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기억수퍼 06화

기억수퍼 – 14 라떼보다 따뜻한 말

by Li Pul

가온 씨를 찾아온 청년. 술 냄새가 약간 난다. 취한 건 아니다. 눈에는 약간의 광기가 있다. 흥분 상태. 가온 씨는 따뜻한 라떼를 내민다.


죽고 싶습니다. 죽기 전에 살인도 하고 싶어요. 아무나 한 명 잡아다가 제가 느끼는 고통보다 더한 고통을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돈 때문에 행복하지 못한, 정신 나간 부모 새끼들부터 제 발밑에서 죽여버리고 싶습니다. 실신하면 정신 차릴 때까지 뺨을 때려 정신을 차리게 하고 고통스럽게 죽이고 싶습니다.


아닙니다. 사실은 저 자신이 죽고 싶습니다. 그냥이 아니라 잔인하게. 왜냐하면 제가 바보 병신 새끼니까요. 27살 취준생입니다. 자소서를 몇 번 썼는지 묻지 마세요. 저도 잘 모르니까요. 기억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쓸 만큼 썼고 할 만큼 했다는 것만 알아주시면 돼요.

아무리 생각해도 살아남기에 너무 약하고 열등하게 태어났나 봐요. 그런 부류 있잖아요. 동물의 세계를 보면, 열등한 동물은 빨리 죽는 게 답이더라구요. 제가 다른 건 모라도 동물의 세계는 열심히 봐요. 거기 짐승의 모습을 한 인간이 있거든요.

어느 인생이든 모두를 다 가질 수 없는 것처럼, 모두가 다 행복할 순 없는 거겠지요. 제 인생도 행복하지 못했던 수많은 인생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자신감? 갖고 싶어요. 그런데 그게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자소서 한 번 쓸 때마다 자존감, 자신감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요. 진작 더 떨어질 자신감도 없지만, 하여튼 그래요.


부모님이라는 인간은 격려해주기는커녕 나가 죽으래요. 한강이 저 때문에 있는 거래요. 미친… 자기는 얼마나 공부를 얼마나 잘했다고. 공부를 잘했으면 그 나이에 말단 공무원이겠어요? 꼴에 술 마시고 들어오면 설교가 두 시간. 옆에서 엄마는 박자를 맞춰요. 진상들!


한강 나가기 전에 들렀어요. 라떼가 따뜻하네요. 이런 말을 들어봤으면. 단 한 마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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