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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쁜 그미 May 23. 2024

돈이 시간을 낳아주었다

시간은 잊었던 취미를 부화시켰다

대학 마지막 학기였다. 나는 기숙사에서 나가 진짜 독립할 준비를 해야했다. 알바로는 안되었고, 제대로 된 월급이 필요했다. 작곡 쪽으로 취업을 생각하고 있던 나는 학교에서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실용음악학원에서 사무를 보게 되었다. 학원 성격 상 퇴근이 늦었는데, 잠자는 시간도 늦어지고 피로감도 쌓이면서 나는 아침 9시 수업에 종종 지각을 하기 시작했다. 과제가 늦어졌는지 무엇 때문인지, 한 번은 교수님한테 불려가 거의 욕지거리에 가까운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거기에 맞받아 구구절절, 제가 기숙사를 나가야 하는데 가정 형편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일찍 풀타임 일자리를 구했고, 최선을 다하고는 있지만 잘 되지 않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스스로 이 상황이 안타까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는데, 눈물을 방패로 쓰고 있다는 오해까지 받아가며 혼나야해서 아주 서러웠던 기억이다. 눈물은 웃음처럼 내 뜻대로 할 수가 없는 부류의 것이기도 한데, 교수님께서 그건 모르셨나보다.


우리 학교 음대에 재학 중인 아이들은 대부분 부유한 아이들인 것 같았다. 나와 동갑인 여학생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클래식만 듣고 자랐고 클래식 공부만 했기 때문에 당연히 이 쪽 직업을 가질거라 생각하며 자라서 다른 직업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음대에는 고등학생 과외를 하는 아이들이 꽤 있었고 외국으로 유학 갈 준비를 하는 아이들도 상당수였다. 몇몇 아이들의 싸이월드에 들어가보았는데, 배경음악도 클래식이었다. 진짜 사는 세상이 다르구나, 생각했다.

당시 기숙사 밥은 2000원 정도면 먹을 수 있었고, 지하철 역사에서 판매하는 김밥이 그나마 1000원, 김밥천국의 비빔밥이 4000원 정도 했었을 것 같다. 당시 고등학교 동창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자주 먹는 음식이 곧 나를 보여주는거라는데, 나는 그게 김밥이야." 월급쟁이가 되고 초반에 제일 좋았던 것은, 적어도 김밥천국에서는 음식값을 보지 않고 주문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이었다.

재학 기간 동안 컴퓨터 값을 아끼려고 조립해서 쓰고, 컴퓨터가 켜지지 않으면 하드디스크만 떼어내어 친구네 들고 가 연결해서 어떻게든 미디 과제와 악보 데이터를 살려냈다. 기계에 관심은 하나도 없지만, 과제를 하려면 데스크탑은 필요하니까 어떻게든 최대한 저렴한 가격에 쓰려고 조립을 배워내는 것이다. 그래서 십여년이 지나 인사팀장이 되어 총무도 리딩을 해야했을 때, pc 관리는 식은죽먹기였다. 짠내나는 경험들마저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되다니.



기본적으로 돈이 부족한 정도를 인지하고나서, 돈을 버는데 시간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에 시간도 함께 부족해졌다. 지나고보니 에너지 넘쳤던 20대 청춘에게 시간이란 얼마나 소중했는지, 물론 그 땐 그걸 몰랐지만. 당시는 열정페이가 정말 심했었다. 나라에서 '청년인턴'이라고 명명하여 최저로 허용하던 월급이 100만원 가량이었는데, 면접 본 음악 스튜디오 중 제일 많이 주는 곳에서 4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니가 와서 뭘 하겠니, 와서 배우는거니 그 돈이라도 감지덕지 해, 하는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면 일반 사기업에서도 신입사원들이 오면 큰 기대없이 월급주며 가르쳐 키워내는건데, 그렇게까지 도둑놈 심보로 뽑지는 않는단 말이다. 당시 내 월세는 35만원이었다. 그럼 거의 월세방은 포기하고 스튜디오에서 숙식을 해야하는데, 스튜디오에는 대부분 남자분들이 일하고 있다며 여자인 나는 선호하지 않았다. "남자들 사각팬티입고 돌아다니는데 여자분이 있으면 불편하지 않겠어요?"라며. 너의 월세 얘기를 듣고나니 고용주인 내가 불편해서 40만원 주고 어디 일을 시키겠니.



좋아하는 일이 곧 직업이요, 꿈이며, 꿈을 좇는 인생이 진정한 행복이라 굳건히 믿었던 날들이 있었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려면 잘해야 되는데, 잘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시간을 투자하려면 기본 생활비는 있어야하는데, 그 돈을 벌려면 또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그 부족한 시간 안에서 가끔 친구와 가족들을 만나 시간을 나누고 싶었다. 책도 읽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은 유한하니, 언제나 1순위는 일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작곡가 지망생으로서 어떤 부분이 부족하고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도 모르겠는 채로, 아니 알아내더라도 그것을 채우는 가장 빠른 길이 돈일 수도 있겠다는 것을 깨달은 채로 눈물을 흘린 날들도 꽤 되었다. 음악을 좇는 것 자체는 즐거울지 모르겠으나 내 인생 전체를 보았을 때 이건 행복한 삶이 아니다,에 생각이 닿은 스물 여섯, 나는 깔끔하게 다 그만두고 월급쟁이 회사원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의 0순위에는 '사랑과 평화'가 있었다.



취업하고 1년 정도 되었을 때 월세 방에 디지털 피아노를 샀다, 그것도 피아노와 터치감이 유사한 무겁고 비싼 해머건반으로. 피아노가 없어 연습실을 찾아다녀야했던 어려움에 뒤늦게 보상하듯, 그렇게 소유만로도 만족하는 소비를 했다.

지금은 미디를 다시 해보겠다고 미니맥에 로직을 사서 쓰고 있다. 취미인데도, 아니 취미가 될지 어떨지 아직 확실하지 않은데도 그냥 샀다. 유니데이즈 할인을 활용해도 백여만원이 들었는데, (내 기준에는) 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지!

돈이 어느 정도 모이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하지만 돈이 모이기 시작하니 가속이 붙는 느낌이었다. '해야만 했던' 회사 생활은 이제 내 '선택에 따라' 영위한다. 좀 쉬고 싶으면 쉬어가도 된다. 이렇게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사람이 느긋해진다. 시간이 내 주변에 머무는 느낌이다. 그 덕에 좋아했던 활동을 취미라는 이름으로 기억 저편에서 끄집어내어 집중하기 시작했다.


행복은 성적순도 재산순도 아니겠지만, 나의 행복에는 기본 생활비와 비상금, 그리고 '남는 시간'이 필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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