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전 마지막 직장이라 확신하다.
매주의 루틴 - 모닝페이퍼(매일), 아티스트데이트(1시간), 산책(20분×2회)
5일의 추석 연휴를 보내며 아티스트데이트는 하지 못했고, 산책은 한 번, 모닝페이퍼는 이틀을 빼먹었다. 긴 연휴 덕에 루틴들이 많이 흐트러졌지만, 바쁜 일과 잦아진 외근에 지친 몸을 회복하는 한 주였다.
31~33세의 삶을 회고했다.
점점 현재와 가까운 나이가 되면서, 스케줄러에 많은 기록들이 남아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과거를 찾아보았다. 거의 10년 가까이 써온 앱에는 만난 사람, 여행지, 갔던 공연이나 전시 등이 간략히 기재되어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실 이 시기는 노력을 많이 해서 정신적으로 조금 지친 때였다. 혼인 시기나 나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나도 그만큼 압박감을 느꼈다. 연애는 오히려 서툴어진 느낌이었다. 유난히 안타까움이 진하게 밀려오는 회고 기간이었다.
휴대폰을 잃어버린 김에 번호까지 바꾸면서 애매하게 친했던 관계들이 상당수 정리되었다. 이 때도 몇 달 차이로 이직과 이사를 했다. 나는 일에 집중했고 커리어가 급성장했다. 공연도 많이 보러 다니고 사람도 많이 만나고, 자격증이나 교육 등 꾸준히 무언가를 했다. 지나고보니 에너지는 꽤 넘치는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의 솔루션을 처음 쓰게 된 시기이기도 했어서,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인연이다.
아하: 겉보기에는 난데없이 불쑥 떠오르는 것 같은 통찰이나 깨달음
모닝페이퍼를 쓰다가 갑자기 전직장 생각이 나서 검색을 해보았더니 매출액이 어마어마하게 커졌단다. 축하와 기쁨이 아닌 '배아픔'이 느껴졌다. 계속 재직했으면 받았을 돈이 얼마일까 상상해보았다. 비교는 사람을 순식간에 불행하게 만든다는걸 알면서도, 뇌 속 계산기는 멈추지 않았다.
다음 날, 불현듯 그 때 생각이 났다. 나는 짧은 기간에 요청받은 과제를 다 해냈고, 밀려있던 일들 특히 개판인 자료와 서류 정리도 모두 말끔히 해치우면서 입사하고 얼마 안되어 팀장을 달았었다. 근로감독, 노동청 신고건, 사업부 정리로 인한 다수의 권고사직 등 노무 이슈도 무탈하게 잘 해결했었다. 스타트업의 미숙한 팀장님들을 수시로 면담하고 교육하면서 부족한 리더십을 채우려 노력했다. 그러면서도 늦은 시간까지 진행되는 임원 회의에 매주 참여했다. 팀원들에게 일을 가르치고 메꿔주는건 기본이었다. 대표님이 애들을 빡세게 가르치라고 하셔서 ―내 성격에는 안맞았지만― 시키는 대로 했고, 그 때문인지 퇴사한 친구도 있기는 했으나 퇴사 후에도 관계는 원만했고, 팀원들 커리어는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었다.
외국대 졸업에 유명 컨설팅 출신이라면 어린 나이라도 C레벨로 모시는 대표님이지만, 언젠가 CHO를 두고 싶어하시는 분이지만, 내 프로필에 실무만 잘해서는 CHO의 자리로 갈 수는 없다는걸 너무 잘 알았다. 업무량과 보상과 감투의 균형이 삐그덕거리자, 일이 재미가 없어졌다. 연애를 시작하면서 내 시간이 간절해지기도 했다. 프로 이직러인 나는 연봉을 15% 올려 다른 회사 입사날짜를 받아놓았지만, 그 회사 역시 내가 팀장을 달기까지는 정리할게 엄청 많다고 면접 때 대강 들었다. 다른 놈들이 개판으로 일해놓은 걸 정리하는게, 갑자기 지긋지긋해졌다. 더 준다는 돈도, 싫어졌다.
결국 내가 잘하는 '프로세스 정리'와 '제도 이해'만 빠르게 하면 반 이상 해결되는 직무로 바꾸어, 현재 회사로 연봉도 올리지않고 온 나였다. 변덕스럽고 제각각인 임원들의 입맛에 맞춰 기획안을 뒤집었다 엎었다 하는 업무는 이제 없다. 팀원 케어에 골머리 앓을 일도 없고 내 프로젝트만 잘하면 된다. 재택도 하고, 선택근무제로 출퇴근도 자유롭다. 심지어 여기서도 인정받으면서 일하는데, 내가 전직장 매출액을 부러워할건 뭐람. 나는 내 시간, 마음의 평화, 적절한 보상, 모든 걸 이미 얻었다. 이 곳은 은퇴 전 내 마지막 직장으로 손색이 없다는 사실을 이렇게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