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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몬까치 Jun 09. 2021

B급 커리어 기행

나의 흑역사 노트 - 아르바이트 편

나의 흑역사 노트

'B급 커리어 기행'을 써볼까? 6월 매일 에세이를 쓰고 있는데, 오늘의 단어는 여행이었다. (정확히는 어제의 단어) 코시국 전에 어디 놀러 갔던 장소와 추억들을 떠올려보며, 무엇을 적어볼까 고민하다가 보통의 여행기가 아닌, 나의 커리어 여행기를 적어보고 싶어 졌다. 그래서 처음에 붙인 제목이 '세계 커리어 기행'이다. 세계 테마 기행이라는 EBS 다큐에서

영감을 얻어 지은 이름인데, 세계여행도 못 가는 이 시국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을 접었다. 그냥 커리어 기행으로 하기에는 왠지 밋밋한 것 같아 고심 끝에 나의 커리어 방황과 실패와 포기의 역사를 낱낱이 파헤쳐보고자 'B급 커리어 기행'으로 정했다. 너무 없어 보이나? 처음에 시작은 나의 화려한 직장 경력을 잘 포장해서 멋진 미래 커리어 로드맵을

그려보고자 했지만, 내 속의 내면 아이는 나의 흑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 했기에 그 감정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나의 흑역사 노트 

나는 늘 비주류였다.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주류에 어울리기보다는 아웃사이더에 좀 더 어울렸고, 업무능력이 출중하지도 않고,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는 그저 젖은 낙엽처럼 얇고 길게 회사에서 조용히 살고 싶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소시민이었다. 포기도 잘하는 두부 멘털에, 깡, Grit, 헝그리 정신은 별로 없던 나. 이런 나에게 사회의 쓴 맛을 알려줬던 아르바이트 경험 몇 개가 떠올랐다.


아르바이트 1: 패밀리 레스토랑 

나의 첫 알바는 내가 대학생이었던 시절, 꽤나 잘 나가던 T땡땡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왠지 거기서 일해보고 싶었다. 주문받는 언니들이 예뻐 보여서 그랬나. 그냥 한 번 해보고 싶었다. 면접을 봤고, 합격해서 부푼 마음을 안고,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나는 예쁜 앞치마를 두르고 손님 응대 업무를 할 줄 알았는데 첫날 내가 한 일은 그릇 정리뿐이었다. 무거운 그릇을 갈색 통에 담아 옮기는 일만 종일 하고 나니, 팔이 진짜 아팠다. 하루는 그릇이 가득 담긴 통을 들고, 계단을 낑낑대며 내려가다가 발이 미끄러져서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 그릇을 깨진 않았으나

그릇 통을 사수하느라 가뜩이나 키도 큰 내가 허우적대고 있으니 옆에 지나가던 여자 손님이 날 흘겨보며 한 마디 했다.

"아, 깜짝이야! 뭐 하는 거야 진짜!"


지금 생각하면 "고객님, 죄송합니다." 하고 지나가면 될 일이었는데, 그때 20대 초반의 나는 뭐가 그리 서글펐는지, 그릇을 주방에 가져다주고, 나와서 엉엉 울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다음 날, 몸이 아파 출근을 할 수없다고 둘러대고 아르바이트를 관뒀다. 그렇게 나의 첫 알바는 3일 만에 끝났다.


아르바이트 2: 학원 강사 

고모네가 서울에서 초등학생 대상 보습 학원을 운영하셨다. 거기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은 처음이라 되게 서툴렀고, 나는 뭔가 카리스마 같은 게 없어서, 까불이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많이 휘둘렸다. 강의는 그렇다 치고, 마지막에 학원 청소도 원장님이셨던 고모부를 도와드렸었는데, 걸레질마저도 못해서 나 스스로 되게 난 왜 잘하는 게 하나도 없나 라고 생각하며 자책했던 것 같다.


아르바이트 3: 광화문 소재 A기업 단기 알바

나는 광화문에서 일하는 게 늘 로망이었다. 이제는 흑역사 알바 경험은 모두 잊고, 멋진 커리어우먼처럼, 고즈넉한 광화문 거리를 활보하며 꿈같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나 생각이 들었다. 방학 2달 동안 좁은 사무실에서 프로젝트 담당 노총각 차장님 한 분,

나 같은 아르바이트 처지의 대학원생 2분과 함께 9 to 6 갇혀있는 건 그렇게 낭만적이지는 않았다.뭔가 장표를 만들어서 가져가면, 까이고, 조사하면 다시 하라고 하고..나의 로망이었던 광화문 회사생활은

2달 만에 산산조각 났다.




아르바이트 경험을 적다 보니 내가 세상 한심해 보이지만, 저런 잡다한 경험이 있어서, 힘든 컨설팅 회사에서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버틸  있었던  같다.  회사에서의 흑역사 기록은 다음 편에 적어봐야겠다. (너무 많다) 얼마 전에 읽은 <프리 워커스>책에서 '비주류의 '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세상과 다른 방식일지라도 눈치 보지 않고 자기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가진 !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는 미래, 사람들에게 가치를 주는 기획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디자이너라고 했다. 나도  인생의 디자이너인 만큼, 나의 흑역사와 실패의 순간들까지도 받아들이며,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읽고, 배우고, 기록해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처럼 커리어 방황을 하는 사람들이 나의 지난 실패담을 읽고 아 이렇게 하면 망하겠구나? 하는 반면교사로서 오늘의 내 글이 훌륭한 교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엉터리라 할지라도 내 의지대로 한 일이라면 그 자체로 의미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거면 됐지 뭐 하하하. 프리워커스에서 오늘 눈에 띈 구절 하나를 소개하며 마무리하려고 한다.


궁금하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였던 오만 가지 실패들 중에 무엇이 언제 어떻게 바뀌어서 튀어나올지. 뭐가 됐든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어이없는 모양새일 것이다. 아무렴 상관없다. 인생이란  원래 엉터리인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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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역사대방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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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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