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이 많은 사람이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할 때 더 그렇다. 일명 여자 유재석이라고 할까. 그래서 요즘은 독서 모임을 여러 개 하면서 책 이야기를 신나게 하고 있다. 한땐 신앙공동체 모임을 열심히 한 적도 있었다.
결혼과 동시에 천주교 교반 모임을 했다. 교반 모임은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 내에서 같은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끼리 모임을 하는 것을 말한다. 서로가 잘 아는 사이라서 신앙 이야기 외에도 아이 키우는 얘기며 세상 사는 얘기를 나누었다. 물론 천주교 신자들 모임이기에 신앙 이야기를 가장 많이 했다. 모임을 하는 교반 식구들 대부분이 젊은 부부들이어서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마칠 때에는 늘 아쉬워하면서 헤어졌다.
교반 식구 대부분이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나는 그분들을 형님이라고 불렀다. 형님들과 같이 성서 구절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그때 나는 매일 성당에 가서 기도하고 집에서도 성서를 읽고 기도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하느님 말씀이 새롭게 다가왔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아는 기쁨을 나누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는지 성서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말이 많아졌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도 모르게 방언 터지듯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형님들 앞에서 열성적으로 하느님 말씀을 전하곤 했다.
한 번은 유치원생인 아들을 데리고 갔다. 아들은 그 집에 있는 초등학생 형들과 작은 방에서 놀고 나는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를 초대한 형님은 신자였지만 남편분은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다. 비신자인 남편분이 자기 집에서 모임 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아 우리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모임 중간에 퇴근한 남편분은 주방에서 늦은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모임 순서에 따라 성서 구절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누군가 성서 구절의 하느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그분의 말에 대답하듯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내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모른다고 했던 분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며 좋아했다. 형님들은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특별한 은총을 받았다며 칭찬했다. 나도 모임에 도움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시간이 흘러 작별 인사를 하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면서도 형님들과 수다를 떨었다.
집에 도착하고 나니 아차 싶었다. 유치원생 아들을 그 집에 두고 나 혼자만 온 것이었다. 나는 허겁지겁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막내를 임신한 상태였던 나는 마음과는 달리 빨리 걸을 수가 없었다. 막달에 가까운 임산부였던 나는 부른 배를 두 손으로 감싸 안고 뒤뚱거리며 걸었다. 우리 집에서 그 집까지 거리가 그날따라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뛰는 것도 아닌 빨리 걷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걸음으로 가는데 저 멀리서 형님 손을 잡고 오는 아들 모습이 보였다. 멀리서도 서운해하는 아들의 몸짓과 표정이 보였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아들을 데리고 온 형님은 나를 보자마자 배를 잡고 웃었고 아들은 한쪽 손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훌쩍거렸다. 형님이 웃는 이유를 말해주었다. 모임이 끝나고 남편분이 아들 방에 가니 낯선 아이가 있어 깜짝 놀랐단다. 아들 흘리고 간 엄마가 누구냐며 묻는 남편에게 형님이 나라고 얘기를 하니 남편 눈이 더 똥그래지면서 말했단다.
“성서 이야기를 똑 부러지게 잘하던 그 사람?”
“아까 선생님처럼 똑똑하게 말하던 그 사람?”
“인제 보니 허당 선생님이었군.”
형님 말에 의하면 남편분은 밥을 다 먹고도 계속 내 얘기를 듣고 있었단다. 내가 너무 말을 잘해서 일어날 수가 없었고 듣는 내내 감탄을 했단다. 그런 내가 아들을 두고 갔었니…….
사실 나는 허점이 많은 사람이다. 앉아서 말 잘하고 일어나면서 넘어지는 것처럼 엉성한 사람이다. 그게 매력이라고 포장해서 말해주는 좋은 사람 덕분에 오늘도 나는 허당 박 선생으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