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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Oct 04. 2021

마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다

삶의 지평을 넓힌 요양보호사 공부

유독 내 곁에는 아픈 몸을 사는 사람이 많았다. 친청 아버지는 몇 해 전 대장암 판정을 받으시고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통해 수술하신 몸으로 살아간다. 시아버지는 젊을 때부터 간이 안 좋으셨는데 요즘은 간성 혼수까지 한 번씩 겪어내는 몸으로 살아간다. 난 자연스럽게 늙음과 죽어감에 관심이 많아졌다. 친정아버지와 시아버지의 병을 이해해 보려는 시도로 생로병사의 비밀이나 명의와 같은 프로그램도 찾아보고 몸에 대한 책들도 읽으면서 여러 날을 보내기도 했다.

주변에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았고 그럴 때마다 늘 죽음이란 것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구나, 싶으니 자연스럽게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것들에도 관심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이 직업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집안에 직접 이 일을 하고 있으신 분들도 몇몇 있으셔서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들도 많이 들었다.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퇴직 후에나 취득할 수 있는 자격증이었을 것이다. 넷째를 낳고 코로나 국면을 헤쳐나가며 육아휴직을 연장한 상태였다. 복진 전, 해야 할 일에 리스트 업을 해놓고 때를 기다렸다. 학원에 전화부터 했다. 한 달 동안 하루 8시간 학생처럼 공부하고 시험을 치르면 된다고 했다. 코로나 시국이라 현장 실습도 학원에서 영상 보는 것으로 대체한다고 했다. 우선 내가 학원에서 늦게 돌아오면 그 시간 아이들의 하원을 도와주셔야 할 어머님과 상의했다. 흔쾌히 동의했다. 그다음에 말한 남편도 학원비까지 대주면서 응원과 지지를 보냈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언제나 젊음이 내 안에 머물러 있을 줄 알고 자만하고 살지만 늙고 병들고 죽는 건 인간의 숙명이다. 의학의 눈부신 발달로 수명이 연장되었고 인간은 누구나 기간만 다를 뿐 아프고 병든 몸으로 살다 죽게 된다.

첫 수업 시간, 젊은이가 나밖에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우려가 무색하리만큼 젊은 사람들이 많다. 깨어있는 사람들,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들, 내가 노후 대책, 유비무환이라 여겼던 '가족 요양'이 지금 당장 필요해 온 사람도 두 명이나 있다. 특히, 아내가 아파서 더 이상 직장 생활을 할 수 없는 처지에서 가족 요양을 위해 이 자격증을 따러 왔다는 한 할아버지의 떨리는 말소리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강연을 시작하면서 서울대 신입생 설문조사에서 '부모님이 몇 세까지 살길 바라느냐'라는 질문에 60세라고 답했다고 하는 말이 충격적으로 들렸다. 20살 청춘에게 60이란 나이는 저 멀리 있는 이야기처럼 생각이 되었던 모양이다. 자신에게는 닥치지 않을 일로 여기는 오만불손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연세 지긋한 부모님이 여기저기 안 아픈 가 없다며 앓는 소리를 하면 "좋은 요양원을 알아봐 드릴까요?"라고 말한다는 말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노인의 개념부터 시작해서 치매, 뇌졸중, 파킨슨 질환 등 노인성 질환에 대해 배우고 섭취 요양과 배설 요양을 배우는 시간을 통과해 임종 요양까지 배우고 나자 수업은 막바지에 이르게 되었다. 노인의 질병에 대해 배우려니 인간의 인체에 대해 알아야 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신묘막측한 몸에 대해 배웠다. 살아가는 내내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생명의 주체인 피가 좋아하는 음식을 가려먹는 법에 대해서도 배웠다. 아무리 건강한 먹거리를 챙겨 먹고 운동을 해도 인간은 누구나 늙고 자신의 힘으로 먹고 싸는 일을 할 수 없는 때가 온다. 그런 때가 오기 전에 죽음을 맞는 것이 복일 수 있겠구나, 잘 사는 것만큼 잘 죽는 것이 중요하구나. 살아있을 때의 모든 걸음걸음이 죽음의 질을 결정하겠구나, 여러 마음이 스쳤다.


누구나 한 번은 맞이하게 될 죽음이다. 수업을 들으면서 그간 내 삶을 관통했던 너무 이른 나이에 안타깝게 생을 끝낸 그런 몇몇 죽음이 떠올랐다. 죽음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양, 외면하고 살지 않고 당장 유언장을 작성해 가슴에 끼고 살리라 마음도 먹었다. 먹고 싸는 기본적인 일만 스스로 할 수 있어도 그저 감사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기면서 삶 앞에 겸손해졌다.

학원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책도 내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치매에 걸린 시아버지를 7년 동안 집에서 모셨다는 분, 아픈 남편 병시중을 오랫동안 해오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분,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내를 돌보고 있는 분까지. 여러 사람책을 만났다. 모두 상황과 처지는 다르고 사는 모습도 다르지만 우리는 이곳 '요양보호사' 학원에서 만났다. 이 공부를 하러 오신 분들은 기본적으로 노화, 돌봄, 질병 등에 관심이 있거나 직접 연루되어 있었다.

