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쁜 그미 May 02. 2024

내 취미가 어때서

즐거움에는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지 말자!

미소가 어울리는 그녀, 취미는 사랑이라 하네.

만화책도 영화도 아닌, 음악 감상도 아닌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취미가 같으면 좋겠대.

주말에는 영화관을 찾지만, 어딜 가든지 음악을 듣지만, 조금 비싼 카메라도 있지만,

그런 걸 취미라 할 수는 없을 것 같대.


작사: 정바비, <취미는 사랑>



불과 얼마 전 타이틀이 남자친구에서 신랑으로, 카테고리가 애인에서 가족으로 바뀐 그를 처음 만난 건 우리가 서른살 때였다.


30살의 그는 시험을 준비 중인 신분이었고, 공부를 하지 않는 시간에는 내가 아니면 친구를 만났다. 집도 가까웠던 우리는 연인도 아니면서 저녁마다 만나 수다 타임을 가졌었다.

7년 후 다시 만나 연인이 된 그에게는 퇴근 후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게 1순위였고, 내가 다른걸 하고 있으면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보았다. 그렇다면 그의 취미는 어쩌면 사랑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취미가 뭐에요?" 라고 물었을 때

"유튜브 찍어요"라면 모를까 "유튜브 봐요"이면

"술 빚어요"라면 모를까 "술 마셔요"이면

"동호회 나가요"가 아니라 "친구 만나요"이면

뭔가 시간을 허비하는 느낌이 들고, 제대로 된 취미가 없는 것 같단말이다.


일하지 않을 때 즐거우려고 하는 활동이라는데!



나처럼 목표 지향적인,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개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답답해하거나 안타까워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시간 아깝게', '비효율적이게', '젊음을 낭비', '인생은 짧은데', '허송세월을' 등의 말들이 떠오른다. 만나는 친구의 취미가 게임이거나 예능 시청이면 마음 한켠이 갑갑하고 그의 미래가 염려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타인의 시간은 타인만의 것이니, 내가 무언가를 판단하고 또 실망하면 안된다고 스스로 타이른다. 그의 시간에서 '우리'를 위한 시간을 내어주고 그 시간에 나에게 온전히 집중해준다면 행복할 따름이다. 특히 타인이 즐거움을 추구하는 시간에 대해서라면, 나는 기꺼이 존중해줄줄 알아야 하겠다. 유튜브 채널 요정재형에 출연한 오승훈 아나운서 겸 변호사는 공부의 즐거움이 남에게 부끄럽지 않았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너무나 공감이 되는 이야기다. "게임이 취미에요"가 민망할 수 있다면, 다른 의미로 "공부가 취미에요"라 하기 민망하던 순간들이 기억난다.


하지만, 민망한게 뭐 어떻고 민망을 혼자 상상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내면소통'의 저자이신 김주환 교수님은, 인정 중독에서 벗어나야한다고 말씀하신다. 타인의 시선, 나의 체면, 사회적 위신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내가 일 끝나고 생긴 여유 시간을 나만의 즐거움으로 가득 채우겠다는데! 나의 행동에 대해 변명할 필요가 없고, 남의 눈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는 누구의 신경을 쓰는 것인가? 나는 왜 나도 모르게 남의 취미를 판단하는 것인가?


중학생 시절 단짝의 옆집 오빠는 성적이 굉장히 우수한 고등학생이었는데, 철권도 상당히 잘하고 심지어 야한 농담도 잘한다는 신박한 소년이었다. 이 오빠가 공부의 즐거움에 대해 "앎의 기쁨"이라는 단어를 썼다며 친구는 깔깔거리며 웃었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떠올려보면 참 멋진 단어인 것 같다. 그것은 새로운 던전이나 몹일 수도, 학문이나 사례일 수도, 스토리일 수도 있는게 아닐까. 누군가의 기쁨에 대해 우리는 잘 알 수 없기에, 나의 즐거움을 누군가에게 설명해서 충분한 공감을 얻어내기는 쉽지 않기에.



내가 전직을 결심한 결정적 원인 중 하나는, 스타트업 인사팀장이 되고 나서의 업무량이 내 인생에서 걸리적거린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은 빠르게 성장해야만 하는 기업이라, 회사의 성공을 곧 나의 성공으로 두고, 일에 홀딱 빠져야하는게 맞다고 본다. 나는 그 타이밍에 일의 즐거움을 넘어서는 사람을 만나 그에게 더욱 집중하고 싶어진 것이다.

결국 워커홀릭인 나를 러브홀릭으로 만든 건 신랑의 힘이다. 그는 아무런 독촉도 충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여유 시간을 나와 함께 보내며 그의 기쁨을 나누어주었을 뿐이다. 주저없이 나를 그의 취미로 만들어주었을 뿐이다 <3

이전 06화 100세 시대를 맞이하는 지구인의 여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