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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 Pul Mar 06. 2024

니체 씨, 오늘은 안녕하신가요?_촌,스러움

#  22 - 촌, 스러움

# 22 – 스러운     


 시골에 내려가 살기로 작정했을 때 이미 예상하고, 짐작했던 터였다. 거긴 분명히 촌스러울 거라고, 뭐든지 세련되지 못했을 테니 그걸 견뎌야 한다고.

 나 자신 세련되지 않았어도 촌스러운 것은 경멸했다. 촌스럽지 않으려고 했다. 아마도 지방 소도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진학하면서부터였지 않았을까. 혹시라도 친구들이 촌놈이라고 놀리지나 않을까 조심하던 버릇이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대로 모두가 촌스러웠다. 맘에 드는 게 없었다. 볼만한, 들를만한 곳이라고 소개한 곳을 가봐도 역시나였다. 한두 번 가면 더 가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맘에 안 든 것은 공무원들의 태도였다. 무뚝뚝하고, 친절하지 않았음에도 고향을 함께 한 사람들끼리는 서로서로 잘 통했다. 내 고장 자부심이 아니라 일종의 텃세일지도.

 어찌어찌 알게 된 사람에게 민원이 잘 처리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더니 씨익 웃으며, 막걸리 한잔 걸친 후 부서를 찾아가 아무 말 하지 않고 책상을 둘러엎으면 된다고 했다. 설마! 


 재래시장에 갔더니 신발 벗게 되어 있다. 문 열면 바로 실내여서, 신발은 사람들이 다니는 통로에 덩그러니 놓여있을 수밖에. 방바닥에 앉는 식당은 영업 끝나면 주인 식구들이 자는 방. 그래서 한 옆에 개킨 이불이 쌓여있다. 뭐라도 덮어놓던지. 가져온 앞접시에는 헹굼 물이 남아 있고. 

 하도 먹고 싶어서 물어물어 초밥집 찾았더니 손님도 없는데 종업원끼리 시끌벅적. 물병 가지고 나타난 아이는 꾀죄죄한 ‘추리닝’ 바람에 더러운 앞치마.

 느릿느릿한 노인들의 굼뜬 행동과 걸음걸이. 여유와는 거리가 먼, 더듬거리는 몸짓들. 그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한 것은 아마도 머지않은 내 모습을 미리 보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려나, 다 받아들여야지 하면서도 늘 답답한 시골 생활. 


 판소리하는 김지희 씨. 시골에 내려와 이십여 년 넘게 살면서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노래를 만들기도 하고, 연세 많은 노인네들을 찾아다니며 옛소리를 채집하기도 한다.

 동네 사람 모아놓고 하는 공연 규모는 늘 작다. 그래도 흥을 내며 열심이다. 그녀가 만든 작품 중의 하나는 <산골 나그네>. 김유정의 단편소설이다. 김유정이 고향 실레마을에 머무를 때 인근 아주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작품화했다. 

 아픈 남편을 마을에서 떨어진 물레방아에 남겨두고 근처 주막에 일 찾아왔던 아내는 그 집에 머물며 국밥도 끓이고 술손님도 받는다. 두고 보니 참하다 싶어 주인아줌마는 조금 모자란 자기 아들과 혼인을 시키는데 첫날 밤을 지낸 여자는 사라지고 만다. 예물로 받은 비녀는 베개 밑에 두고 새신랑 두루마기만 훔쳐서. 그때까지 기다리던 남편에게 달려가 두루마기를 입혀주는 여자. 옷 품이 크지만 그걸 보고 흐믓해하는 여자. 

 

 맛깔스러운 옛 단어와 토속 냄새가 물씬 풍기는 소설을 판소리로 불러주며 김지희 씨가 하는 말.

 “시골에 내려와 촌스러운 곳이라 하지 않고 ‘촌, 스러운 곳’이라 하니까 새로운 게 보이데요. 얼쑤!”     

 

 쉼표 하나 차이다. ‘촌스러움’과 ‘촌, 스러움’

 그걸 몰랐다. 김지희 씨 말마따나 쉼표 찍자 보이는 게 새로워졌다. 느끼는 게 달라졌다.


 니체 씨. 니체 씨 주장도 따지고 보면 보는 삶을 대하는 시선을 조금 바꾸자는 건데, 맞나요? 철학은 질문하는 학문이라고 말하는데, 그 말 또한 결국은 시선 바꾸기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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