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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Oct 18. 2021

덜렁대는 엄마는 오늘도 사고를 친다

난 왜 이럴까

오랜만에 새벽에 깼다. 잠을 설친다. 아이가 셋이었을 때는 새벽마다 일어나 글을 쓰기도 했는데 아이가 넷이 되면서 그마저도 힘들어졌다. 하루 종일 밥 짓느라 부엌에서 동동거리고 여기저기 널브러진 것들을 치우다 보면 녹초가 되어 잠들기 일쑤고 일어나 보면 아침이다.


새벽은 늘 동경하는 시간이지만 삶의 고됨을 달래주기엔 늘 수면 시간이 부족했다. 다행인 건 새벽에 눈 못 뜨고 많이 자도 나 자신을 다그치거나 닦달하지는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새벽 어스름이 걷히고 이미 아침이 환히 밝아올 때 잠에서 깨도 허망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누운 채로 주먹을 쥐었다 펴고 발차기를 하면서 몸을 조금씩 옴짝거리면 ‘아 정말 잘 잤다. 잠이 달다. ’ 하며 감사함이 온몸을 감싼다.


어젯밤, 잠들기 전 침 삼킬 때마다 목이 따끔거리고 코가 막힌 듯했다. 영락없는 감기몸살 기운이다. 얼른 물을 데워 따뜻한 홍차를 우려 마시고 평소 밀쳐두었던 건강식품도 챙겨 먹고 잠을 청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침을 ‘꼴깍’ 해 본다. 괜찮다. 목이 안 아프다. 자는 동안 몸이 회복되었다. ‘정말 잠이 보약 맞는구나.’ 더 큰 감사가 밀려온다.


오랜만에 새벽에 눈이 떠졌다. 잠이 보약이니 더 자려고 이불을 끌어안았다. 다시 잠 속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든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이라 여겼다. 그럴수록 정신이 맑아진다. 큰 아이 발밑에서 큰 대자를 그리며 자는 막둥이 사이를 살금살금 빠져나왔다. 아이들 돌보며 틈틈이 읽던 책을 펼쳐 읽었다. 읽고 있으니 또 쓰고 싶어 진다.

사실, 오늘부터 초등 저학년 두 명이 학교에 간다. 어제 방학 숙제를 점검하고 가방을 챙겼다. 내색은 안 했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간다고 하니 기뻤다. 아이들 앞에서는 기쁨을 숨겼지만 잠을 설치는 걸 보니 숨겨놓은 설렘이 새 나오는 듯하다. 이번에 코로나와 방학으로 두 달 가까이 아이들과 집에 머물렀다. 아이들이 학교 대신 집에 머문 시간만큼 난 소진되어 갔다. 학교의 필요성과 고마움을 절감했다. 배움과 식욕을 채워주는 참 고마운 곳임을 그 임무가 엄마에게 전가되었을 때 알게 됐다. 코로나는 이렇게 당연하게 여겼던 많은 것들이 참 고마운 것이었음을 알게 했다.


 어제 큰 아이 충치치료를 위해 치과에 갔다. 주차장에 들어섰다. 몇 백 원 아껴보겠다는 신념으로 기어이 ‘경차 자리’를 찾아내 주차를 하는데 ‘꽈당’ “엄마 조심해.” 충돌보다 아이의 비명은 늦었다. 차가 멈추자 아이들이 서둘러 차에서 내려 현장 확인에 나섰다. “엄마 박살 났어.” “뭐가 박살나?” 얼른 뛰어내려 뒤로 돌아가 확인했다. 후미등 커버가 깨져있었다. 내 차는 여기저기 안 까인 곳이 없다. 경계석을 올라타는 것은 기본이고 주차장 기둥을 긁어 옆구리에 긁힌 자국이 선명하다. 너무 긁고 다니니 이젠 아예 차를 고칠 생각도 안 한다. 요즘 한 번씩 차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찾아들 때가 있었다. 오늘 사고는 ‘역시 난 절대 새 차를 사면 안 된다’는 생각을 굳히게 했다. 나의 덜렁대는 성격을 자책했다.


