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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 Nov 22. 2018

폴란드로 간 아이들

프로젝트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배경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추상미 감독이 준비 중인 영화 그루터기의 제작 준비과정과 고증을 위한 현장조사 등을 담은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이다. 한국전쟁 중이었던 1951년 북한은 수많은 전쟁고아들을 러시아, 헝가리, 불가리아, 루마니아, 체고, 동독, 폴란드 등의 사회주의 동맹 국가에 보내 위탁교육 형식의 집단생활을 하게 했다. 영화는 그중 폴란드로 간 1500명의 아이들의 자취를 쫓고 있다. 감독은 폴란드 소설 <천사의 날개>와 다큐멘터리 <김귀덕>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아이가 전쟁으로 받은 상처를 회복해 가는 스토리에 대한 강한 인상을 받았다. 한국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에 대한 궁금증은 더 깊은 조사로 그녀를 이끌었고, 이에 폴란드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김귀덕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 그루터기(가제)를 준비 중이다. 새터민 아이들을 대상으로 영화 오디션을 진행하면서 만난 김귀덕의 친구 역으로 캐스팅된 이송이라는 아이와 함께 폴란드로 현장조사를 떠났고, 그들의 현장조사 여행기와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자취를 쫓는 과정을 영화로 담았다. 참고로, 추상미가 만들고 있는 영화 그루터기는 전쟁고아로 폴란드에 갔지만, 병에 걸려 돌아오지 못했던 북한 소녀 김귀덕의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고 한다. 폴란드에 간 아이들은 추상미가 왜 그루터기이란 작품을 준비하게 됐는지를 소개하고, 그 작품에 출연할 탈북민 아이들을 선발하는 오디션을 진행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 김귀덕

방치되어 있던 김귀덕 묘지를 발견한 폴란드 기자 욜란타 크르소바타(남. 2013년 천사의 날개라는 제목의 북한 고아 아이들 책을 발간함)와 파트릭 요카(여), 두 감독에 의해 다큐멘터리화 되었고 2006년 폴란드 공영방송 TVP에서 방영됨. 김귀덕은 1951년부터 1959년까지 8년간 폴란드에서 위탁교육을 받던 북한 정부가 보낸 전쟁고아 중 한 명으로 희귀병에 걸려 폴란드에서 죽었고, 브로츠와프에 묻힘. 다큐는 당시 아이들을 돌보던 폴란드인들의 생생한 증언과 소회, 아이들이 북한으로 송환된 후 부쳐온 편지에 대한 내용 등을 담고 있음. 아이들의 상처와 그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폴란드인들의 상처가 치유되는, 상처와 치유의 연대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음. 다큐는 한국에서 2017년 초에 국내 외대, 연대, 계명대 등 몇몇 대학에서 상영됨. 감독들이 내한하여 함께 이야기를 나눔.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폴란드로 간 아이들 편]에서 나눈 이야기


1. 과거 나쁜 경험으로 받은 당신의 상처는 현재의 무엇이 되었나?

우리는 과거를 잊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지만 없앨 수는 없다. 당신에게 상처를 준 과거의 나쁜 경험을 잊기 위해 무언가로 꽁꽁 싸매 깊숙이 숨기려 노력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없던 일이 될 순 없다. 우리가 상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방어 기제 그리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문제 해결에 대한 교훈.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일어나버린 그 일을 들여다보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야만 그것이 힘이 될 수 있다. 다큐 속 송이에게 이 이야길 해주고 싶다.  


2. 통일이 되면 우리의 삶은 어떠할까?  

어쩌면 우리가 다시 하나의 나라가 되는 일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미워하고 서로 위협하며 살 이유도 없다. 비슷한 언어가, 그로 인한 대중문화에 대한 취향이 가장 먼저 하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서로의 문학이 공유되거나 더 풍부해질 수도 있을 것 같고, 훌륭한 북한의 작가를 한민족이라며 세계적으로 뿌듯해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신분증만 있으면 남북을 자유롭게 왕래하고, 같은 돈을 쓰고, 서로 쉽게 결혼하고 그러다 어느 날 남북에서 왔다는 것은 그저 '내 고향은 경상도야'라고 말하는 것 같은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런 가벼우면서도 장밋빛으로 그릴 수 있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통일을 그리는 사람들을 위하여.. 


3. 한반도, 전쟁과 분단 후 65년, 우리가 이룬 것과 잃어버린 것들은 무엇일까?

좋고 나쁨, 혹은 우위를 따져보자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진 환경 속에서 어떻게 다르게 변화했는지 이야기해보고 싶다. 하나였던 우리는, 어떻게 서로 다르게 "우리"와 "그들"으로 구분지어지는 특징을 가지게 되었을까? 


 



다큐 속에서 폴란드 선생님들은 왜 아이들을 사랑하셨냐는 질문에 본인들도 전쟁의 아픔을 겪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이 자신의 유년시절의 일부 같았고, 그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가 필요하다는 걸 직감해 그렇게 부르게 했다고. 상처의 연대, 연민이 아닌 공감과 감정이입으로 서로 보듬으며 치유해 간 그 이야기가 내 마음에도 남았다. 아마 요즘 나의  관심사가 <sympathy가 아닌 empathy>여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물론, 알고 관심 가진다고 누구에게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많은 상황에서 공감보단 타인으로서의 연민의 감정을 가지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그것을 인지하고, 마주 보고, 어떤 지향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이고 싶다. 


*본 글은 친구들과 운영하는 팟캐스트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에서 토론을 위해 준비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은 다양한 책과 영화 콘텐츠를 소개하고 관련 대화를 나누는 팟캐스트로 아이튠즈 팟캐스트팟빵파티에서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으로 검색하시면 들으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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