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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as Jun 28. 2023

모병제 찬성이냐? 반대이냐?    

모병제 찬성이냐? 반대이냐?    (16)

국가는 어떻게 병력을 충원하는가?
 
로마는 시민군 체제를 운영했다. 당시 거의 모든 나라가 용병을 돈으로 고용했으나 로마는 건국 초기부터 시민군으로 운영되었다. 만 17세부터 45세까지 병역의무가 부가되었다. 소집이 되면 자신 돈으로 스스로가 무장을 하고 전쟁에 투입되었다. 생계를 중단한 채 참전한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처럼 보일 수 있으나 로마만의 시민군은 돈을 위해 싸우는 용병과 달랐다. 병역의 이행은 로마시민권과 참정권, 공직에 나갈 자격이 되었고 사회적 명예의 척도가 되었다. 그들은 가족과 공동체, 자신을 위해 싸우는 군대였다. 이같이 로마군의 병역은 사회구성원으로서 자부심을 갖이기에 충분했고 실제 그 보상도 충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로마시민군은 모병제, 징병제의 장점만이 발휘된 제도로 운용된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닌듯하다.  

군에 가는 데 있어 모병제는 '선택', 징병제는 '강제'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도 문제이다. 모병제 도입이 논의된다는 것은 징병제에 대한 부정적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즉, 군에 가고 싶지 않은데 강제적으로 군을 가야 하는 이 상황이 불만족스러운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다른 나라들은 이를 위해 어떤 병역체계를 가지고 그것이 현실에서는 어떻게 시행되는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현실, 타국과의 비교, 그 시사점은 무엇인지 국가별 특징 위주로 살펴보자!


세계 최강 군대의 미국

미국은 1973년부터 모병제를 전면적으로 시행하였다. 그러나 전시를 대비하여 징병법 자체는 폐지되지 않고 유효했으며, 18세가 된 모든 남성은 의무적으로 징병 등록을 했다. 독립전쟁 시 의무병제를 채택한 이후 수회의 걸친 제도의 변화를 거듭했고 제1, 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징병제를 실시하다가 모병제로 전환하였다. 모병제 전환은 당시 닉슨 대통령 후보가 모병제 전환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다. 그전 1967년에는 의회에 모병제를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현실적인 비용과 시행 측면에서 입법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보냈다고 한다. 추가로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직을 불명예스럽게 사퇴하게 된다. 그 이후, 베트남 전쟁의 패전과 반전분위기의 확산에 따라, 모병제의 도덕적 정당성과 경제적 효율성을 적극 홍보하였고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모병제 전환의 핵심적인 이유는 병역이행의 불공정에 대한 불만이었다. 낮은 징집률로 저학력자나 저소득층들이 주로 징집되는 상황이었다. 특히, 패전 이후 군에 대한 혁신이 요구되면서 군대의 규모를 축소하고 국방비를 집중 투자함으로써 강한 군대로의 체질 개선을 도모했다.


중국식 공산주의의 모병제

중국은 지원병을 모집하여 병사를 뽑고 정원이 차지 않는다면, 징병으로 정원을 채우는 방식인 징모혼합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실상 많은 인구수 때문에 모병으로만으로도 군 정원을 채울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의 징집방식은 모병제에 가깝다고 볼 수가 있다. 그렇지만 애초에 필요 없는 징병제도를 유지하는 이유는 국민들에게 국방의 의무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중국은 모병 병사가 왜 이렇게 많은가? 중국 정부는 징병제의 단점을 보완해 모병으로도 충분하게 제도적인 보완책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징병제의 단점인 '강제성’을 없앴다. 1998년 12월부터 육해공군 모두 2년으로 단축하였다. 그러나 짧은 의무복무 기간에도 불구하고 많은 혜택이 주어진다. 급여는 많지 않지만 그 외에 받을 수 있는 혜택의 종류가 우리와 비교 시 상당히 파격적이다. 군필자는 공산당원이 될 자격이 주어지고 공무원이 수월히 될 수 있고 각종 취업 알선과 학비 면제, 국영기업 취업 시는 가산점도 주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군 입대를 위해 뇌물까지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단일민족 군대 독일

