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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쁜 그미 May 30. 2024

고난 끝에 발전이 있긴 했는데

'존버'하면 더 행복해질까

최근 머릿 속에서 왔다갔다 하게 되는 생각이 있다.

젊어서는 바쁘게 고생을 좀 해야 얻는게 있는걸까? 아니면 젊어서부터 편하고 느긋한 삶을 추구하며 살아도 되는걸까? 힘들 때는 그만 두는게 맞는 걸까? 그런 것들도 버텨내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테니 참아내야 하는걸까?



나는 20대 내내 고생길을 지났고 사실 그것이 내 의도는 아니었다. 그냥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가정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고, 돈 있는 타인에게 의지하며 생활할 염치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장 쉽고 정직한 방식으로 ―가능해보이는 방향으로 여러 번 부딪혀보고 그 과정에서 좌절하면 부족한 부분을 습득해서 메꾸면서― 헤쳐 왔고, 조금 더 큰 장 또는 새로운 장으로 들어가서 같은 방식을 반복하며 나의 영역을 깊고 넓게 확장해 나갔다. 그렇기 때문에 "고생 끝에 낙",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등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건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고, 내가 도망치거나 등돌린 환경들도 많다. 정직원이 알바생에게 텃세 부리는 이상한 분위기가 싫어서 두 달 만에 그만 둔 패밀리 레스토랑 알바나, 손가락 사이사이 무거운 맥주잔을 첫 날부터 4~5개 씩 끼고 서빙하라는 ―이것도 텃세가 아닐지― 홍대의 맥주집 알바도 몇 일 만에 그만 두었다. 아빠의 문제 때문에 가족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져서, 아빠의 칠순에 참석하지 않고 휴식 겸 여행 겸 어학 연수 등 이런저런 합리화를 덧붙여 인도로 몇 달 떠난적도 있었다. 이런 무수한 '포기' 또는 '도망'들을 모으면 나는 참 끈기없는 나약한 사람이 되겠지만, 그래도 중소중견 HR 업무라면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고 스스로 자신감이 생기기까지 꾸준히 해왔던 노력과 무수한 인내들도 있었다. (이 타이밍에 혼자 맨땅에 헤딩하며 처리했던 업무들과 답 없는 상사들 몇몇이 스쳐간다.) 그리고 그로 인해 갖게 된 현재의 여유를 생각해보면 고생 끝에 낙이 온 것은 맞지만, 그 고생은 내가 취사선택한 것도 맞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든다. 내가 그 때 그 환경을 더 버텨냈더라면 지금보다 더 잘 벌까? 지금보다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이 되었을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내가 몇 년 전 퇴사한 회사가 매출이 올랐다고 기사가 난 것을 볼 때, 그 곳에 있던 팀장이 실장으로 승진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 계속 있었다면 성과급을 더 받았을까, 내가 팀장이 될 수도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결과를 위해 내가 더 버텨내야했을 무수한 스트레스, 무력감과 피로감들을 예측해보면 고개를 설레설레 젓게 된다.



현 직장을 입사하기 전 나의 전직장 재직기간은 각각 3년, 1년, 5년, 1년... 이런 식이었다. 그래서 이번 직장을 입사하면서 한 가지 다짐한게 있었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영상에서 팁을 얻은 것인데, "천일기도하는 마음으로 버텨내자"는 것이다. 법륜스님의 말씀에 따르면 업보란 것이 있기 때문에 계속 그만두는 것이니, 그 업보를 해소하기 위하여 1000일 동안 상대가 나를 버리지 않는 이상 내가 먼저 상대를 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버틸만한 것이라면 버티고 났을 때 의미있는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은 직접 몸소 겪은 사실이기도 하다. 그리고 업무 능력 떨어지는 사람들도 한 회사에 그저 오래다니면 승진도 하고 직책 하나 쯤은 가지는걸 보면, 존버는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지도.


                     나의 천일기도는 진행 중...


그리고 버티기 힘들땐 다른 것에 집중하는 것도 방법이다. 나의 취미 찾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지금 회사의 사업부는 내가 입사할 때보다 실적이 떨어져서 일이 굉장히 적다. 워커홀릭인 내가 일이 없는 업무 환경에 만족할리 없다. 그래서 문과인 나지만 솔루션 구조 이해에 참고하려고 독학해서 SQLD 자격증을 취득하고, 미래를 위한 투자로 인사 직업훈련교사 자격도 땄다. 인사 실무 관련 전자책도 상당량 쓰고 있었다, 아직 완성은 안했지만.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데도 계속 허한 기분이 들고, 이 전직이 맞았나 헷갈리는 상황이 종종 찾아왔다. 그래서 비로소 취미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사이버대 실용음악과 편입. 6월부터는 재즈화성학1 수강을 시작하여 매 학기마다 한 단계씩 수준이 올라가 내년 이 맘 때 쯤이면 화성학을 마스터 해야한다. 대학 때 부전공한 작곡과 수업은 사실 화성학을 다 떼고 온 친구들과 함께 듣는거라, 다중전공 시험을 보기 위해 화성학 독학만 해봤지 이후에는 볼 일이 별로 없었다. 수업도 대위법, 관현악법, 국악개론이나 악기 실기 수업을 주로 들었다. 재즈피아노 학원다니면서 배운 재즈화성학도 텐션에서 멈췄으니, 결국 지금 내 뇌세포에는 7화음까지만 제대로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 이 또한 묵묵히 천일기도하듯 해내다보면 취미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펼쳐질 고급 재즈화성학까지의 고난길 끝에 부디 명곡이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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