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에도 가지를 뻗는 나무처럼

엄마작가

by 모녀작가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 놀이 수업한 지 오래되었다. 그동안 여러 곳에서 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은 늘 나를 성장시키는 어린 스승이 되어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하는 덕분에 돌발 행동해 준 덕분에 나는 더 열심히 준비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서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우리는 실수하면서 자란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수업 전에는 늘 기도하는 습관이 생겼다.


스승 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이가 있다. 그날도 정신없이 수업할 때였다. 태권도 도복을 입은 아이가 들어왔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아동센터는 학년별로 아이들이 오는 시간이 달랐다. 또 아이들의 흥미에 따라 수업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고 싶다는 아이는 모두 할 수 있도록 준비물을 여유 있게 가지고 다녔다. 시작하려고 할 때 또 다른 아이 한 명이 들어왔다. 그 아이는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곤 자리에 앉았다. 그림책을 읽어주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활동으로 나무를 그렸다. 눈에 띄는 그림이 있었다. 한 아이는 도끼가 나무를 찍는 그림을 그렸고 한 아이는 물에 비치 나무를 그렸다. 미술 심리에서는 나무는 자신을 표현한다고 했다. 두 아이의 마음이 보였다.


물에 비친 나무를 그린 아이의 그림을 보았다. 땅에 선 나무는 살짝만 건드려도 넘어질 것처럼 기우뚱하게 그리고 물에 비친 모습은 반듯하게 그렸다. 위태로운 나무보다 물에 비친 나무가 더 푸르게 색칠했다. 그림을 보고는 아이를 봤다. 태권도를 좋아한다는 아이의 표정이 의젓해 보였다. 다문화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였다. 센터에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많았다. 그림을 보고 칭찬해 주었다. 반듯하게 자라나려고 애쓰는 마음이 기특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너는 이미 반듯하게 잘 자라고 있다고 얘기해 주었다. 물을 보고도 거울로 삼아 자신을 비추는 마음은 누구나 하는 마음이 아니라고 해주었다. 스스로 자기를 돌본다면 너는 푸르고 튼튼한 나무가 될 거라고 말해주었다. 마지막으로 힘들면 쉬는 마음도 필요하다고 말하니 아이도 안다고 했다. 나는 ‘역시’라는 추임새와 함께 두 손으로 엄지척을 해주었다. 의젓하던 표정은 사라지고 아이는 초등학생답게 환하게 웃었다.


나무에 도끼를 그린 아이와 둘이 남게 되었다. 아이와 이야기하고 싶어 마지막 순서로 했다. 다른 아이들이 있으면 말하지 않기에 둘만 남았을 때 그림을 보면서 활동했다. 도끼의 주인은 누구냐고 물어보았다. 아이는 나무꾼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며칠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가 프라이팬으로 할머니 머리를 때리면서 야단을 쳤다고 했다. 할머니는 맞을 짓을 했다며 자기에게 상한 음식을 먹여서 아버지한테 맞았다는 것이다. 아이는 계속 말했다. 강아지가 맞은 얘기와 음식이 상한 것도 모르는 할머니 얘기를 했다. 자기는 강아지가 너무 좋다고 말하면서 한참을 강아지 얘기를 했다. 아이의 환경이 걱정되었다. 아이는 남의 얘기하듯 밝은 표정으로 말했고 듣는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 감추기 바빴다. 늘 고개 숙이고 표정을 보여주지 않던 아이가 재미있는 얘기 하듯 가정폭력을 말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아이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었다. ‘정말, 와, 그랬구나’ 같은 추임새를 넣어주니 아이는 더 신나서 이야기를 쏟아냈다. 말을 끝낸 아이가 웃었다. 그 아이가 웃는 모습은 그때 처음 보았다. 재미있어 다음에 또 수업하고 싶다면서 좋아했다. 나도 같이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아이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그 아이와 몇 번을 같이 수업했다. 아이는 수업 때면 표정이 밝아지고 얘기를 잘했다. 센터장님은 아이의 그런 변화를 긍정적으로 보고 좋아했다. 밝게 자라려고 애쓰는 아이가 대견스러웠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아이는 센터에 오지 않게 되었다. 센터에 갈 때마다 그 아이가 생각난다. 어디에서 살든 아픈 상처보다는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면서 건강하게 자라길 기도하게 된다. 비바람에도 가지를 뻗는 나무처럼. 그 나무에 도끼가 아닌 꽃이 피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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