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쁜 그미 Jun 06. 2024

여행과 아름다운 소풍

나의 여행 조각모음

나는 1년에 여행을 3~4번 정도 가는 편인데, 취미라기엔 왠지 횟수가 많아보이지 않아 취미의 축에는 끼워주질 않고 있다.



직장 생활을 하기 전에는 아무런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한 번도 여행을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입사하고나서는 1년에 1번 해외 여행을 가겠다는 결심을 했다. 우선 몸이 젊고 건강할 때 최대한 멀리로 나가 구경을 하겠다는 생각이 첫째였고, 도장깨기 하듯 다른 나라에 한 번씩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둘째였다.

첫 해에는 자금이 많지 않아 홍콩을 다녀왔고, 그 다음 해에는 자신감이 붙어 5일 휴가에 앞뒤 주말을 붙여서 당시 아랍에미레이트 항공권 프로모션이 있었던 스웨덴을 다녀왔다. 유럽은 격년에 한 번은 꼭 가야겠다는 결론을 가지고 돌아와서는 유럽에 세 번 정도 더 다녀왔을 때 쯤 코로나가 찾아왔다.


연초에 항상 여행을 계획하던 나는 뉴질랜드 여행을 준비 중이었다. 스위스, 오스트리아에서 트레킹을 했는데, 그 기억이 너무 좋아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이제 원하는 곳에 갈 수 없어진 것이다. 코로나 블루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자유를 박탈당할 수도 있다니, 이대로 평생 해외 여행을 갈 수 없다면 어쩌지? 라는 생각 끝에는,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다녀서 후회는 없다! 라는 긍정적인 마무리가 붙긴 하였다.


해외만 다니느라 제주도는 제대로 가보지 못했던 나였기에, 코로나 끝물 즈음 어디로든 떠나봐야겠다는 갑갑한 마음을 가득 앉고 급히 제주도 여행을 질러버렸다. 2022년 2월 말, 이틀의 휴가를 내고 제주도 올레길을 두 세 코스 걷고 온 나는 제주도의 매력에 푹 빠진 채 완전하게 힐링을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국내 여행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 해에는 군항제, 강릉과 속초의 동해바다, 울릉도에 독도, 부산까지 여기저기 다녔는데 그 동안 코로나는 막을 내렸고, 다시 해외여행의 자유가 찾아왔다.



지난 주에는 늦은 신혼여행으로 베네룩스(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를 다녀왔다. 작년에 연애할 때 독일을 함께 갔는데 밤베르크나 하이델베르크 등 소도시 여행이 훨씬 좋았다며 유럽의 소도시에 또 가보자던 신랑의 말에 계획한 여행이었다. 이번에 갔던 브뤼허와 디낭에서도 느꼈는데, 유럽의 아름다운 소도시에 운하 또는 강과 다리를 빼놓을 수 없는 것 같다. (스위스의 루체른도 생각난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네카어 강의 테오도르호이스 다리, 2023.09


또, 내가 좋아하는 트레킹은 룩셈부르크로 정했다. 두 시간 반 정도의 코스를 골라 걸었는데, 어딜 둘러봐도 예술인 암벽과 빽빽한 나무숲, 그 사이를 덮은 초록 이끼들은 연신 "멋있다"만 읊조리게 만들었다.

룩셈부르크 뮐레탈 트레일 E1코스 중 볼프스슈로흐트, 2024.05



나의 여행은 항상 자유여행이고, 한국인 블로그보다는 현지 공식 여행 사이트를 먼저 보고 행선지를 정한 후에 국내 여행 서적에서 팁을 얻어 큼지막한 동선을 계획한다. 항공권도 최종적으로는 각 항공사 사이트에서 비교해서 직접 구매하는 편이다보니 여행 준비에 시간을 조금 할애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런 여행 준비도 적성에 맞아서, 이 마저도 여행의 일부로 느끼고 즐기게 된다.


또 재작년부터는 작은 크로키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여행에서 있었던 일들을 써두거나, 어설프지만 소소한 그림을 그려둔다. 그렇다보니 나중에 펼쳐보아도 그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하고 웃음이 난다. 예전부터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다보니 블로그에 일기처럼 글을 썼었고, 조금 더 장면을 생생하게 남기고 싶어져서 여행드로잉을 해볼까해서 그림을 배우려고 했었다. 그러다 KBS 대화의 희열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가 여행의 기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용기를 얻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 그 날까지 미루지 않고 그냥 행동에 옮겼다. 그림보다는 글이 쉬우니 글을 덧붙이면 부담없이 느껴졌다.

기차나 버스에서는 글씨가 개발새발이 되는게 단점이다.


여행을 가기 한두달 전부터는 내가 가려는 나라의 국내 음악 차트를 찾아 듣는다. 그렇게 하고 현지에 가서 이동 중에 휴대폰으로 라디오를 듣거나, 숙소에서 TV를 켜면 익숙한 노래들이 간간히 흘러나온다. 그렇게 들었던 노래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2019년 당시 오스트리아 차트에 있었던 Sarah Connor의 Vincent이다. 1절에서 Vincent가 남자를 사랑하는 자신을 깨닫고 어머니와 대화하는 듯한 후렴구의 가사와 멜로디가 인상적인 곡인데, 독일어를 전공한 덕에 조금 들리는 가사로부터 노래의 매력을 더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이미지 출처: Spotify. 좋은 노래는 국적과 언어를 불문하고, 좋다.



이번 여행에서는 조금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 이제 어느 나라에 비하더라도 한국이 상당히 깨끗하고 서비스가 빠르고 좋다는게 느껴진다. 특히 지난 주에는 1유로가 1500원을 돌파해버렸고, 유럽의 외식비는 미친 수준에 이르렀다. 반드시 가야 할 자연의 절경이 있는게 아니라면, 이제 머나먼 유럽은 그만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도시나 성당도 이미 여럿 봤고, 거대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나의 취향이 아님을 깨달았다.


여행 다닐 때는 들판의 작은 꽃도 눈에 띄고, 비도 바람도 작은 햇살에도 낭만적이고 긍정적이다.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는 나이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회사 가는 길에는 휴대폰에 몰두하고 집 가는 길에는 집에서 해야 하는 일에 몰두하게 된다. 이런 내가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천상병 시인은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하늘로 돌아가 아름다웠다고 말하겠다는데, 나도 일상이라는 소풍을 조금 더 취미처럼 즐기고 느껴야 할 것 같다, 외화 그만 쓰고! ✿

이전 11화 고난 끝에 발전이 있긴 했는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