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 별을 노래한 시인, 윤동주 문학관

하늘과 바람과 별을 노래한 아름다운 시인

by 오름

누군가 내게 윤동주 시인의 시를 언제부터 좋아했냐고 묻는다면 사실 정확한 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의 책장에는 1948년과 1955년 정음사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 디자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시집, 그리고 나태주 시인이 엮은 윤동주 시인 서거 75주기 특별판 필사시집 등이 꽂혀있다. 워낙 다양한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좋아하는 나인지라 아마 윤동주 시인의 시에 한눈에 반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시집 제목이 내가 좋아하는 단어들로만 이루어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데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1955년과 1948년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대한민국 서울


2016년에 개봉했던 영화 <동주>를 보고 난 후, 윤동주 시인의 삶과 그가 고뇌하며 써 내려간 시에 깊이 빠져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더욱 좋아하게 된 윤동주 시인의 삶에 대해 더욱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서촌에 갔을 때 윤동주 하숙집 터를 방문하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로부터 부암동에 윤동주 문학관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고민 없이 바로 방문해 보기로 했다. 선물 받은 윤동주 시인의 시집을 소중하게 품에 안고, 부암동으로 출발!


김환기 화백의 작품이라는 시집의 표지 @ 대한민국 서울


윤동주문학관으로 가는 길, 버스를 타고 올라갈 수 있으나 걸어 올라가기로 결정한 우리들. 열심히 청운동의 언덕을 오르고 올라 도착한 윤동주 문학관은 건축상을 무려 두 번이나 수상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부암동과 잘 어울리는 건물이었다. 이렇게 멋진 곳에 아름다운 윤동주 시인의 이야기가 담겨있다니, 설레는 마음으로 입장.


부암동 언덕에 위치한 윤동주 문학관은 윤동주 시인의 사진 자료들과 친필원고 영인본이 전시된 제1전시실 ‘시인채’,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에서 모티브를 얻은 제2전시실 ‘열린 우물’, 마지막으로 윤동주의 일생을 담은 영상을 볼 수 있는 제3전시실 ‘닫힌 우물’로 이어져 있었다.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 대한민국 서울


제1전시실 중간, 윤동주 시인의 시에서도 나온 우물 목판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우물 목판 원본은 윤동주 시인의 고향집에서 가져온 목재 널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우물 목판을 보는데, 문득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이 생각났다. 이 시에 나오던 화자가 본인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미워하고, 가엾어하고, 그리워하던 외딴 우물이 바로 이 우물이었을까.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윤동주 <자화상>


제3전시실 <닫힌 우물>로 들어가는 길 @ 대한민국 서울


제1전시실 관람을 마치고, 제3전시실로 이어지는 제2전시실의 중정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니 윤동주 시인의 <길>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돌담을 넘어가지 못해 그저 더듬어 가며 걷는 그 길에서, 자신의 속도 모르고 그저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부끄러움에 괴로워하는 시의 화자. 윤동주 시인의 시는 늘 ‘부끄러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부끄러움을 숨기지 않고 말하는 결코 부끄럽지 않은 용기를 가지고 있던 시인, 그게 내가 알고 있는 윤동주 시인.


잃어 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윤동주 <길>


서울타워가 보이는 시인의 언덕에 서서 @ 대한민국 서울


관람을 마치고, 문학관 옆으로 이어진 계단을 따라서 올라간 ‘시인의 언덕’. 시인의 언덕은 윤동주 시인이 친구 정병욱 선생과 함께 산책을 했던 장소라고 한다. 시인의 언덕에 올라서니 한눈에 들어오는 서울 시내의 풍경, 그리고 대표작인 <서시>가 새겨진 비석을 만날 수 있었다. 시인의 언덕에 올라오는 길, 카페 별뜨락에 들려 구매한 기념엽서에 <서시>를 남겨보며 윤동주문학관 방문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서시>


부암동 언덕에 간다면 꼭 한번 들리면 좋은 곳 @ 대한민국 서울


즐거웠던 부암동 언덕의 윤동주 문학관 방문기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추천해 보는 노래. 바로 2019년 발매된 홍이삭의 EP 앨범 <놓치고 싶지 않은 사소한 것들> 마지막 트랙인 ‘소년’으로 윤동주 시인의 <소년>이라는 시에 멜로디를 붙인 곡이다. 시대를 고뇌하고 본인을 한없이 부끄럽게만 여기던 다른 시들과 달리, <소년>에서 만나는 윤동주 시인은 첫사랑을 떠올리는 평범한 여느 다를 바 없는 청년. 왠지 모르게 쓸쓸한 기타 소리와 서정적인 시가 너무 잘 어울려 가을이 오면 늘 생각나는 좋아하는 곡이다.홍이삭의 ‘소년’을 들으며, 윤동주문학관 방문기는 여기서 끝!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듯한 볼을 씃어 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ー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ー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 - 윤동주 <소년>


홍이삭 - 소년 @ KBS 올댓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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