이사 온 지 거의 2년이 되어가는데, 집 안에서 이렇게 큰 바퀴벌레를 목격한 것은 내 인생에 처음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몸이 간지러운 것 같다. 내가 뭐 막 내숭 떠는 스타일은 아니라, 파리, 모기, 콩벌레, 나방, 매미, 잠자리, 개미 이 정도는 내 선에서 처리가 가능하지만 바퀴벌레는 잘 본 적도 없고 너무너무너무 싫다. 진짜 싫었다.


문을 닫고, 9살 아들과 대책회의를 했다. 어떡하면 좋을까? 지금 집에는 바퀴벌레 약도 없고, 나보다는 벌레 내성이 조금 강한 우리 집 남편도 아직 퇴근 전이고, 나는 화장실 문을 다시 열고 싶은 용기도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일단 남편에게 이 비상사태에 대해 카톡을 보냈다. 바퀴벌레가 출몰했으니 저녁에 집에 와서 안방 화장실 문을 열지 말아라. 어쩌면 좋냐?라고 구원의 요청을 보냈다. 남편도 적잖이 당황했는지 답장이 바로 왔는데, "헉, 내가 내일 아침에 죽을게."라고 왔다. ('죽일 게' 오타였는데 보는 순간 이건 뭐지 했다) 일단 자자. 잠은 안 왔지만, 아이와 함께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화장실 문, 안방의 드레스룸 미닫이 문까지 꽁꽁 닫고 잠을 청했다. 스트레스받아서 못 잘 줄 알았는데, 또 금세 잠이 들었다. 밤 10시쯤 됐을까. 술 한잔 하고 온 듯한 남편이 와서 자기가 지금 잡아주겠다며, 모기약을 겁나 뿌려댔다. 너무 많이 뿌려대서 문을 닫았음에도 모기약 냄새가 온 방에 퍼져 코 끝을 찔렀다.


"없는데?" 이미 바퀴벌레 is gone. 그놈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듯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안방 화장실은 사용하지 않으리다. 저기를 내 발로 다시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다음 날 아침, 새벽부터 일어나 금요일 계획되어있던 운동과 줌 미팅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하나 했는데, 왠지 기분이 찝찝했다. 바퀴벌레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포기하고 도망친 순간들을 떠올리게 했다. 비겁하게 도망친 잊고 싶었던 기억들이 자꾸 생각나서 괴로웠다.


 도망과 포기의 역사 

- 미국 어학연수 때 커뮤니티 컬리지 수업 마지막 날 개인 발표 과제를 해야 했는데, 도저히 자신 없어서 교수에게 이메일로 내가 할 수 없는 이유와 핑계를 구구절절 영어로 적어 보낸 일

- 첫 회사에서 교육받을 때, 팀별 과제 발표 발 빼기

- 나와 안 맞고 까다로운 PM과 일할 때, 몇 개월을 버티다 해당 프로젝트 빼 달라고 요청한 일

- 영어로 프로젝트 회의하는데 뭔 말인지 1도 모르겠어서 멍 때리다 회의를 나온 일

- 그럴싸해 보이는 멋진 회사들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조직문화, 사람, 업무 등이 나랑 맞지 않는다고 쉽게 퇴사를 결정한 일

- 회사에서 중간관리자로서 어렵거나 막중한 책임을 요하는 업무를 지시했을 때, '나는 아직 이런 일을 할 자격이 안된다'라고 소극적으로 대응한 일

- 서포터즈 활동들을 감정적인 이유, 건강상태의 악화 등의 어쭙잖은 핑계를 대며 중도 포기한 일 등

- 재취업을 준비하며 바닥친 자존감으로 회사 지원이 두렵고 겁나서 내 주제에 무슨 취업이냐 생각한 일


내가 매일 사용하던 일상의 공간에 나타난 바퀴벌레를 보고도 적극적으로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고, 문을 닫아버린 내 행동이 부끄러웠다. 예전에 그랬듯이 또 도망치고, 회피하고, 모른 척 덮어버린 나. '내 아들은 나를 보고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부터 시작해 '나란 인간이 원래 그렇지 뭐'로 끝나는 자기 비하, 더 나아가 내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직업과 성공과 의미 있는 일에 대한 생각들이 뫼뵈우스의 띠처럼 반복되고 있었다.


나에게 직업이란 뭘까?

다른 사람을 돕는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미 있는 일은 뭘까? 내가 좋아하고, 나를 발전시키고, 사회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있는 .  스스로 만족하고 사랑하는 일을 하며, 내가 하는 일들이 나를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는 믿음과 함께 성장하는 . 이러한 삶을 사는 것이 올바른  아닐까 한다. 살다 보면, 가장 위험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바로 편안하고 긴장감 없이 사는 상태인  같다. 적당한 긴장 속에서  나은 현실을 바라고 애쓸 ,  자신이 성장하고 행복하게 일할  있을 것이라 믿는다.


매일 글쓰기 동지들과 함께 한 가지 단어에 대해 '현재의 나'의 생각과 일상을 기록하는 요즘, 내가 무엇을 했고, 어디에 빠져있었으며, 얼마큼 성장했는지 알 수 있는 훌륭한 자산이 될 것 같다. 글쓰기로 성장하는 삶, 함께 읽고 쓰며 나누는 삶에 있어 더 이상의 포기는 없다. 나의 약점을 드러내고, 극복하는 과정을 상세히 기록함으로써 나는 전보다 더욱 성장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잠시 침울했던 어제의 기분이 이렇게 글로 적으니 명확해지고, 확실해진다. 역시 글쓰기의 힘은 강하다. 이 세상에서 죽어도 죽지 않는 생존의 귀재, 바퀴벌레 너보다 내 글쓰기의 힘이 더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나를 죽일 수 없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커리어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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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에세이

#주말 #니체 #고통

#바퀴벌레퇴치법좀알려주실분

#도와주세요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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