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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 Sep 18. 2022

속초 살이

결혼 방학 #6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풀꽃]

내가 살기 시작한 이 도시, 속초도 그러할 것이다. - 방자 [속초살이]


여름의 속초는 들떠있다. 하루 종일 집에 혼자 있다가도 20분만 걸어 바다에 가면 휴가 온 사람들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고 조금 더 큰 맘을 먹고 중앙시장까지 가면 정말 이게 그렇게 줄 서 먹을 건가 싶은 닭강정, 술빵, 감자전 같은 품목에 길게 늘어서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기회라는 듯 여행지에서 소비를 아끼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여기저기 기웃대는 수많은 관광객들의 열기도 느껴진다. 7월 중순부터는 갯배 ST, 속초해변, 속초시립박물관 등 도시의 이곳저곳에서 축제가 열리고 주요 카페나 길거리에서 버스킹 공연이 진행되었다. 서울 정도는 아니어도, 좁은 시 면적을 고려하면 내가 살던 파주나 다른 경기도권 도시보다는 훨씬 많은 문화행사가 열리는 것 같았다. 평소에도 축제나 문화 볼거리를 찾아 시 밖으로 원정을 마다하지 않는 편이었던지라 덩달아 나는 내가 있는 곳 근처(walking distance)에서 열리는 행사들을 맘껏 즐기는 여름을 보냈다. 혼자서.    


할 일을 하다 시간 맞춰 행사장까지 부지런히 걸어가 그곳에서 파는 음료 한 잔을 사서 좋은 자리를 잡는다. 혼자지만 앞자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혼자이기에 더 열심히 박수를 치고, 호응을 보내고, 그곳에 온전히 스며든다. 마치 다른 무엇이 아니라 온전히 공연하는 그대를 보기 위해, 나를 위해서 이곳을 찾았다는 듯이 말이다. 공연 중간에 일어나는 일은 없다. 가자는 사람도 없고, 봐야 할 눈치나 쫓기는 일도 없기에 유일하게 지켜야 할 의리는 그저 앞에서 열심히 이 순간을 빛내고자 노력하는 아티스트와의 의리뿐이다. 공연이 끝나면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간 길을 되돌아온다. 난 놀러 온 여행자가 아니라 이곳에서 일상을 여행자의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주민이니까. 이렇게 일주일에 한 두 개씩 문화생활을 즐기는 삶을 살다보니 여름이 가고 사람들이 떠난 뒤의 속초가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썰렁하고 아쉬우려나? 그래도 고요하고 평안한 그 나름의 매력이 있겠지? 내가 어떻게 느끼냐는 가봐야 알겠지만, 내가 언제까지 여행자의 마음가짐을 유지하느냐의 문제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낯선 곳에 와 호기심의 눈으로 도시를 바라보는 나는 아직 속초에게 관대하고 수용적이다.


놀러 온 친구가 내게 왜 속초냐고 물었다. 작년 겨울 고성부터 부산까지 동쪽 해변을 따라 1달간 여행을 한 후 속초에 집을 얻기로 결정했다는 이야기를 몇 차례 한 터라 속초로 결정한 데는 내가 발견한 속초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속초를 선택한 이유가 아닌 파주의 일상에서 떠나봐야 하는 이유가 더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속초를 택했지만, 소소한 다른 경험으로 인해 다른 도시를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을 생각해 보게 하는 질문의 힘에 의해 생각해 본 속초의 매력은, 배산임수이다. 설악산이 있고, 바다가 있고, 호수가 있다. 맘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이다. 더 크게 차 없이도 살만한 곳이라는 매력이 있다. 편의시설이 모여있고, 작은 중심가에 사람들이 모여 산다. 회, 생선조림, 매운탕 등 바다에서 나는 먹거리에, 두부, 산채 비빔밥 등 산해진미를 접하기 쉽다. 하지만 모두에게 속초가 좋게 보이는 건 아닌 듯하다. 속초에서 만난 두 명 정도가 속초 삶의 불편함을 토로했다. 언급했던 여름의 습함, 게다가 겨울에는 내륙보다 춥고 봄에는 바람이 심하다고 한다. 호수나 바다에서 나는 기분 나쁜 냄새, 오래된 관광 도시의 낙후함, 문화적 접근성의 제약 등이 불만의 내용이었다. 내가 장점으로 보는 것과 조금 다른 것도 있지만 사실 보는 관점의 차이이지, 같은 맥락의 것도 많다. 새삼 관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내가 선택해서 온 속초에 대한 책임감과 호감이 있다. 그것이 이곳을 더 좋은 곳으로 인식하게 한다. 게다가 아직 잘 알지 못하니, 부정적 경험은 오해일 수 있다는 전제로 대하고 긍정적 경험은 내게 찾아온 행운이자 이곳의 매력으로 대하게 된다. 좋게 좋게 보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 호감을 가지고, 사랑을 시작할 때처럼. 사실 모든 것이 다 비슷하지 않나 싶다. 결국, 이 낯설고 신선한 도시는 조만간 익숙한 곳이 될 터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곳을 좋아하려면 그저 관계 맺지 않고, 감정 없이 익숙해지기 전에 이곳의 사람이든, 자연인 든 무엇이든 간에 관계를 맺고 스스로 시간과 애정을 들이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선택한 속초와 더 오래 사랑하기 위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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