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도 유튜브도 작곡도.
K-PAX에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방식의 가족이 없습니다. 사실, 우리 별에서 '가족'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봅니다. K-PAX의 아이들은 생물학적 부모에게서 양육되지 않아요, 모두에게 길러지죠. 한 사람에게 또 그 다음 사람에게, 아이들은 우리들 사이에서 돌아가며 깨우치게 됩니다.
K-PAX에는 결혼이 없어요. 아내도 없구요. 남편도 없습니다. 가족이 없죠.
- 영화 K-PAX(케이펙스), 외계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Prot(케빈 스페이시)의 대사 中
고1 때 '케이펙스'라는 영화를 보고 굉장히 획기적이라고 느꼈었다. 나도 저 별에 가서 살고 싶다고 부러워했다. 당시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야자시간에 짝에게 영화 이야기를 30분 가까이 이야기한 것 같은데 ―아무래도 당시 요약하는 능력이 부족했던게 아닐지― 학교가 끝나고 뒷자리 남학생에게 "영화 내용이 궁금해서 네 이야기 듣느라 공부를 하나도 못했다"는 푸념도 들었다.
나는 혼자있는 것을 상당히 좋아한다. 대학교 3학년 때 작곡과 전공을 추가하면서부터 너무 바빠져 의도치 않게 아싸(outsider)가 되면서 인간관계는 좁아졌고, 회사 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집순이가 되었다. 심지어 RPG 게임을 하더라도 솔플(solo play)만 했는데, 타인과 함께하는 레이드나 길드에는 관심이 없었다. 코로나 확진으로 격리가 되었을 때에도 평소와 너무 비슷한 생활이라 불편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EBS 한국기행을 보며 울릉도 산 속에 고립되어 사는 생활을 동경한 적도 있었다. (막상 울릉도에 여행 다녀온 뒤에는 평지가 더 낫겠다는 결론을 냈지만.) 혼자 노는 것은 너무나 재미있고, 집에서 할 것은 무궁무진하며, 나는 타인에 비해 외로움을 덜 느끼는 듯 하다.
다 커서 깨달은 사실인데, 같이 살아온 가족들은 모두 외향적이다. 학창시절 오빠는 친구가 정말 많았고 친구들이 집에 놀러도 자주 왔다. 언니는 친구들 사이에서 리더같은 성격이었다. 시골로 이사간 후에는 비교적 젊은 우리 부모님께 도움을 청하거나 논의를 하러 동네 어르신들이 우리 집에 자주 오셨다.
나도 반 친구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고, 주변에 앉은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오래 알고 지낸 친구와는 비밀도 나누며 평범한 인간관계를 가진 학창시절을 보냈다. 다만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듣는 게 주가 되고 말수를 아끼고 싶어졌다. 모든 사람들의 말주머니에는 다양한 소재가 잔뜩 들어있어서, 나는 그냥 들어주기만 해도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나의 말을 들을 공간조차 없어보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어차피 나는 진지충이라 이야기도 재미있게 하지 못해서, 듣는게 더 나았다. 그렇다보니 얕고 넓은 인간관계는 나의 피로도를 점점 올려놓았다.
회사에서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좋았지만, 타인의 험담을 하는 장면들은 결이 다른 피로감을 불러 일으켰다. 회사라는 조직은 각자의 목적을 위해 모였다가, 퇴사하면 다시 볼 일이 없는 관계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불편감을 느끼는 상사나 동료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과는 회사 안에서나 유효한 관계인거지, 퇴사하면 볼 일 없는 남이다. '같은 기차를 탄 시끄러운 사람' 정도라 생각하면 인생 전체를 보았을 때 불쾌한 관계에 의미를 둘 필요가 없어진다. 회사에서의 인간관계에 진심으로 대했다가 상처를 받은 경험이 누구나 한 번은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러했고, 10년 쯤 되었을 때 "회사 업무는 즐겁지만 조직 생활은 맞지 않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남겼다.
혼자 일하는 직업을 가지려고 1인 기업을 만들어본 적도 있었으나, 온전히 혼자 일할 수는 없다고 결론을 냈다. 외주를 한다면 고객사의 니즈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긴밀한 소통이 필요할 것이고, 개인에게 직접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고객 그리고 중간업체 등과 소통해야한다. 특히나 요즘의 마케팅은 끊임없는 쌍방 소통이다. 리뷰들이 쌓이면 사업의 흥망을 이끌 이정표가 될 정도의 힘을 가진다. 이 모든 과정에서 최소한의 공감과 대화는 필요하다. 사실, 일은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고 돈이란 남의 주머니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니, 애초에 혼자 일하는 직업이란 논리가 어려워보이긴 하다.
취미생활도 어찌보면 상호작용일 수 밖에 없다. 글, 그림, 영상 등 누군가의 콘텐츠를 보게되면 작자의 생각에 공감하거나, 작품 속 인물에 나를 투영하거나, 그와 다른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게된다. 게임을 하면 모르는 사람과 함께 미션을 수행하거나 도움을 주고 받는다. 게임 내에서 그마저도 하지 않았던 나도 사실은 NPC랑 나누는 대화를 그렇게나 즐겼다. 존재하는 모든 NPC에게 최소 한 번은 말을 걸고 다녔으니.
브런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냥 글이 쓰고 싶었다면 일기장에 쓰던지 워드에 남겼으면 될 것을, 온라인에 노출하기 위해 모르는 사람들에게 심사까지 받아가며 글을 발행할 수 있는 권리를 얻어내고, 라이킷과 구독자 수에 눈이 머무는 때가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흔적에 조금은 마음의 진동을 느끼는 것이 분명하다. 아무나 접근 가능한 플랫폼에서 조회수가 0이더라도 글을 계속 업로드하며 글쓰기의 즐거움을 느낄 사람은 몇이나 될까? 즐거움에 있어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상당 부분 영향력이 있는 건 틀림이 없어보인다.
지니 레전드 아카이브 시리즈 '내 귀에 종신보험, 윤종신'에서 윤종신은 곡이 자신의 배설물과 같아, 만들고 나면 잘 듣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윤종신도 큰 사랑을 받은 노래나 기대치 않은 반응을 얻었던 노래, 당시의 상황들을 설명할 때면 더 밝은 목소리로 즐겁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2015 월간 윤종신 2월호 'Birdman'이란 노래를 통해서는 멀어져가는 대중의 관심에 대한 생각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대가 좋아했으면. 나를 바라봐 줬으면. 잔뜩 멋 부린 내 모습을 좋아해 준 그대들 다 어디 갔나요, 나 여기 있는데."
내가 작곡을 취미로 굳히게 된다면 물론 내가 들었을 때 마음에 드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서 하는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면 취미 생활은 얼마동안 유지될까? 종종 곡을 업로드할 플랫폼에 대해 고민을 하곤 한다. 조금은 일방적인 플랫폼에서 가끔씩 눌리는 좋아요 정도만 받으며 기뻐할지, 본격적으로 음원으로 거래까지 할 수 있는 플랫폼에서 가끔 수익이 날 때 즐거워할지, 활발한 소통을 할 수 있는 곳에서 청자와 공감의 메시지까지 주고받을지. 소통의 깊이는 작가의 선택이겠지만, 혼자가 좋은 나에게도 타인의 온기가 필요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