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상형이랑 결혼했습니다만

결혼과 현실의 간극

누군가 나에게 이상형은 어떤 사람인가요? 라고 물으면,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말해왔다. "아유, 저는 얼굴은 잘 안 보고요.." (얼굴 좀 따지지 그랬니)

안경을 쓴 큰 바위 같은 얼굴, 빼빼 마르지 않은 몸,

과하게 꾸미지 않는 수더분한 스타일에, 나보다 키가 클 것, 나보다 아는 것이 많을 것, 이야기가 잘 통하고 유머 코드가 맞는 사람. 내 가족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 나의 이상형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외적인 부분만 봤을 때, 나의 완벽한 이상형은 지금의 남편이었다. 처음 회사에서 그의 얼굴을 보고, 어머 딱 내 스타일이네 라고 생각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별 거 아닌 이야기도 그의 입에서 나오는 시시콜콜한 얘기들이 뭐가 그렇게 웃기던지, '통한다'라는 느낌이 바로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때의 철없던 나는 그 사람의 이상형이 어떤 사람인지는 몰랐지만, 연애 시절 호감형 인간으로 보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진짜 웃겨서 그랬지만, 그가 얘기한 유머에 격하게 반응하며 깔깔깔 웃어주었고, 지방에서 혼자 올라와 서울살이 하고 

있는 게 안쓰러워 엄마 같은 따뜻함으로 뭐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노력했고, 나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베OO 아이스크림도 맛있게 함께 먹어주며 배려의 아이콘과 같은 면모를 드러냈다.

결혼 10년 차 된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연애와 결혼은 참 많이 다름을 느낀다. 나는 더 이상 그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함께' 먹기보다는, 내 취향의 아이스크림을 '따로' 먹는다. 아직 내 손이 많이 필요한 아이가 있기 때문에, 내 모든 '챙김'의 우선순위는 아이가 되었고, 당연히 남편은 등한시되었다. 평일의 보통 루틴은 그는 회사에서 늦게 퇴근하고, 나는 일찍 자버려서 같이 얼굴을 보고 이야기할 시간도 거의 없고, 이제 옛날처럼 그의 이야기가 재미도 없다. 입을 열면 하는 얘기는 노잼 회사 & 육아 얘기, 먹고사는 게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는 투정, 건강, 아이, 부모님들 관련 문제들뿐이라 우리는 마치 앞에 닥친 인생의 난관들을 함께 극복해나가는 운명공동체나 전우의 느낌이 훨씬 강해 보였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이상형이랑 결혼을 했는데도, 원래 다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삶의 모습이 변질되는 것일까? 이런 게 바로 권태기라는 걸까? 이 시기에는 각자의 삶에 좀 더 집중하고, 적당한 거리를 두며 원만한 부부생활을 위해 서로 조심하고 노력할 필요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새삼 20년, 30년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부부들의 모습이 위대해 보인다.

뭐 정답은 없겠지.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며 보이지 않는 것들 속에 어떤 소중하고, 아름다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으로, 함께 한 세월 동안 우리 부부에게 쌓인 신뢰와 믿음을 좀 더 공고히 다져가는 기회라고 여기며 나의 이상형과 함께 행복한 미래를 꿈꿔봐야겠다.

현실을 반영한 아재 마네킹

나도 이 마네킹처럼 현실을 받아들이고

허황된 꿈에서 깨어나야할텐데..ㅋ

#매일에세이

#이상형

#결혼과현실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