1955년 재무장을 시작하여 1956년 7월 징병제를 도입하여 만 18세 이상의 남성이 병역법에 따라 입대했다. 처음 징병제 도입 당시 12개월이었던 의무 복무 기간은 냉전 기간 18개월까지 늘었다가 1990년 10월 통일 이후 점차 점차 줄기 시작해 6개월까지 단축된다. 이후 55년간 유지해 오던 징병제를 중단하고 2011년 7월 모병제로 전환하였다. 1990년 통일 이후 20년 이상 징병제를 고수하면서 국민들의 모병제 요구를 무마하였으나 결국에는 2011년 군 의무복무제 유예를 확정하였다. 그러나, 전시에 징병할 수 있도록 헌법상 규정은 남겨 놓았으며, 양심적 병역거부 등 젊은이들이 대체복무 등을 할 수 있도록 제도가 새롭게 시행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병역에 대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었고 안보환경의 변화로 인해 병역 기피현상도 발생하였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복무기간을 단축하고 징집병의 비율을 감소하는 대신, 지원병의 비율을 확대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모병제로 전환하게 되었다. 병력 수준은 18만 명으로 이 가운데 약 3,600명이 해외에 파병되어 있다. 최근에는 군내에서 발견되는 극우 분위기와 모병의 어려움 등으로 징병제로의 회귀와 군대를 지원하는 이들에게 대학 입학 자격 보장, 연금 혜택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지원복무제가 공론화되고 있다고 한다.


적과 대치중인 대만

'본토 수복’을 기치로 1950년대에는 60만 명, 1990년대에도 40만 명을 징병제로 유지했다. 중국과의 군사적 긴장관계를 고려해 현역 복무와 군사교육을 받게 하는 징병제에서 2018년 12월 26일에 모병제로 전환하였다. 징병제 기간에도 복무기간을 점진적으로 단축하여 1999년부터 22개월의 복무기간을 2009년부터 12개월 이하로 줄였다.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하는 과도기에는 징모혼합제를 시행함으로써 복무기간 단축으로 인한 병력부족을 예방하고 모병제전까지 직업군인의 비율을 최대한 확대하려 했다. 또한 급여 인상과 복지를 향상하고 주거환경을 개선해 나갔다. 추가적인 조치로 군 지원자격을 완화하고 여성에게 입대를 확대했으며 우수인재를 획득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도 병행하였다. 이렇게 병역제도를 변경한 배경에는 당시 '양안 경제협력 기본협정’이 체결되는 등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정치·외교적인 국내용 제스처 정도로 인식하는 분위기도 한 몫했다. 이처럼 변화된 안보환경과 감군을 통해 양안관계의 긴장완화를 모색하면서 출산율 저하와 젊은 세대의 병역기피 풍조라는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섬나라 영국

영국은 19세기까지는 대륙과 바다를 사이 둔 지리적 이점 때문에 대규모 육군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1,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영국은 징병제도를 통과시켜 1960년에 폐지되었으며 지원병제도로 변경하였다. 국가복무(National Service)로 불리는 징병제 법안은 1957년부터 단계적으로 폐지되기 시작해 1963년 5월에 마지막 징병 군인이 전역하면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징병제가 폐지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인에게만 적용되고 황실과 귀족은 제외되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사회 고위층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국가를 지키는데 가장 소중한 목숨을 솔선하여 자발적으로 희생하는 헌신정신의 발로로써 의무인 동시에 명예로 인식되었다. 실제로 제1, 2차 세계대전에서 고위층 자제가 주로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은 2,000여 명이 전사했고, 포틀랜드전쟁 때는 앤드루 왕자가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하기도 했다. 이 같은 사례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역사적으로 강대국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반면에 거의 1,000회에 가까운 외부의 침략을 받은 한반도에서는 드물다는 사실은 씁쓸하다.


