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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몬까치 Jun 03. 2021

여의도의 푸른 밤

​future 미래, 그리고 선물

"맥주 한 잔 할래요?"

사회 초년생 시절, '컨설턴트'랍시고 처음 투입된 여의도 증권사 프로젝트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함께 도맡아 하던 고객사 막내 직원이 건넨 말이었다.


우리가 그렇게 친했던가?

고객사, 수행사, 많은 협력업체 직원들까지 약 100명 남짓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프로젝트에서 야근은 일상이었다. 오전 8시 출근해서 끝도 없이 밀려드는 업무에 치이고, 여러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면 TV 속에서나 보던 멋진 컨설턴트의 삶은 무참히 산산조각 나고 그저 회사생활이 참 녹록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깨닫게 되었다. 학부만 졸업한 채, 운이 좋아 덜컥 취업해버린 회사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업무를 배우는 속도도 평범하기 짝이 없던, 실수투성이의 쿠크다스 멘털의 신입사원, 그게 바로 나였다.


회사에서 눈물을 보이면 프로답지 못하고 너무 창피하니까 눈물을 훔치며, 화장실이나 건물 밖으로 뛰쳐나오던 순간들, 좁디좁은 회의실에서 자욱한 담배연기를 맡으며 회의록을 작성하던 시간들, 잘하면 그저 당연한 일이고, 못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욕은 배부르게 다 먹을 수도 있는 잡다한 업무를 처리하던 무더운 여름밤, 야근에 절어있는 나에게 시원한 맥주 한 잔의 제안은 너무나 달콤했다.


그때부터 여름밤을 좋아하게 되었다. 낮에 종일 갑갑한 사무실에 갇혀있다가, 퇴근 후에 맛보는 청량하고 시원한 밤공기, 공원에서 삼삼오오 산책하는 사람들, 회사 근처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함께하는 여의도의 푸른 밤.


​future 미래, 그리고 선물

이 두 가지는 닮은 것이 많지만 다른 점 한 가지가 있다. 선물을 매수하건 매도하건 만기가 되거나 청산 시점에는 자기 선택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인생에서는 지금의 선택이 옳고 그른지 미래가 되어도 알 수 없다. ​12년 전, 보통의 어느 여름날 밤, 가벼운 맥주 한 잔 제안이 내 인생에 미친 파급력은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때 맥주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날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있지 않았다면? 사내 메신저를 통해 전달된 메시지 한 통으로 그렇게 여의도에서 우리의 역사는 시작했다.

여의도의 푸른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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