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할머니

딸작가

by 모녀작가

“캐러멜 마키아토 따뜻한 거 하나, 큰 사이즈로 테이크아웃이요.”

“가면서 식지 않을까?”

“괜찮아. 집에 가서 전자레인지 데워 드리면 돼.”


지금의 남편이 남자친구였던 때, 결혼을 결심하고 남자친구의 외할머님 댁에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러 가던 날이었다. 오빠는 휴게소 카페에 들러 ‘캐러멜 마키아토’ 한 잔을 사서 가자고 했다. 나는 아메리카노만 마시던 오빠가 갑자기 웬 캐러멜 마키아토를 먹겠다고 그러는지 의아해 물었다. 그러자 오빠는 본인이 마실 것이 아니라 할머니가 좋아하셔서 댁에 들를 때마다 사서 간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외할머님 댁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 고속도로 마지막 휴게소 카페에서 사는 캐러멜 마키아토는 손자가 늘 잊지 않고 챙기는 할머니의 소소한 취향이었다. 결혼 전 집안의 어르신께 인사를 가는 것은 나에게도 너무 떨리는 일이었지만 엄마도 무척 신경이 쓰였는지 가기 전부터 떡이며 음식이며 이것저것 손에 쥐여 보냈다. 그래서 나는 물론 오빠까지 양손 가득 짐이 많았지만, 그 와중에도 포장해 온 캐러멜 마키아토가 흐를세라 조심조심 들고 가던 오빠의 뒷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할머니의 취향을 보물처럼 들고 가던 여전히 할머니에게는 아이 같은 손자의 뒷모습. 도착하여 캐러멜 마키아토를 컵에 덜어 전자레인지에 데워드리니 주름지신 손으로 따듯해진 커피잔을 매만지시며 참 달고 맛있다며 해맑게 웃으시던 외할머님의 모습. 그 모습을 보자니 익숙한 누군가가 떠올랐다. 바로 나의 할머니였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래서 내 기억의 대부분에는 할머니가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이 며느리였던 엄마에게는 꽤 쉽지 않은 일이었다는 것을 나 역시 며느리가 되어보니 알게 되었다. 그런 엄마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다시 태어나도 할머니와 살고 싶다. 그만큼 할머니가 좋다. 먹고 싶은 게 생겼다 하면 그게 설령 처음 들어 본 음식이라도 어디서 알아내셨는지 뚝딱 맛있게 그 요리를 해주시던, 음식 솜씨가 무척 좋으셨던 우리 할머니. 학교 준비물을 빼놓고 간 주제에 되레 지금 당장 가져다 달라고 떼쓰는 손녀의 철없는 전화에도 쏜살같이 달려와 주시던 슈퍼맨 같던 우리 할머니. 대학교 졸업사진을 찍었다며 보여주자, 핸드폰 액정 화면으로 해두고는 매일 열어 보시던 우리 할머니. 그렇게 나는 어려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할머니의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자랐다.


하지만 영원히 함께 있을 것만 같던 할머니는 4년 전 우리 곁을 떠나셨다. 할머니는 당연히 내가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는 모습을 볼 거로 생각했기에, 내가 상상했던 수많은 미래의 장면들에는 당연히 할머니가 있었기에 너무 큰 슬픔이고 충격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서울에서 뮤지컬 웨딩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었다. 일이 끝나고 동료 언니, 오빠들과 근처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데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응급실에 가셨다는 것이다. 너무 놀란 나는 밥을 먹다 말고 식당을 뛰쳐나와 자취방으로 갔다. 급하게 당진집으로 갈 짐을 챙겨 가장 빠른 고속버스 시간을 예약하고 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로 향하는 택시에서 엄마가 위급한 것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조심히 내려오라고 했는데 그 말에도 나는 진정이 되지 않았다. 심장은 계속 두근거렸고 온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온갖 나쁜 경우의 수가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그렇게 10시간 반 같던 1시간 반을 달려 집에 도착했고 아빠와 함께 응급실에서 할머니를 본 뒤에야 진정이 되었다.