공부하는 내내, 특히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다. 이제는 죽을 날이 더 가까워진 노쇠한 몸을 사는 사람들. 자식들 키우느라 평생 써먹은 몸뚱어리는 한 곳 한 곳 고장이 나기 시작한 내 곁의 늙은, 귀한 존재들. 학원 다니는 기간 중에 친정에 다녀왔다. 전에는 이것저것 걸리는 것이 많고 네 아이 챙겨 그 먼 곳을 다녀오는 것이 번잡스러워 한 번씩 친정 가려면 큰 각오와 결의가 필요했다. 이번엔 보고 싶은 마음 하나면 충분했다. 그 마음 하나가 막둥이 딸을 엄마 아빠 품에 안기게 했다. 늙고 야윈 엄마 아빠 품에 안겨 "막둥이 딸 이렇게 긍정적이고 건강하게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라고 이제껏 하지 못한 말을 했다.


변화는 시댁 쪽을 향해서도 일어났다. 전에는 시어머니 말 한마디에 휘청대고 속이 시끄러울 때가 많았다. 수시로 내 마음을 진창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영 못마땅하고 싫었다. 이제 그런 것은 어떤 것도 문제 될 것이 없다. 그저 어머님이 아픈 몸 말고 건강한 몸으로 머물러 계신다는 것 자체가 감사했다. 또한 내향성, 경직성, 조심성 등 노인의 특성에 대해 알고 나니, 노인의 마음 상태와 그 사람이 살아내고 있는 세계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시댁 어른들 때문에 삶에서 질척대던 시간들이 줄었다.

요양 보호사 공부를 하게 되면서 매사에 더욱 감사하는 마음이 커진다. 지금까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던 것들에 대한 '생존'을 위한 기본 욕구가 충족되는 것만으로도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함을 마음에 새긴다. 먹고 싸는 기본적인 일만 스스로 할 수 있어도 그저 감사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기면서 삶 앞에 겸손해졌다. 전에도 걸을 수 있는 다리, 볼 수 있는 눈, 들을 수 있는 귀, 먹은 걸 잘 소화시켜줄 건강한 오장육부. 이 모든 것을 허락하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살았다. 이 두루뭉술한 감사가 내가 살아보지 못한 나이 든 삶을 엿보면서 매우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감히, 헤아릴 수 없었던, 교만한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했던, 나랑은 안 맞는다고 불평불만 늘어놓던 마음이 수그러든다. 남을 돕는 요양 보호에 대해 배우려다 내 삶이 감사와 행복에 더 가까워진 경험을 했다.


에필로그

수업 마지막 날, 강의실 여기저기에서 동시에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이곳저곳 탄식 소리가 흘러나온다. 얼른 문자를 확인했다. 안전 안내 문자였다. '코로나 단계 격상으로 전면 등교 중지'를 알림. 아직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사람들이 몇 있었고 우린 침을 튀기며 이 기막힌 상황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정말 타이밍도 기가 막히네요. 어쩜 이렇게 수업 끝나자마자 이런 일이 있어요.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겠죠. 수업 듣는 중에 이런 일이 생겼다면 정말 난감했을 거예요."


금요일 오후, 240시간의 요양보호사 이수 시간을 마치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네 명의 아이를 돌보는 사람이 되었다. 주말을 보내고 당장 월요일부터 새벽부터 준비하고 학원으로 내달리는 대신 아이들 밥을 짓고 학습을 시키고 고된 엄마의 삶이 시작됐다. 정신없이 아이들 틈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새벽밥 지어먹고 아이들 챙겨 어린이집과 학교 보내고 학원에 가서 하루 종일 공부하고 돌아오던 그 시간들이 꿈같이 느껴졌다. 아이들 넷 돌보는 시간 속에서 몸은 고되고 삶은 팍팍했으나 뜨거웠던 40일간의 시간들이 내 삶을 통과하면서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숙연해졌다. 여전히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고 화도 냈지만 어떻게든 그 상황과 처지에서도 감사할 거리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요양보호사자격증취득

#요양보호사공부가내삶에끼친영향

#죽음을옆에끼고살자

#잘살아야잘죽을수있다



 수업 중간 쉬는 시간, 난 늘 뭔가를 썼다.


옆의 짝꿍은 뭐가 이렇게 맨날 바쁘냐 물었다. 내 시간이 없이 산 사람이라 이렇게 내 시간이 생긴 건 만으로도 좋았다. 그래서 틈만 나면 1분 1초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고 알뜰하게 사용했다.

아침에 아이들 챙긴 후 날 챙겨 직장이 아니라 공부하러 가는 것도 너무 좋았다. 그래서 수업에 집중하고 쉬는 시간, 점심시간 틈만 나면 뭔가를 자꾸 썼다.

육아의 최전선에서 엄마의 삶을 살아내는 내가 삶과 죽음에 대해 공부하고 배우는 것이 너무 좋아 또 뭔가를 썼다. 학원 다니며 공부하시간이 요 근래 삶의 밀도가 최대치였던 것 같다. 배우고 읽히고, 읽고 쓰고, 차에서 내려 학원으로 걷는 중엔 세바시 강연도 듣고 이 모든 것의 선순환이 오랜만에 아이들과 떨어진 온전한 내 시간 속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시험지를 다 풀고 시험지 끄트머리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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