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장윤하
비정치화란?
이우의 탈이우화.
어떤 일이 있을 때, 그에 대한 입장을 내비치는 걸 꺼리는 것.
이우의 모두가 논쟁에 지쳐있다(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다른 누군가가 반대되는 의견을 말하는 소통 말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사석에선 수많은 이야기와 고민이 오가지만, 공적인 자리에선 자신의 입장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거나, 고민이 있어도 고민을 발화하지 않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일반적인 학생뿐만 아니라 자치활동을 활발히 하는 학생부터 교사까지 이우의 구성원 모두에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유의 대부분이 논쟁으로 이어질 듯한 대화를 꺼린다. 누군가 어떤 의견을 제시했을 때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으며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가야 하는데, 의견에 대한 공감이나 반박 등의 피드백이 아니라 “그렇구나” 로만 받아들여 소통이 멈춰버리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태도는 특히나 자신의 의견이 ‘이우가치’에서 벗어난다고 느껴지거나 다른 학생들에게 비난, 비판을 받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 더 심해진다. 어떤 문제의식을 느껴 공론화하였을 때 그 문제에 대하여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 문제의식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이 의견을 전혀 내지 않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비정치화는 자치 문화를 약화시킨다. 우린 공동체고, 더 나은 공동체가 되기 위해 함께 고민하는 모든 과정이 자치다. 누구나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히며 그 의견들을 바탕으로 함께 새로운 방식을 찾아가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이우학교에선 누군가의 고민이 잘 발화되지 못하고, 발화되어도 더 많은 논의와 변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비정치화가 지속된다면 이우의 표면과 현실이 극간이 심해지고, 공동체의 분열과 갈등 예방을 위해 갈등을 만들어내지 않는 이러한 비정치화로 인해 되려 이우가치에 대한 공감과 실현이 더뎌질 것이다. 자치를 통해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이우학교에서, 이러한 문제점들은 치명적이다. 자치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즉 비정치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해결책을 찾기에 앞서 원인부터 알아보자.
비정치화의 원인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자치 시스템과 학교 전반적인 분위기의 문제다. 어떤 문제가 공동의 문제임을 인식했다 하더라도 ‘말한다고 바뀌겠어?’라는 생각으로 발화하지 않고 넘어갈 때가 많다. 실제로 사전 조사를 위해 진행했던 인터뷰에서, 한 학생은 이우학교에서 생활하며 느끼게 되는 문제나 고민을 발화한 적 있는지, 또 이우는 그런 이야기를 잘 말할 수 있는 공간(시스템과 문화의 측면에서)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문제를 느끼지만, 이야기장이나 학자 등 기회가 없으면 나서서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다. 성향의 영향도 있으나 이우학교가 잘 말할 수 있는 환경은 맞지만,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말을 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나 걱정이 생기진 않지만 서로의 생각을 궁금해하지 않고,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눈치가 보여 부정적인 의견을 말하는 걸 꺼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제 제기를 귀담아들어 주고, 함께 고민하며 해결해나가려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것과 건강한 문제 해결을 위한 시스템의 부재도 비정치화의 원인 중 하나다.
둘째, 자치 교육의 부재다. 어떤 문제를 인식해도, 그 문제가 공동의 문제, 즉 공론화할 문제가 맞는지 알지 못해 발화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공동의 문제에 대한 감각과 이를 함께 다루는 게 자치라는 건 자치 교육을 통해 필수적으로 배워야 하는 요소인데, 이러한 교육이 없기 때문에 발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우학교라는 자기검열이다. 어떠한 의견이 있어도, 그것이 이우학교의 ‘옳음’에 반한다고 느껴지는 것이라면 -욕설을 사용하는 건 개인의 자유라는 의견이나, 결식은 타인이 비판할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처럼- 자신이 잘못되었다 혹은 비난받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발화하지 못한다. ‘더불어 사는 삶’이라는 모토 아래 각자 다른 ‘옳음’의 기준을 논의를 통해 맞추어가야 하고, 그 과정이 자치다. 그러나 이우 가치라는 스스로 만든 틀 혹은 암묵적인 이우에서의 절대적인 옳음이 존재한다. 이는 다양한 의견의 발화를 어렵게 만들고, 이는 곧 비정치화로 이어진다. 이 글에선 비정치화의 세 가지 원인 중 자기검열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다뤄보고자 한다.
