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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as May 07. 2022

물처럼 살리라!

도이든 물도 물이다

물을 소가 마시면 젖이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된다. 200615

잘 아는 선배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김대령님! ㅇㅇㅇ대령 입니다.

오늘 오후에 뵐 수 있나요'


특별히 볼 일이 없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용건도 없이 보자고? 잠시 생각하다 답을 했다.


'네. 13:25 사무실에서 뵙겠습니다'


가는 발걸음이 편하지 않았다. 노크를 하고 들어가 커피를 같이 마셨다.


'요즘 어떻게 지네요? 선배가 일상적인 말을 했다.


'형수님 건강은 어떠신지? 연말에 어디로 가십니까?'


'좋은 시간도 벌써 반을 넘었네요?


'네, 아쉽습니다.'


정겨운 이야기들을 주고 받는 훈훈한 선후배 모습이 약간 보였다.


'논문 주제는 잡았어요?'


'그건 표절에 엮일 수 있어서 정책보고서로 하려합니다. 이미 컨셉은 잡았으나 별 관심없습니다.'


'책을 쓰고 있기 때문인가? 출력물이 많아요?'


'네, 종이로 보는게 그래도 편합니다. 오타, 띄어쓰기 등 기초가 약해서리... '

'ㅇㅇ과에서도 출력하고 링바인더도 하고

도움 준 직원들 밥이나 한번 사려고 합니다.'


'게 중에는 딸 같은 아이도, 조카같은 친구도 있어 고맙다고 밥이나 사려고 하는데 바쁜가 봅니다.'


'요즘은 밥 산다해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저도 작년 말까지 선배님 지금 하는 일 같은 거 많이 했습니다.'


'맞아요, 주변에선 뭘해도 말들이 많죠!'

무슨 말을 하려는지 조금씩 파악되기 시작했다.


'아, 네~~, 그 친구 불쌍합니다. 치유되지 않은 트라우마가 있는 듯 합니다. 선배님도 고생이 많으십니다.'


오가는 대화 속에 서로가 할 말은 다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들어 속이 상했지만 짧은 인생, 귀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혹 오해 살만한 일이 있는지 돌아 보았다. 동기가 과장인 사무실에서 가끔 인쇄와 세절, 링바인더를 했었다.


핸드폰 메모장에 짬짬이 써 둔 글을 모아 한글 파일로 옮겨 정리하다보니 파일이 깨지기도 하고 오타, 띄어쓰기 등 손 볼 것이 많았다. PC 화면을 보면 눈도 아프고 집중력도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종이 출력물을 활용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거의 매일 수정하고 보완하였다. 그러던 중 사람은 없고 문이 잠겨있었다. 근처 사무실을 찾았다. 특별한 일없이 빈둥거리던 신입이 있었다. 프린터 좀 하고 바인더를 하려한다 하자 도와 주겠다고 했다. 무슨 일을 하냐 물었더니 양성평등 업무를 하며 최근에 임용되었다고 한다.


그외에는 주변 동료들 보조한다고 한다. 일반부대 같으면 다른 업무도 하는데 좋은 곳이니 즐겁게 일하시라 했다. 전부대에서도 이보다 훨씬 많은 인원을 대상으로 업무를 하고 추가해서 다른 업무도 하면서도 여유가 많은 직책이다. 역시 국방부 직할부대라고... 역시 군대는 상급부대가 좋은 것 같다. 요즘 일자리가 없어 만든다고 하더니 한 사람이 해도 될 일을 두 사람이, 세 사람이 하는 꼴이다.


잠시 딴 생각을 하며 한 눈을 판 사이 역시나 좌우를 헷갈려 구멍을 뚫었다. 옆에 있던 다른 이가 다시 출력했다. 링바인더는 시간이 좀 걸릴 듯 해서 양해를 구하고 강의실로 옮겼다. 일정이 어긋나 며 칠 있다가 찾을 수 있었다. 그 둘에게 식사로 감사함을 표현하려 한 것이 잘못이었던 같다.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시간도 낭비했지만 누군가가 귀한 시간과 수고를 사용했으니 성의 표시는 해야할 것이다. 비록 엉성하고 어설픈 수고이지만...


