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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쁜 그미 Mar 21. 2024

12년차 회사원, 여유를 '만들다'

track 1

"취미가 뭐에요?"

"음...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취미는 내게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나는 여태껏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럴듯한 취미를 가져본 적이 없다. 나의 여유 시간은 언제나 일로 향했다. 일과 관련된 책과 아티클을 보고, 일과 관련된 세미나에 참석하거나 자격증을 땄다. 소위 말하는 '자기계발'이 나의 여유를 차지했는데, 사실 이것들은 취미(趣味)라고 보기는 어렵다. 재미를 위해 하는 활동이 아니고, 나의 본업과 관련되어 있다.


취미란, 흥미와 재미.


여기에는 나의 성장 배경이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노후는 둘째치고 그 어떤 부동산이나 적당한 현금 조차 소유하고 있지 않은 상당한 수준의 가난뱅이다. 사랑하는 아버지는 손을 대는 족족 빚과 소송을 만들어내면서 동시에 술독과 주사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위인이며, 애정하는 어머니는 반백의 나이 쯤 텅빈 통장에 정신을 차리고 시급직을 꾸준히 하고 계신다.  

중고등학생 때는 학원을 다니거나 독서실을 다니는 등 돈을 쓰면서 공부하는 것은 쳐다도 보지 않았고, 학습지와 교과서만 활용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성적 장학금을 받기 위해 공부를 하는 동시에, 형편이 어려워서 받을 수 있는 장학금 중 그 무엇에든 뽑히기 위해 몇몇 기관에 사연을 담은 지원서를 써내야 했고, 또 방학에는 몇 곳의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했다. 나도 학과에서 보내주는 방학 해외 연수가 궁금했고, 졸업을 연기하며 다중전공에 힘쓰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나는 환경이 부족한 만큼 항상 스스로 돌파구를 찾아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대학 졸업 후 14년째, 지금의 나는 총 11년 5개월의 평범한 회사원 생활을 해오고 있다. 조기 은퇴를 위한 최소 목표 자산의 50%를 모았다. 나의 자산에는 대박도 지름길도 운도 없다. 부동산이라고는 나와 직결된 전월세 임대차에 대해서 밖에 알지 못하고, 주식이나 코인처럼 원금을 잃을 수 있는 투자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나에게는 애초에 그럴 여윳돈이 없다. 대학 기숙사를 나온 뒤로는 도시가스가 들어오는 집, 지상에 있는 집, 변기가 얼지 않는 집을 향해, 모은 돈들을 모두 다음 임대차 계약의 보증금으로 넣었다. 11살 때 만났던 아버지의 빚쟁이들에 대한 기억으로, 대출 없이 살아보려는 고집의 영향도 있다. 이제 나에게 집만큼 아늑한 곳은 없다. 오는 봄에 이사를 하고 나면 출퇴근 거리도 짧아진다.


내가 그 동안 나의 여유시간 대부분을 자기계발에 썼던 이유는 업무를 하고 이직을 할 때에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커리어가 정체될 때에는 업무를 확장할 수 있는 회사로 옮겼고, 트렌드를 이해하여 인사이트를 가진 넓은 시야로 일을 하고자 했다. 나는 그저, 실력으로 더 좋은 보상을 받고 싶었다.

그게 디딤돌이 되었는지, 그냥 시간이 흐르면서 그럴 수순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연봉도 직위도 오를만큼 올랐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거기서 연봉을 조금 깎아서 시간과 환전하였다. 야근없이 프로젝트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재택 가능한 회사로 이직을 했고, 그 생활도 1년을 넘어가면서 완전한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나의 직무에 대해서는 전자책을 쓰고 있을만큼 모르는게 별로 없고, 업무 이슈가 터져도 당황하지 않고 빠르게 대응할 정도의 시니어가 되었다.


이 쯤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나의 시간을 취미에 내어주기로 했다. 물론 이번 달에도 2개의 웨비나에 참석할 예정이고, 올해 2개의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긴 하지만. 관성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단말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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