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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 Pul Dec 24. 2023

니체 씨, 오늘은 안녕하신가요? _ 눈을 쓸다

- 눈을 쓸며, 마음을 쓸며

# 13     


눈을 쓸며마음을 쓸며     


 어젯밤 송창식의 <밤 눈>을 들으며 잤습니다. 새벽에 일어나니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눈은 아침까지 계속되어 꽤 많이 쌓였습니다. “눈이 올 때는 쓸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그래도 털모자 쓰고 밖으로 나가 눈을 맞으며 눈을 치웁니다. 시골에서 살며 별미 중의 하나는 눈을 쓰는 일입니다. 누구는 귀찮다고 하지만 그래도 언제 이런 일 해보나 싶으면 눈 치우는 일이 싫지만은 않습니다.


 한 달 전에 우연히 송창식의 <밤 눈>을 들었는데 참 좋았습니다. 높낮이가 많지 않은 노래. 밤 풍경이 머리에 그려지고, 소리 없이 내리는 눈 또한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했습니다. 제게는 하나의 로망이 있습니다. 눈 내리는 날의 고적함을 소설로 써보는 것.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와 같은 소설. 이 시를 읽고 임철우가 이미 <사평역>을 썼지만 무슨 상관이랴. 요즘 시대의 ‘사평역’ 같은 소설.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대화나 풍경 한 구절씩 메모해 놓고 있습니다. 메모가 많아지고, 서로 얽히면 단편 하나가 되겠지요.     

 

얼마 전에 단편소설집을 냈습니다. 실로 10년 만의 일. 기간은 오래이지만, 소설의 대부분은 올해 썼습니다. 한꺼번에 많은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쏟아진 거지요. 책은 일단 50부만 찍었습니다. 안 팔릴 게 뻔해서입니다. 영화판에서는 가끔 천만 돌파 운운하지만 문학 동네에서는 백만도 언감생심입니다. 백만이 뭡니까. 얼마 전만 해도 초판이면 으레 3천 부 찍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작비며 쌓아두는 물류비가 상상 이상이니까요. 그래도 나가는 책은 나갑니다만 그런 작가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50부를 앞에 두고 니체를 생각했습니다. 교수 자리를 내려놓고 스위스 산에 묻혀 사색에 몰두하다가 쓴 책들. 누구도 그의 외침을 들어주지 않았으나 그래도 소리치고 싶었던 니체는 자비를 들여 책을 냈지요. 그게 딱 50부라고 했습니다. 감히 니체와 견줄 생각은 아니지만 소량을 찍기로 결정했을 때의 심정은 비슷했을 겁니다.

 

나의 사랑하는 단편소설들. 여기저기 잡지사에 보내 보았으나 점잖은 글귀와 함께 퇴짜 먹은 나의 사랑하는 자식들. 처음에는 마음의 상처가 컸지만 반복되다 보니 그것도 단련이 됐는지 서글프지도 않습니다. 그런 메일을 받은 날은 의기소침해 하는 대신 일부러라도 책상에 앉아 자판을 두드립니다. 가끔은 이런 문장도 만듭니다. “편집 방침과 달라서 싣기 어렵다고? 너희 편집 방침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데?” 문장 끝에 ‘돈 되는 방향?’이라고 썼다가 지웁니다. 결국은 제가 잘 쓰지 못했으니까 싣지 않는 거겠지요. 정말 잘 썼다면 돈과 상관없이 게재했겠지요. 다른 곳은 몰라도 문학판은 아직 그런 미덕 정도는 남아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눈을 치우고 들어오니 아내가 케이크를 구워놓았습니다. 향긋한 냄새. 집안 가득 빵집 냄새가 가득합니다. 시골에서는 이런 냄새 맡기가 쉽지 않아서 한껏 냄새를 들이마십니다.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접시와 컵을 꺼내어 케이크를 담고, 일전에 선물 받은 테라로사 커피를 내립니다. 거기다가 촛불 하나. 올해도 잘 보냈다는 뜻입니다.

 사진을 찍을 때 마음속으로 케이크 옆에 내 책을 놓습니다. 작게 속삭입니다. “반가워. 초라하게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 하지만 기쁜 건 그 어느 때보다!”     

 

니체 씨. 니체 씨도 50부를 찍고도 기죽지 않고 계속 글을 썼지요? 저도 그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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