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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 Sep 25. 2022

혼자 놀기의 고수

결혼 방학 #8

The greatest strength of an individual is to be by themselves for extended periods of time. 


나는 원래 혼자 잘 노는 사람이었다. 10대 후반에 자퇴를 하고 또래들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놀 때 도서관이나 아르바이트하는 가게, 시내를 배회하면 혼자서 놀았고, 20대 초반부터는 혼자 장기 여행을 다녔으니 삶이란 원래 주로 혼자이며, 가끔 운이 좋으면 누군가와 함께 일 수도 있다가 다시 홀로가 돼도 좋은 것이라 여기며 살았다. 혼자일 땐 놀아 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누군가와 함께 일 땐 혼자인 시간을 그리워했다. 나는 외로움은 혼자이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기댈 곳이 없어 오는 감정이라 여겼고 운 좋게도 내게는 원한다면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었고, 집에는 나를 반기며 나랑 노는 것을 즐거워하는 부모님과 동생이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가족이 내 삶의 최우선 순위인 적이 많지는 않지만, 우리 중 누구든 서로가 필요하다면 기꺼이 함께 했고, 사실상 내게 가족은 우선순위 계열에 리스트업 하기도 뭣한 그냥 골조 같은 존재로 존재했다. 생각해 보니 그를 만나기 전에 한 내 연애가 거의 3개월은 넘긴 적이 없는 이유도 다 이런 배경 때문인 듯하다. 내 기저에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혹은 외로움이 크게 자리잡지 않았고, 내게 홀로라는 것은 외로움보다는 자유로움의 개념으로 다가왔다. 타인이 지옥이다라는 샤르트르의 말에 100% 동의를 표할 생각은 없지만, 동의를 표하지 않음 역시 내가 주변인을 인지해서 하는 선택임을 감안할 때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사회적 존재의 삶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은 얼마나 평온하고 달콤한가?  



하지만 삶은 습관이다. 30대 혼자 살아본 적이 없다는 핑계로, 일 년에 한 달씩 혼자 하던 혼자 여행의 대체재로, 나는 30대 마지막 하반기를 혼자 살아보겠다며 그가 있는 파주를 떠나, 홀로 속초로 왔지만 오래간만에 혼자된 시간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이미 상호 배려에서 느끼는 심리적 안정감, 편안함, 즐거움, 일을 나누어함, 비용이 저렴해짐 등의 함께 하는 삶의 장점에 퍽이나 익숙해져 순간순간 모든 일처리를 혼자 하고, 혼자 먹고, 혼자 놀아야 하는 것이 비효율적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사는 삶은 아침에 상대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히 일어나 음악을 켜고 하고 싶은 아침 루틴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잔소리 듣지 않고 TV를 보며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 원하는 시간에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 등의 장점이 있었지만 샐러드용 야채를 최소한으로 사도 네 끼 이상은 해 먹어야 하니 결국 피클들이 늘어나고 신선품 사기가 꺼려진다는 것, 평소 두 끼면 해결됐던 카레도 일단 만들면 네 끼는 먹어야 했는지라 쉬이 요리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 치킨이나 회 등은 1인분을 사기가 어렵다는 것, 그가 좋아하는 분위기 좋은 카페나 레스토랑에 혼자서는 갈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 등에서 아쉬움이 일었다. 역시나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따르는 법이다. 나는 그저 혼자된 삶 속에서 근래 생겨난 혼자라서 아쉬운 감정을 온전히 잘 느끼고, 그와 함께 했던 더욱 아름답게 추억되는 순간들을 회상하는 것을 즐기며,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보기로 했다.  


약간의 관점을 바꾸니 많은 것들이 새로웠다. 일단, 혼자 하기에도 퍽 즐거운 것은 산책공연 관람이다. 혼자 하는 산책에는 사유라는 친구가 있었고, 혼자 보는 공연에는 오롯이 공연에만 집중하게 되는 몰입이라는 친구가 따라왔다. 지난 수요일에는 쏘카를 빌려 타고 양양까지 가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있는 모든 항구와 비치에 들리는 놀이를 했다. 각 거점에 끽해야 5~10분 정도 머물렀으니 여행이라기보다 탐방, 답사에 가까운 활동인데 그날은 그게 재밌었다. 해변은 낙산이 마음에 들었고, 설악해변에서 열심히 보드 타는 이들을 한참 구경했으며, 항구는 후진이 왠지 정이 갔다. 그렇게 30분 거리를 단숨에 내려가 2시간 가까이 걸려 10곳 정도를 찍고 돌아오는 게 그날의 내 놀이었다. 어제는 청초호 건너편에 있는 속초 문화예술회관에 가서 판소리 극을 보고 왔다. <춘향가, 심청가, 적벽가, 수궁가, 흥부가>가 이몽룡의 거지패 여정으로 아주 참신하게 각색된 신명 나고 볼 맛난 극이었다. 끝나고 나서 진짜 괜찮은데? 이 한마디를 나눌 상대가 없다는 게 좀 아쉬웠을 뿐이다. 어쩜 그게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극만큼 좋았던 건 그 극을 보러 오고 간 길이다. 최단 거리 편도가 약 4km 정도의 거리인데 호수를 한번 돌아볼 요량으로 2시간 반을 걸려 아바이마을, 중앙 시장 등 시내의 이곳저곳을 거쳐 강 윗동네 길로 걸어갔다가 극이 끝나고는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설악대교를 건너는 호수 아랫길로 돌아왔다.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해 사람들의 옷차림에도 변화가 있었고, 나무들도 조금씩 가을맞이 준비를 하는 듯 여기저기 주렁주렁 달린 은행이며, 밤송이가 눈길을 잡았다. 하늘은 파랬고, 새털구름이 하늘의 매력을 더했으며, 우연히 만난 플리마켓에서는 가족들에게 추석선물로 나누고 싶은 동결건조 간식을 잔뜩 샀다. 아마도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다른 길로 걷게 되었을 것 같다. 혹여 이 길을 함께 걸었더라도 다르게 느꼈을 것 같다. 잠들어 있던 나의 혼자 놀기 세포들이 슬슬 일어나 몸을 푸는 듯하다. 사실, 지난 주말 해수욕장 폐장이라는 말에 혼자 튜브를 들고 바다에 가 물놀이를 하고 걸어오는 순간 느꼈다. 이 정도면 이미 나는 혼자 놀기의 고수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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