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관을 마치면 관을 안방에 모시고 병풍을 치는데 강원도 지방에서는 그러지 않고 관을 밖에다 모신다. 이는 방이 작아서 장례 공간을 넓히는 의미도 있고, 특히 여름철에는 시신의 부패를 조금이라도 늦추려는 의도다. 집 뒤 가까운 언덕이나 밭을 얕게 파내고 관을 넣은 후에 가마니, 짚, 비닐 등으로 덮어서 눈비가 들어가지 않게 하고, 벌레가 꾀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쓴다. 토롱을 모시고 나면 상주들은 아침저녁으로 그 앞에 가서 곡을 하고 제사드린다.
관을 운구할 때 마당에 엎어놓은 박을 깨는데 이는 하늘 문을 열고 황천길로 가야 할 때라는 것을 의미한다. 토롱은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는 연습이라 할 수 있다. 땅에 묻혀 영원히 잠자는 연습. 왔던 길도 다시 돌아가는 연습.
토롱 다음 순서는 성복(成服)이다. 이는 상복을 입는 것을 말하며, 토롱 앞에서 상복을 입을 때 성복제를 지낸다. 정갈하게 준비한 물로 손을 씻은 후 맏상주와 남자 상주들은 굴건제복을 입고 안상주와 여자 상주들은 흰 치마저고리를 입은 후 머리에 짚으로 된 띠를 두른다. 이는 부모를 잃은 죄인이라는 의미이다. 맏상주만 굴건제복을 하고 나머지는 검은 양복에 완장을 차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여자는 완장이 대신 머리에 리본을 꽂는다.
장례 복장에 대해서는 고려 5대 왕인 경종때 묘제를 정하고 5복 제도를 만들었다. 5복 제도는 다섯 가지 상복을 입는 방법과 기간을 말한다. 죽은 사람과의 관계에 따라 참최, 재최, 대공, 소공, 시마로 구분된다. ‘최’, ’공’, ’시’는 삼베의 굵고 가는 정도를 의미한다. ‘최’는 가장 굵은 것이고, 시마는 가장 가는 베로 지은 옷이다. 상복을 입는 기간은 참최와 재최는 3년, 대공은 9개월, 소공은 5개월, 시마는 3개월이다.
참최와 재최의 상복에는 상장(喪杖)이라는 지팡이를 짚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면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모양의 대나무 지팡이를, 어머니는 땅을 상징하는 네모난 모양의 오동나무 지팡이를 짚는다. 오동나무가 없으면 버드나무를 사용하기도 한다.
장례 기간은 일정하지 않다. 3일 이후에는 장례 기간의 제한 규정이 없는데, 옛날 묘지명들을 분석해보면 보통 열흘 내지 한두 달 정도에서 긴 경우 2~3년에 이르는 등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3일장은 고려시대 이후 서민들의 장례 기간이었는데 유학자들이나 부자들이 장례 기간을 길게 잡는 예가 나오자 1934년 일제가 강제로 정하면서 이제는 관습으로 굳어졌다.
토롱을 묻히는 연습을 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참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팍 묻어버리면 망자가 얼마나 놀라겠는가. 안 그런가?
- 사진 / 정금마을회다지소리 보존회 책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