 얼마 전에는 며칠을 고민하다 고가의 믹서기를 구입했다. 재료를 넣으면 알아서 믹서와 가열을 가해 요리가 뚝딱 완성되는 고마운 것이었다. 요즘 삼시 세끼 집밥 차리는 나의 수고를 덜어주는 일등공신이다. 이것을 깼다. 떨어뜨리거나 어디에 부딪혀서 깨졌다면 이렇게 나 자신이 밉지는 않을 것 같다. 마늘을 갈고 갈린 마늘을 숟가락으로 파서 꺼냈다. 또다시 마늘을 갈기 위해 다음 대기 중인 마늘을 넣고 스위치를 눌렀다. 숟가락과 함께. 강력한 모터는 숟가락까지 갈아버리겠다는 일념으로 돌아갔고 유리로 된 몸체는 금이 가고 안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그 참사를 확인하는데 어이가 없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눈물이 아니라 웃음이 났다. 속상함보다 자책이 몰려왔다. 정말 창피해서 남편에게 말도 못 하고 비상금을 털어 몰래 본체를 다시 구입했다.


 원래 세심하지 못하고 덜렁대는 성격인데 아이까지 많아지면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버거울 때가 많다. 할 일은 많고 시간은 부족하니 늘 서두르고 재촉한다. 이 서두름에 덜렁댐이 얹어지자 사고가 속출한다. 사고 후 자책과 반성은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그릇 깨는 일도 일상다반사니 부엌에서 요리를 시작할 때면 늘 심호흡과 함께 ‘천천히 하자. 서두르지 말고.’를 되뇌며 쌀을 씻고 나물을 무치고 국을 끓인다. 머릿속에 그간 내 덜렁댐이 불러온 참사들을 급히 소환하면서 ‘사고 치는 것보다 조금 느린 게 낫다.’고 나에게 속삭인다.


 아이들과 하루 종일 붙어있으면서 사고도 많이 치고 소리도 참 많이도 질러댔다. ‘나 엄마 안 할래.’ 선언하고 현관문을 나서고 싶었던 적도 많다. 내 삶을 돌보는 시간보다 다른 삶 돌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다정함은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고 별일 아닌 일에 수시로 버럭버럭 화를 냈다. 아이들에게 화내고 돌아서면 후회하고, 덜렁대다 사고 치고 돌아서 자책하는 시간들이 반복되었다.


 코로나 상황이 어느 정도 진정되고 아이들이 각자 삶의 터전으로 갈 수 있게 된 것이 반갑고 기쁘다. 내 삶 구석구석까지 침투해있던 아이들이 집을 비운다니 생각만 해도 설렌다. 너무 정신없이 내달렸던 나 자신을 다독이려 한다. 찬찬히 내 마음을 살펴 글도 쓰고 책도 읽으면서 구겨졌던 마음을 조금씩 펴보고 싶다. 할 말은 많았으나 사느라 꾹꾹 눌러 담아 둔 것들을 조금씩 조금씩 글로 풀어내고 싶다. 이런 설렘에 잠 못 이루고 새벽 글쓰기를 한 것이리라.


잠 못 이루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방학 내내 9시가 넘도록 잠을 쿨쿨 자던 둘째가 6시도 안 되어 일어나서 책가방을 챙기고 옷을 다 입고 등교시간을 기다린다. 친구들도 보고 싶고 선생님도 보고 싶다며. ‘그래 그래 사람은 하루 종일 붙어있다고 좋은 것이 아니고 떨어져 있다 다시 만나야 애틋한 것이 꼭 연인 사이만 그런 것이 아니야.’라는 생각이 살포시 내 마음에 얹어지자 웃음이 난다. 학교 가는 것이 나만 좋은 것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나 혼자 너무 좋아하면 아이들한테 약간 미안해질 뻔했는데 우리 함께 좋은 것이라 참말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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