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공녀>를 보고
소공녀를 봤다. 처음 개봉했을 때도 여자 배우인 이솜이 주연 그 자체인 영화라 눈길이 갔지만, 영화를 보지 못하는 이유야 댈 핑계가 많으니…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서야 보게 됐다. 나의 느낌을 쓰지만 아마 스포가 될 듯싶다. 주인공 미소는 따뜻했다. 개인적으로 사람을 가리킬 때 ‘따뜻하다’는 말만큼 멋진 칭찬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미소는 따스함을 아는 사람이었다. 내가 느낀 것뿐만 아니라, 마지막에 나오는 친구들의 대화 장면에서 그녀에 대한 좋은 말이 오간다. 미소가 없는 공간에서 그녀를 추억하며 터져 나온 말이 좋은 말로 가득한 것만큼, 확실한 증거는 없을 테다. 미소는 새해가 시작되고 오른 월세 값을 내기 힘들었고, 하루 지출내역을 기록하다 다른 이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집’을 지출 내역에서 제거했다. 그러나 그녀가 사랑하는 담배와 위스키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집을 나와 친구들의 집을 여행하는 미소. 그녀가 계란 한 판씩 가지고 들렀던 친구들과 친구들의 ‘집’. 그녀에겐 없지만 친구들에겐 하나 같이 집이 있었다. 하지만 친구들에겐 없는 ‘내’가 미소에겐 계속 존재했다. 돈으로 맞바꿀 수 없는 것과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의 대조였을까.
나를 잃고 삶을 살아가지만 ‘정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친구들의 모습. 표면적으로 보면 친구들 집에 얹혀 자는 미소지만, 집 없는 미소는 친구들 집을 여행하며 그들에게 따스함을 선물하고, 검열 없이 살던 각자의 과거까지도 추억으로 선물한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검열을 포기하지 않겠고, 되돌이킬 수 없다고 얘기하겠지... ⠀⠀⠀⠀⠀⠀⠀⠀⠀⠀⠀⠀⠀⠀ ⠀⠀⠀⠀⠀⠀⠀⠀⠀⠀⠀⠀⠀⠀
나또한 사회에서 당연시 여겨지는 것들이 내게 없을 때, 나를 잃기 쉽다고 느끼는 것 같은데, 미소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보고 친구는 그녀에 대해 말한다. “여전히 웃는 모습이 예쁘더라.” 애써 웃어 보이지도, 힘들다고 투덜 거리지도 않던 미소. 부족한 자신을 탓하며 계속해서 미소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어하던, 사우디아라비아로 생명수당을 받아 가며 파견을 나가는 남자친구에게 “지금도 행복하다”라고 얘기하던 미소. 갖추고 사는 것 같은 친구들과 가사도우미 집 주인에게 오히려 밥을 차려주던 미소. ⠀⠀⠀⠀⠀⠀⠀⠀⠀⠀⠀⠀⠀⠀ ⠀⠀⠀⠀⠀⠀⠀⠀⠀⠀⠀⠀⠀⠀
그녀의 삶에 미소가 가득하진 않아서, 이름과 그녀의 표정은 사뭇 대조되는 것 같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글쎄, 따스함이라는 건 애써 웃어 보이는 사람에게서 나온다기보단 존재 자체로 뿜어져 나오는 것 아닐까. 사람을 사람으로 여길 줄 아는. 사람으로 살 줄 아는. 다른 사람을 쉽사리 부러워하지 않고, 자신으로 살아가는 미소. 그게 참 멋졌다. ⠀⠀⠀⠀⠀⠀⠀⠀⠀⠀⠀⠀⠀⠀
사랑하는 것을 잃어버리지 않고, 내가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아는, 함부로 누군가를 헤프다고 얘기하지 않고 그저 사랑할 줄 아는 미소를 본받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