그런데 선배는 이상한 소리를 한 것이다. 마치 여성에게 추근되었다는 오해를 사고 있는 것처럼 말을 돌려가며 이야기를 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성인지에 위배되는 표현을 했으면 당연히 사과하고 혹 정도가 심하다면 책임지면 되는 일이다. 그 선배도 특정한 용어나 행위가 있었느냐 따지자 말을 못했다. 그렇다면 뭐 다른 게 있나? 주고 받던 메시지가 이상했나? 밤늦게 보냈나? 말을 이상하게 했나? 카톡 메시지를 살펴 보았다.


이게 다이다. 22:00 다 되어 메시지를 보낸 것도, 답신한 것이고 오해 소지가 있는 이모티콘을 보낸 것도 아니다. 기분이 좋지 않다. 마치 세차하자마자 새 똥 맞은 차를 보는 것 같다. 창피하고 더러운 느낌이다. 이런 일은 무책임한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란 생각도 든다. 그 선배같이 엉성한 성인지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성 관련 문제는 인지 즉시 보고한다' 라는 단편적인 문구를 우물 안 개구리처럼 받아 들인 결과이지 않나?


오해나 착각,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불쌍한 사람을 이해시키거나 구해줄 노력은 하지 않고 영혼없이 기계적인 반응을 조치랍시고 믿는 것이다. 생각없는 언행이 이간질이 될 수도, 불협화음을 만들어 사람간의 관계를 어긋나게 할 수도 있음을 모르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도 안하고 생각없이 반응하는 '파블로프의 개'가 떠올랐다. 누구를 비난하면 돌고돌아 다시 그 본인에게 온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누구를 헐뜯지도 욕하지도 않았지만 마음에 독을 맞은 것처럼 반응이 되었다. 마치 그 실험용 개처럼 듣기 싫은 말, 비난을 받자마자 조건반사적으로 반응되었다. 화가 났다.


그러면서 또 떠오르는 속담하나! '물을 소가 마시면 젖이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된다.'  한국 속담으로, 불경에 <初發心自警文 초발심자경문)>에 적힌 구절인 '牛飮水成乳 蛇飮水成毒(우음수성유 사음수성독)'에서 유래한 속담이다. 직역하면, '소는 물을 마시고 젖을 만드나 뱀은 물을 마시고 독을 만든다.'이다. 이것이 약간 변형되어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 '같은 물이라도 벌이 먹으면 꿀이 되고, 뱀이 먹으면 독이 된다’'는 쿠르드족 출신 터키인 사이드 누르시의 말이다.


사람의 영혼은 볼 수가 없다. 감추고 속이는 것이 너무 많다. 때로는 흰색, 검은색, 노란색 등 색옷으로, 또는 젊음이나 늙음을 이용할 수도 있다. 마치 화려한 꽃무늬로 위장한 뱀이 자기가 꽃인 줄 착각하는 것 같다. 짙은 화장을 자신의 민낯과 헷갈리는 사람을 잘 구별해야  한다. 뱀인지? 벌인지? 소인지?


선의를 뱀처럼 받아 들이면 물조차 얻어 먹기 힘들다. 뱃 속이 꼬인 배알로 가득 차 있으면 아무리 좋은 것을 먹여 주어도 독보다 더한 것만 나올 뿐이다. 이런 영혼을 가진 이의 말은 독보다 무섭다. 조심하고 또 삼가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꽃무늬로 치장했더라도 뱀은 뱀이다. 어찌보면 다행이라 생각도 된다. 만약 이런 것에게 물이라도 먹였더라면 아마 물려서 온 몸에 독이 퍼졌을 수도 있을 뻔했다.


삐딱한 영혼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독보다도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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