최초의 징병제 국가 프랑스

프랑스혁명 이전까지 왕립군은 주로 직업군인과 용병이었으나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최초로 징병제를 실시했다. 장 바티스트 주르당의 "주르당법"에 "모든 프랑스인은 군인"이 다며 징병제에 대한 법적인 정당성을 확보했고 이는 나폴레옹에게 전해지며 전쟁에 동원되었다. 최근까지 시행된 징병제는 제3공화국 시기인 1905년부터 실시된 것으로
제1,2차 세계대전, 1946년 인도차이나 전쟁(베트남 독립전쟁) 때 직업군인을, 1954년부터 1962년까지의 알제리 전쟁 때에는 일반인들도 징집되기도 했다. 이처럼 세계대전과 식민지 전쟁, 냉전 등 안보 환경의 변화를 거치며 복무기간의 연장, 단축, 여성 자원입대의 허용, 공익 근무 등 다양한 복무 형태의 변화 등을 거치기도 했다. 이후 1996년 평시 징병 중단하고  2001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징병제 폐지를 선언함으로써 종료하게 된다.

최근 2019년 6월부터는 16세 남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의무복무제 ‘Service National Universel’가 도입되었다. 이것은 의무적 군사교육 체험 제도로서 마크롱 대통령이 2017년 대선 운동을 하면서 공약으로 내세운 것이며 '프랑스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강조함으로써 사회적 단결을 도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중립국 스위스

스위스는 민병제로 불리는 병역제도를 가지고 있으며, 모든 국민에게 국방의 의무를 부과한다. 평시에는 생업에 종사하고 전시를 대비한 동원 훈련을 받아야하며, 국민 총력전체제에 의해 국토를 방위하는 중립국으로서의 지위에 맞는 독특한 제도를 가지고 있다. 현역과 예비역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민병제도를 유지하는 이유는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연쇄중립국으로서 군사적 위협이 거의 없고, 국토의 3/4이 산악지대의 위치하여 외부의 침략에 대한 방어 준비태세를 위한 시간적인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 민병제는 직업군인과 상비부대가 없다는 것과 기초군사 훈련을 실시하고 부대근무와 훈련을 반복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전시와 평시의 편제가 동일하다는 특이한 장점도 가지고 있다. 만 18세의 남성은 의무적으로 징병검사 신고를 하고 19세에 징병 검사를 받게 된다.  이후 적격자로 판정되면 17주간의 신병교육을 받고 민병대에 편입되어 21세부터 50세까지 복무하게 된다.


전쟁이 끊이지 않는 이스라엘

1947년 11월 29일, 유엔이 영국의 위임 통치를 받던 팔레스타인의 강제 분할 계획을 채택하고 1948년 5월 14일, 다비드 벤 구리온의 국가선포로 건국된다. 그리고 다음 날 주변의 아랍 군대는 팔레스타인을 침공함으로써 정식 군대도 없는 상태에서 전쟁을 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공식적인 창군은 1948년 5월 26일로 독립전쟁이 한창이던 기간에 이루어진다. 병역법 역할을 하는 방위복무법은 만 18세 이상의 남녀 모두를 징집대상으로 한다.

방위복무법 제1조(본법)
④ "병역연령자"는 다음 각 호에 따른 연령의 이스라엘 국민 또는 영주권자를 의미한다.
(1) 남성의 경우 18세에서 55세까지
(2) 여성의 경우 18세에서 38세까지

단, 여군은 임신과 출산을 하면 자동 면제된다. 현재 복무기간은 남성 30개월, 여성 24개월이며 제대 후에는 전원이 예비역으로 편입된다. 병력규모는 상비군 168,000여 명, 예비군 445,000여 명이다. 독립과 함께 시작된 전쟁과 사방이 적으로 둘러 쌓인 지리적 상황, 계속되는 테러 등과의 전투로 현존하는 군대들 중 실전경험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병사 월급은 우리 돈으로 월 10~20만 원 수준으로 사적제재가 없고 상하 간에 자유스러운 분위기 등 눈여겨 볼만한 군대문화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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