할머니는 몇 달 전부터 다리를 다쳐 집에서도 거의 눕거나 앉아서 생활하셨다. 그러니 몸에 근육이 점점 빠지고 기력이 쇠해지셨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에게는 작은 부상도 치명적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러던 중 아침에 엄마가 할머니를 깨우러 방에 갔는데 아무리 불러도 할머니가 깨지 않으시자 깜짝 놀란 엄마가 아빠를 불러 할머니를 응급실로 모셔온 것이었다. 다행히 할머니는 다시 의식을 차리셔서 당진까지 달려온 날 알아보시며 내 손을 쓰다듬으며 웃으셨다. 하지만 의식은 찾으셨지만, 여전히 기력이 없는 할머니는 응급실에 더 입원해 계셔야 했다. 나는 서울의 다른 일정들을 취소하고 집에 있기로 했다. 그 뒤로 사실 며칠이나 내가 집에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몇몇 기억이 영화 속의 장면들처럼 떠오를 뿐이다. 매일 할머니의 면회를 하러 갔고, 할머니가 옆에 있는 다른 할머니의 모자가 이쁘다며 비슷한 걸 사달라 해서 특별히 할머니가 좋아하는 보랏빛의 털모자를 사드렸다. 그리고 퇴원을 허락받은 할머니가 집에 돌아온 그날 간만에 본인의 침대에서 편안히 낮잠을 주무시는 걸 지켜봤고, 깨어나신 뒤에는 쿠키랑 같이 할머니와 짧은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 그날 저녁 할머니는 갑자기 쇼크가 와서 호흡을 거칠게 쉬시더니 우리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그 이후로는 몇몇 장면들은 더욱더 조각나서 스쳐 지나간다. 엄마가 할머니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던 모습,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손을 잡고 울던 아빠의 모습, 나였는지 누구였는지 모를 목소리가 119에 대체 언제쯤 오냐고 재촉하던 목소리, 그 뒤로 이어진 할머니의 장례식. 4년이 지난 지금은 강렬했던 몇몇 장면들 빼고는 모든 것이 뒤엉켜 기억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처음 몇 년은 핸드폰 속에 저장된 할머니와 찍은 사진들을 마음의 준비 없이 마주하게 될 때마다 눈물이 났다. 그런데 이제는 슬며시 웃음 지을 수 있다. 할머니와 좋았던 기억이 더 선명하게 남아있기에.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더니 나도 조금씩 슬픈 것은 잊어가나 보다. 4년은 모든 것을 잊기에는 짧은 시간이고 모든 것을 기억하기에는 긴 시간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가끔은 꿈에도 할머니가 나온다. 어릴 때 내가 보던 할머니의 모습으로 놀러 오시기도 하고 아픈 모습으로 다리를 다쳐 앉아서 나를 부르시기도 한다. 어떤 모습이든 꿈에서 할머니를 보면 반갑다. 이런 이야기를 아빠에게 하자 본인 꿈에는 한 번도 안 나오셨다며 투덜거렸다. 역시 할머니는 아들보다는 손녀가 더 먼저 보고 싶으셨나 보다며 아빠를 놀렸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여러 후회를 한다. 과거의 내가 할머니에게 했던 것들과 하지 않았던 것들을 번갈아 후회해 본다.


한 번은 시간을 돌려 할머니를 딱 하루 만날 수 있다면 뭘 해보고 싶냐는 주제로 오빠와 이야기를 해본 적이 있다. 나는 그때 할머니랑 예쁜 카페에 가서 데이트를 하고 싶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성인이 된 뒤 할머니와 카페를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친구들이랑은 매일 가는 곳을, 엄마와도 가끔 가면서 왜 할머니랑은 같이 갈 생각을 못했을까. 별거 아닌데 괜히 죄송스럽다. 그래서 혼자 상상한다. 예쁜 카페에 들어서면 펼쳐지는 멋진 풍경에 놀라는 할머니. 여기가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며, 손녀 덕에 이런 곳도 와보는 거라며 생색내는 나. 나는 아메리카노, 할머니는 캐러멜 마키아토를 시키고 한입씩 맛보는 우리. 캐러멜 마키아토가 참 달고 맛있다면 아이처럼 웃는 할머니. 내 것도 한 입 마셔보라 건네자, 아메리카노를 먹고선 이 쓴 걸 돈 주고 먹냐며 인상을 찌푸리는 할머니. 그러다 주문한 조각 케이크가 나오고 그 위에 놓인 블루베리를 보며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이라며 포크로 콕 찍어 입에 쏙 넣을 우리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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