어떤 문제나 상황이 있을 때 이에 관련한 이우의 가치나 절대적인 선이 있지만, 이우를 구성하는 학생 중 일부는 이에 대한 충분한 공감이 전혀 안 되어있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공감이 안 되어있는데, 우리는 그러한 공감이 되어있지 않은 학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우는 기존에 추구하던 가치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거나 익숙하지 않은 어떤 것에 대하여 논의라는 가면 속에서 강요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문제에 대해 소통한다고 해서 그것을 논의라고 할 수는 없다. 이우가치를 통한 옳음과 옳지 않음이 구분되어 문제에 대해 소통하는 순간 이는 공동의 논의가 아니라 소수의 소외가 되어버린다. “옳지 않음”에 속해있는 소수는 옳지 않음에 속해있다는 것에 대한 불안 그리고 비판의 대상이 되어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어 자기검열이 생기는데 , 이는 소수와 다수의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게 되고, 이러한 벽들로 인해 비정치화가 형성되어 수많은 문제가 생기고 결국 곪아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이 잘 나타난 것이 바로 결식과 잔반에 대한 문제이다. 옳음(결식/잔반x) 와 옳지 않음(결식/잔반 상관x) 이 구분되어 공감과 공유의 논의보다 소수의 소외가 되어 결식과 잔반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의견은 공유되지 못하고, 문제상황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
단순히 결식,잔반에 대한 문제외에도 모두가 한 번쯤은 이우에 속해있는 자신에 대한 자기검열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옳음에 대해 고찰해야 한다.
과연 이우의 옳음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무조건 옳아야지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인가?
도대체 옳음의 기준은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에 이우의 옳음에 대해 과도하게 집중하고 있다.
이우의 옳음이 있다면, 과연 우리는 무조건 그 옳음에 있어 결백해야 하고, 과연 그럴 수 있는가? 또한 과연 이우의 옳음은 무엇이고, 그 기준은 누가 만들었는가?
기존의 문제 소통방식은 분명 달라져야 한다. 옳음과 옳지 않음이 구분되어 문제에 대해 소통하는 것은 이우라는 공간이 건강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정치화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며,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첫 번째로 자치의 전반적인 시스템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 제대로 된 문제 해결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어떤 고민을 발화해도 해결되지 않고 발화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학생들로 하여금 ‘말한다고 해서 바뀌겠어?’라고 생각하게 하며,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 학생들은 대부분 문제를 느껴도 발화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 발화할 수 있는 장이 있어야 한다. 굳이 찾아가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학자 시간이 잘 활용되어야 하는데, 학년학생회는 학자 시간에 프로그램을 준비해가야 한다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학자 시간이 학년회가 준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시간이 되면, 학생들은 자치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학년학생회를 비롯한 모든 자치회는 이를 경계해야 하며, 학자를 이야기장으로 잘 이용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학자 시간을 제외하고도 2020년 진행되었던 ‘어이구 나이트 인 이우’처럼, 무엇이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장이 있다면 활발한 이야기 문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세 번째, ‘옳음’에 대해 함께 고민할 시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문제 제기 이후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그게 문제인 게 맞다는 사실이 당연시되곤 한다. 이는 제기된 문제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의 발화를 어렵게 한다. 어떠한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이게 문제가 맞는지 함께 고민하고, 문제가 맞다면 그 문제에 대해 공감대를 맞추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더 활발한 논의와 문제 해결로 이어질 것이다. 옳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건 자치기구도 마찬가지다. 자치기구내에서도 각자 생각하는 ‘옳음’이 다르며, 자신의 ‘옳음’이 타인에게도 통용되리라 착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 논점이 맞지 않을 때가 많다. 자치기구 내에서 지향할 가치가 무엇인지 정의하고, 그 가치에 대해 계속 고민하며 자치 활동을 이어 나가야 한다. 옳음이 같을 순 없기에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수용하여 자치기구는 항상 중립적인 의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외에도 모두가 옳음은 각자 다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 옳음에 있어 완전히 결백할 수도 없다는 것을 수용하고 스스로와 타인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자치 교육이 필요하다. 기사 전체에서 내내 나누었던 모든 문제와 상황들은 사실 자치 교육의 부재에서 기인한 것이다. 자치 시스템 구축부터 발화할 수 있는 환경, 옳음에 대한 고찰까지 모두 자치에 대해 제대로 배우고 생각해 볼 기회가 기반이 되어야 시작할 수 있다. 우선적으로 자치회 구성원들에게 학년 초 단 한 번, 짧게 이루어지고 “스킬” 전달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임원 수련회만이 아닌 스스로 1년간의 자치를 구성해갈 수 있는 가치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치는 단순히 생산자와 소비자로 구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에 구성원 전체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고로 자치에 생기는 문제들을 단순히 자치회의 역량 부족으로 치부할 수 없다. 따라서 모든 학생에게 ‘자치는 무엇이다’라고 말해주는 교육이 아니라, 함께 자치는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지 고민할 자리가 필요하다. 또한, 공공의 가치에 대해 배워야 한다. 우린 공동체이며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과 ‘우리의 문제’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공동체의 문제를 느낄 수 있고, 또 발화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자치 교육이라고는 학년 초에 진행하는 임원 수련회만 이루어지는 기존의 체제에서 벗어나 학생 모두에게, 지속적으로 자치 교육을 진행하는 새로운 변화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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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기사작성에 큰 도움이 되었던 재학생분들과 선생님, 졸업생 선배님까지 참여해주신 인터뷰이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