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노동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왕풍뎅이 시인 Jan 27. 2020

이사

화장실이 두 개가 되었다.

화장실이 두 개가 되었다. 드디어!


 작년 9월 초에 이사 갈 집을 계약했다. 처음 집을 보고 계약서를 쓰기까지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사를 가야겠다고 며칠 동안 중얼거리더니 하루 이틀 만에 집을 계약하는 것을 보고 주위 사람들은 걱정이 많았지만, 사실 몇 년을 준비한 일이다. 어느 하나를 염두에 두고 오랫동안 아이쇼핑을 하다 보면,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을 단숨에 알아볼 수 있게 된다. 

 * 나의 아파트 탐색기 :  https://brunch.co.kr/@2percent/50


 이사 갈 집 상태가 썩 좋진 않아서 따로 인테리어를 해야 했다. 샤시와 마루만 그대로 두고 싹 다 고쳤다. 관심은 있었어도 어휴 난 절대 못해, 하고 엄두를 내지 못하던 일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에 한편으로 잘됐다 싶기도 했다. 10월에는 인테리어 계획을 세웠다. 좋아하는 카페나 식당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떠올려보기도 하고, 네이버 '오늘의 집'(강추)도 보고, 핀터레스트도 들여다보고, 나의 능력치와 예산을 고려하여.... 단순하게 화이트와 우드톤으로 결정했다. 11월에는 다행히 살던 집이 팔렸고, 이사 갈 집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11월 내내 불행했다. 괴로웠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물론 업체와 함께 하는 일이었지만, 인테리어란 타일 하나부터 변기에 벽지, 조명까지 모든 것을 일일이 선택해야 하는 선택고문의 연속이다. 결혼을 너무 휘뚜루마뚜루 한 탓에 그때 미뤄두었던 결정들을 몰아서 하는 벌을 받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미심쩍은 부분은 재차 확인하고, 퇴근 후 들러 감독하고, 잔소리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해야 한다는 건... 잔소리를 듣는 것만큼이나 힘든 고문이더라는. 스트레스로 살도 빠지고 피부도 엉망이 되었고 그냥... 화가 났다.

  

집 선택의 기준

정말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따져본 것 같다..


1. 단지선택(5점 만점)

  - 브랜드 : 2점

  - 준공연도 : 4점

  - 세대수 : 3점

  - 지하철 역까지의 거리 : 4점

  - 학군 : 3점

  - 편의시설 : 5점

  - 공원 : 5점

  - 시세 상승 가능성 : 5점


2. 세대 선택(5점 만점)

  - 평면 : 4점

  - 향 : 5점

  - 층 : 5점

  - 화장실 위치 : 5점(화장실이 거실과 멀고 옆 세대와 붙어있지 않은 집)

  - 수납 : 3점


인테리어하고 배운 점


1. 전체 다 셀프 인테리어를 할 것이 아니라면 한 곳에 턴키를 주는 것이 좋다. 비용을 생각하면 일부 쉬운 공정은 내가 사람을 찾아서 하는 것(셀인)이 훨씬 절약이 되긴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서로의 공정에 책임을 미루게 되는 일이 100% 발생한다. 인테리어를 잘 마무리하려면 책임을 물을 사람이 필요하다.


2. 견적을 받을 때는 공정을 세부적으로 나누어 받고 모델도 사전에 정해놓자. 예를 들어 '화장실 1식 300만 원' 이런 식 보다는 철거/타일/위생도기 등으로 나누어 받되 모델명을 확정할 수 있는 것은 미리 확정하자. 인테리어를 하다 보면 공정이 추가되거나 빠지기도 하고 모델이 바뀌기도 하는데 비용 증감의 기준이 되어준다. 미리 정해놓지 않고 인테리어 진행 중에 모델을 선택하다가 업체에서 당초 견적 범위를 넘어서는 모델이라 추가 비용이 든다고 해버리면 할 말이 없음.


3. 업체 선정은, 가격도 중요하고 포트폴리오도 중요하지만 최종적으로는 견적을 받고 상담하는 과정에서 편했던 곳을 고르는게 좋은 것 같다. 내가 원하는 바를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최대한 수용하려고 하는 자세를 가진 곳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안그래도 스트레스 받는데 업체 눈치까지 보면서 일할 수는 없다. 포트폴리오는.. 어차피 중요한 것은 디테일(마감)인데 인터넷 상에서 디테일을 확인할 수는 없더라는. 나의 경우는 지인이 진행했던 업체를 소개받아 했는데 '기본은 하고' '정직하다'라는 말을 믿고 했다. 어차피 컨셉이나 내장재 선택은 내 몫이고 마감의 퀄리티도 결국엔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4. 각 공정은 귀찮아도 매일! 와서 확인하자. 어느 한 과정에서 뭔가 잘못되었는데 그걸 확인하지 못하고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게 되면 돌이킬 수가 없다.  우리 집은 업체에서 부엌 조명(사진 속 4구짜리 등)을 빼먹는 실수..를 저질렀는데 다행히 전기공사 중에 확인하고 선을 하나 바로 더 빼서 처리할 수 있었다..(하.. 사리나옴) 전기공사 때 확인하지 못하고 넘어가면 전기기술자를 하루 더 불러야 하고 그건 또 비용으로 얹어진다. 다른 공정이 진행되어 이미 다 덮어버린 것을 다시 다 뜯어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5. 인테리어 비용 지불 시 잔금은 꼭 공사 완료 후 하자 보수가 마무리되고 지급하도록 계약서를 작성하자. 매일 들러 잔소리를 한 덕에 오히려 하자 보수할 일은 별로 없었지만, 인테리어뿐만이 아니라 뭐든지 돈을 다 줘버리고 나면 돌연 약자가 되어버린다. 



이사 온 지 한 달이 넘었다. 인테리어 하면서 너무 힘들고 집이 끔찍해져 1년만 살고 도로 팔아버리겠다고 다짐하고 들어왔는데, 내 맘에 들게 만들어 놓은 집이니만큼 너무 좋다. 삭을 때까지 살지 않을까 싶다. 다시는 인테리어 공사를 못할 것 같기 때문에.. 이만큼 마음에 드는 집을 다시 찾을 수는 없을 것이므로.


어쨌든, 이 집에서의 첫 봄을 기다리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귀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