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기억수퍼 07화

기억수퍼 - 13 행복이라는 알약이 있을까

by Li Pul

가뜩이나 삶의 가치를 못 느꼈는데, 세상이 점점 미쳐 돌아가는 것 같아요. 아니, 이미 미친 세상을 더 깊이 보게 된 것이 맞겠지요. 신을 믿지는 않지만,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언젠간 모두가 행복한 아름다운 세상이 올 것이라고 인간들을 희망고문하는 것만 같네요. 삶의 목적을 아는 사람들, 세상의 아름다운 면을 잘 보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 너무 부럽고 질투가 납니다.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행복한 순간조차도 다가올 슬픔과 분노를 걱정하느라 행복을 충분히 느낄 여력이 없습니다. 주변에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왜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보다도 죽고 싶은 생각이 들까요. 매일 밤 잠들면서 내일 아침 아무 소식도 없이 죽어있기를 바라요.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모두의 기억 속에서도 증발해버렸으면 합니다.


이래서는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어요. 그럴 때는 자해를 합니다. 팔이나 허벅지. 하고 나면 조금은 시원해지는 느낌. 알아요, 그게 가짜 감정이라는 걸. 그래도 그나마 위안이 된다고나 할까.

언젠가는 빵빵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빨간불인 횡단보도를 걷고 있더라구요. 배고프다는 생각도, 먹어야 하거나 자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 때가 많아요. 병원에 가고 싶지 않아요. 병원에서 약은 줄 테지만 살아야 할 인생 목적을 주지는 않을 것 아닌가요.

자살은 무섭고, 차라리 누가 죽여줬으면 좋겠어요. 누가 묻지마 살인으로 죽여줬으면 좋겠어요. 오늘도 참고 참다가 자해를 했어요. 그러면서 제가 참 나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나쁜 거 맞지요?


중1 여학생의 하소연. 얼굴이 유난히 하얀 그녀.

카페 기억수퍼 주인 가온 씨는 들어주는 사람이다. 귀로 듣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듣는다. 듣기만 하고 말하지는 않는다. 가슴은 입이 없기 때문이다. 가슴에 입이 있어도 해줄 말이 없다. ‘그래도 열심히 살아 봐’ 이런 진부한 말은 하기 싫고, 해봐야 도움이 되지도 않으니까.

가온 씨는 따뜻한 눈길만 보낸다.

keyword
이전 06화기억수퍼 – 14 라떼보다 따뜻한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