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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쁜 그미 Apr 18. 2024

F**k,나 J야!

내 성격 상 취미 너랑은 쉽지 않은가봐

"이모는 차탄엄마 같아."

"그게 누군데?"

"헬로카봇 차탄 엄마인데 자격증이 엄청 많아."


출처: SBS 헬로카봇X 등장인물. 초딩 조카의 말에 나무위키를 찾아보니 자격증이 500개라고...



나의 MBTi 끝자리는 J(judging)이다. J는 목표를 수립하고 체계적으로 일을 수행하는 성향을 의미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 성격때문인지 하나를 해도 확실히 제대로 하는걸 좋아한다. 그리고 그러려면 기초가 바로 잡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취미활동을 하는데 있어, 이 성격은 장애물이다.



중1때부터 나는 부모님과 같이 살지 않았기 때문에 공부하란 잔소리를 들을 일이 없었다. 학원은 다니질 않았는데, 그렇다보니 '자발적으로' 시험 공부를 할 수 있는 나만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시험 기간 4주 전부터 날짜별로 읽을 과목과 단원을 쪼개어 계획하던 습관은 매 시험기간마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발전해서, 현재 나의 인생지대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회사원이 된지 10개월 째, 갑자기 집으로 떠난 전임자를 대신해 급여 업무를 해야했는데, 몇 달 뒤에는 연말정산이라는 업무를 내가 직접 해야한단다. 현재는 더존이라는 걸 쓴다는데 대표님은 하필 이 타이밍에 새 인사시스템으로 연말정산을 하여 널리 직원을 이롭게 하라 하신다. 검색해보니 이런 시스템 관련된 자격증 중에 ERP정보관리사라는게 있네. 시스템의 이해력부터 다져나가기 위해 우선 공부를 시작했다. 자격증을 따고 시스템을 바라보니 전체적인 구조와 메뉴 간 연결성이 파악되면서 확실히 도움이 된다. 남들은 쉬운 자격증이라 쓸모없다 하지만, 음, 나에겐 상당히 유익했군. 이렇게 자격증의 세계에 빠지게 된다.

인사팀에서 일하는 나였지만 나의 전공은 경영이 아니었다. 이미 대학 졸업은 했고 경영은 마땅한 자격증이 없어보인다. 그런데 학점은행제라는게 있네? 모교 평생교육원에 등록하여 공부를 시작한다. 매번 자기계발의 출발점은 이런 식이었다. 내년에 공부할 것을 연말에 미리 월별로 계획해 놓고, 매월로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수정하는 것은 나의 오래된 루틴이다. 이렇게 딴 자격증과 수료증을 리스트업해보면 그 양이 상당하다, 차탄엄마 따라가려면 멀었지만.



때로는 그냥 시작해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미리 알아보고 계획하고 기초부터 쌓아나가야 속이 후련한 사람이다. 그렇다보니 하려는 취미활동의 매력을 조금도 맛보지않고 준비물을 먼저 왕창 사놓기도 해서 처치곤란인 적도 있었다. 취미를 시작하기도 전에 긴 여정을 그려놓아서, 초반에 삐걱대고 영 가망이 없어 보이면 일찍 그만 두기도 했다. 자격증은 '취득'이라는 목표라도 있기 때문에 거기까지라도 해놓고 손을 터는데, 취미는 항상 계획만 있지 목표가 없었다. 즐기기 위해 시작한 활동에 목표를 세워야겠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는데, 그래서 더 빨리 놓을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일본 하우스텐보스라는 놀이공원에서 우연히 총 쏘기를 한 적이 있는데, 다 끝나고 과녁을 받아보니 내가 꽤 잘 쏜 것이다. 일본인 직원이 나에게 쌍 엄지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이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었다. 내가 총 쏘기를 좋아하고 어쩌면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아무 계획도 준비도 없이 알게된 것이다. 그리고 이미 내 상상의 나래는 코미디언 김민경 언니처럼 사격 올림픽을 향하고 있고 동시에 어디가면사격을제대로배울수있을까생각하고있다니난뼛속까지J야...



이런 성격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올해 사이버대학교 실용음악과 편입을 질러버린 것이다 D:

(엄밀히 말하면 지른 게 아니지, 나는 다 계획이 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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