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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쁜 그미 Apr 04. 2024

그러니까 이건 취미입니다만.

취미는 취미 그 자체로도 충분한데

"나 올해부터는 완전 취미에 투자하기로 했어. 작곡 다시 해볼거야."

"그래. 트로트 한 곡만 잘 만들어도 돈 되겠더라."



노동자들이 혁명을 통해 집권한 자본주의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계속 일하게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 했던가. 그래서 사람들은 AI의 발전에 '일을 덜하게 되겠구나!' 즐거워하는게 아니라, 내 일자리를 뺏길까봐 불안해한다고.

일과 분리된 시간, 즉 일을 안하는 시간을 취미로 채워 순수하게 즐기려는 것인데도, 취미를 경제적 이득과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다.


- 빵 만들어보고 싶어.

- 까페 차리게? 그래, 요즘 지방에 큰 카페들은 다 베이킹해서 비싸게 팔아.


- 지승공예 너무 재밌어.

- 이건 팔면 얼마나 하는데? 사는 사람이 있을까?


- 그림 연습하고 있어.

- 너도 카카오 이모티콘 만들어봐. 그거 하나만 잘 만들어도 성공하겠더라.


- 당구 잘 치고싶어.

- 뭐하러?


요즘같은 N잡 시대에는 취미로 돈벌어요, 하는 사람들이 멋지고 부럽다. 하지만 어떻게 취미 활동을 꾸준한 수입으로 이어가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작년부터, 일할 때 내가 보려고 모아둔 업무 지식과 팁들을 전자책으로 판매해보려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퇴근 후나 주말에 시간이 나니까, 그냥, 재미삼아 한 것이다. 그런데 책이 완성되어가면서 이것이 점점 부담거리가 되어감을 발견했다. 판매를 시작하면 관리를 해야한다는 압박이 생겼기 때문이다. 통신판매업 신고, 고객의 문의, 세금 신고, 스토어 관리 등. 분명 시작은 취미였는데, 어느 덧 일이 되었다. 만든게 아까워 공짜로 배포를 할까 생각하니, 그건 또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학생 시절, '특기·적성교육'이라는 단어가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었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내 특기를 찾고 내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아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당시 나의 관심사는 꾸준히 빌려보던 비디오로 인한 영화 정도였고, 비교적 열렬히 원하는 것은 없었다. 세일러문(애니메이션)이나 심타워(게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책)에 파고드는 친구들이 부러울 정도였다. 나는 당시 그렇게 꽂힌 것 자체가 없었다.

그러던 중 도시로 전학을 가면서 학교 생활이 다채로워졌다. 음악 시간 중에 시창 청음을 수행평가로 보기도 하고, 학교 축제 무대를 준비하는 친구가 바이올린 튜닝하는 것을 눈 앞에서 보기도 하고, 두툼한 가요악보집을 들고 다니면서 가수가 되겠다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친구들과 가까이 앉게되면서 친해졌다. 당시 음악과 관련된 이러한 소소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내 주변 친구들에게는 없는 '절대음감'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있는 것 같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 때의 내 나이가 만 15살이었다.

나는 상당히 신이 났다. 드디어 나도 나의 특기를 발견한 것인가? 나는 주저없이 이 길로 가리라!

지금에 비하면 작고 귀여운 당시의 인터넷 검색 결과, 음악 관련해서 내가 선택할만한 직업은 작곡가 뿐이었다. 나는 내성적이라 어릴 적 피아노를 배울 때도 남앞에서 연주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기 때문에 무대에 서는 직업은 상상할 수 없었는데, 검색된 음악 관련 직업 중에 남앞에 서지 않는 직업은 달랑 작곡가 하나였다. 하지만 내가 가요를 만들거란 느낌은 오지 않았고, 마침 영화를 좋아하니 영화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며 즐거운 계획을 했었다. (당시 인터넷에 나왔던 작곡가의 세분류에는 대중음악 작곡가, 영화음악 작곡가, 영상음악 작곡가, 게임음악 작곡가가 전부였다.)


하지만 내가 음악에 올인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가족 모두가 나를 말렸다, 평소 연락을 잘 하지 않는 막내이모마저. 그리고 마치 이것이 인생의 당연한 논리인데 나만 모른다는 듯 다들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음악은 나중에 커서 취미로 하면 되잖아."



그런데, 직장에 자리 잘 잡아놓고 작곡을 취미로 즐겨보려는 지금,

음원 수익을 기대하고 있는 가족들은 대체 무엇인가.

(사실 나도 상상하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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