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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없이 내려왔다는 말이 옳다.
5년 전 지인이 시골 내려가서 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집이 작고 딸린 밭도 없지만 임대료를 싸게 해주겠다고 했다. 아내와 단 두 식구니까 집이 클 필요 없고, 농사도 흥미 없으니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강원도 시골이라... 썩 내키지 않았으나 한번 가보기나 하자는 심사로 차를 몰고 나섰는데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아스팔트 포장길에서 가깝고, 조용해 보였다. 산이 가까운 건 두말할 것 없고. 이만하면, 글쎄... 그래서 아내와 상의해서 저지른 시골행이었다.
수입이 거의 없으므로 생활비가 적게 들 거라는 계산도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책이나 읽고 유유자적 쓰고 싶은 글이나 쓰면 금상첨화겠다는 생각. 이때만 해도 내가 우울증에 걸릴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는 사람이 없으니 다소 쓸쓸하고 외롭겠지. 이런 짐작은 했지만.
몇 가지 하고 싶은 일들이 있었다. 클래식 듣기(워낙 문외한이라), 어설픈 대로 테너 발성 연습하기(표정이 좋아진다는 이유로), 카프카와 특히 니체 읽기. 니체는 서울살이하던 젊은 시절부터 몇 차례 도전했으나 번번이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시골살이가 특별히 어려울 일은 없지만 이웃이 없다는 것, 하루 종일 말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날이 갈수록 조금은 심각했다. 처음엔 오히려 조용해서 좋다고 생각했고 미뤘던 독서를 많이 할 수 있어서 그런 게 문제가 되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더구나 일주일에 두 차례 KTX로 서울을 오가며 전화상담을 해주고 있으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1년, 2년, 3년 지나자 심각해졌다. 스스로 느낄 정도로 우울의 깊이가 깊어졌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 번 몰려오면 감당하기 어려웠다. 산책으로 될 일도 아니었고 군립도서관에 간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었다. 더불어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 아내밖에 없다는 것(그나마 다행이지만)이 이렇게 힘 드는 일이 될 수 있구나!
음악과 언어에 조예가 깊었던 니체. 시험과 논문 없이 출판된 저술들만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불과 스물네 살에 바젤대학교 교수에 임용된 니체. 그러나 10년 만에 건강을 잃고 교수직을 내려놓은 후 시골로 들어간 니체. 정신적인 이상이 생겼음에도 저술 활동에 몰두하다가 결국 광기에 사로잡혀 쓸쓸히 죽고 만 그. ‘망치를 든 철학가’라는 말을 들은 그. 당시 유럽을 지배하던 가톨릭 정신에 맞서 “신은 죽었다”고 외침으로써 고독의 길을 더욱 자초한 니체.
세상은 그를 알아주지 않았고, 그래도 외치고 싶었던 그는 없는 돈을 들여 자비로 책을 출간해야 했다. 겨우 50권. 그나마도 팔린 것은 없었다지. 그 외로움. 고독. 우울증!
감히 그와 비견할 생각은 없지만 우울증에 벗어나기 위해 그의 책을 읽다가(주로 그를 설명한 책들) 문득 내 입에서 한숨처럼 터져 나온 소리, “니체 씨, 오늘은 안녕하신가요?”
그를 만나고 싶다. 그의 아픔을, 그의 외로움을 나누고 싶다.
만나고 싶은 니체는 책 속의 니체만이 아니다. 오늘을 사는 많은 이웃이 니체! 그 ‘니체들’에게 다시 묻는다. 니체 씨, 오늘은 안녕들 하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