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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 Sep 15. 2022

결혼했지만 연애하고 싶어

결혼 방학 #5

그럴 수 있지 않아? 결혼 했다고 설렘이 자동 충전되거나 더이상 필요하지 않은 건 아니잖아.

결혼 했어도 여전히 연애 감정은 느끼고 싶다고...

  

결핍은 가졌던 것에 대한 감사와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컴퓨터가 생겼다. 10 만이다. 아니  오래되었다. 처음으로 맥북을 쓰기 시작한  2012년인데, 개발자 동생이 쓰던  에어를 20  정도 주고 물려받아 쓰기 시작했다. 2016 개발자 남자 친구와 여행을 떠나기 ,  남자 친구는 여행 준비로  맥북을 사고 쓰던 맥북 프로를 내게 물려주었다. 그리고 돌아와서 개발자 남편이  그가 새로운 맥북을 구매하자   컴퓨터 버전 업을  기회를 얻었다. 2019년쯤이었던  같다. 지난 10  개발자 가족 덕에  세팅된 중고 맥북을 편히 쓰고, 필요할 때마다 전주인 A/S 받으며 살았더랬다. 그랬던 나의 시절, 지원해  가족에게 감사한 마음이 새삼 크게 올라온 것은 혼자 있는 속초로  맥북이 배달되어 왔을 때였다. 이쁘게 포장된 컴퓨터를 꺼내 전원 버튼을 누르고 Hello 마주할 때까지의 설렘은   마주한 세팅의 어려움에 비하면 찰나의 감정이었던  같다. 그렇구나, 내가 쓰는 유료 응용 프로그램   계정이 거의 없구나. 나는 컴퓨터의 사용자였지만, 관리자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를 마주한 이번 기회에 겸사 파일 정리를  해보겠다고  쓰던 타임머신 백업 대신 하나하나 파일을 체크하고 지우고, 옮겼다. 컴퓨터에는 정리되지 않은 2 여장의 사진이 들어있었다. 2015 사진부터가 주를 이루니 맥북이 알고 있는  연인은  하나다. 근데 사진을 살펴보니 마치 여럿 같다. 까까머리 앳된 소년 같은 ,  머리 산발의 여행자 , 장발의 묶은 머리 , 단정한 대표자 모드 , 귀여운 강아지가 생각나는 뽀글 파마머리의 , 묘하게  어울리던 단발 펌의 , 머리가 인상의 70%라더니 그래설까? 7년이란 세월은 나도 그도 비껴가지 않고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지만 헤어 스타일 때문인지 그의 변화는   변화무쌍했던  같다. 그렇구나.  같이 있어서 내가  아는 사람, 알던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없이 변화하고 있는  눈치도  채고 있었구나 싶다.


사진을 보고 있자니 새삼 연애할 때 그, 함께 여행할 때 그가 생각났다. 만나면 늘 두 팔 벌려 안아 주던 그를, 그 순간을 내가 참 좋아했는데 어느덧 정신 차려보니 늘 함께라 최근 그 포옹을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함께한 세월이 쌓이면서 익숙해져 설렘은 편안함으로, 불안감은 안정감으로 바뀐 우리의 관계는 든든한 버팀목 같은 장점도 있지만 어느새 설렘, 풋풋함 이런 것들과는 멀어졌구나 싶다. 그것이 그립다면 다시 다시 가져올 순 없는 걸까? 설렘도 편안함도, 다 가질 순 없는 걸까? 나는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적어보기로 했다.


만났을 때의 포옹. 가끔씩 주고받던 이메일. 손편지. 같이 산책하며 나누는 이야기. 그가 실험삼아 만들어  요리.  한잔하며 수다나 게임. 함께 새로운 장소에  . 자신은  보지 않았고 선호하지 않지만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함께 하는 (놀이동산 머리띠 같은). 같이 배낭을 메고 걷는 . 같이 맛있는 한상을 차리기 위해 척척 각자의 일을 해내고 상에 앉아 함께 식사하기.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열심히 해줄 . 자주 보는 꽃이나 식물의 이름을 내가 묻고 그가 답하지 못할 . 석양이나 날씨 좋은  함께 여유를 즐길 .


과거 사진들을 봐서인지 퍽 많은 것들이 생각났다. 추억. 기억. 그것들은 모두 흘러가 버린 것일까? 물론 여전히 즐기고 있는 것들이 있지만, 그땐 몰랐어도 이제와 생각해 보니 무척 행복했었다 싶은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거나 그 순간을 소환할 순 없겠지? 약간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흘러가 버린 게 아닌가 싶은 나의 청춘, 그의 청춘, 꽃피던 우리의 청년기에 대하여. 그 마음, 그 감정, 그 느낌 다시 느껴보려면 어쩌면 이 길을 멈추고 다른 길을 걷는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이 길에서 마음가짐만으로 그런 것들은 다시 가져올 수 있다면 어떨까? 알랭 드 보통이 인생학교 책 중 <섹스>편에서 했던 말이 생각났다. 마네의 아스파라거스 다발 그림을 예로 들며 예술에는 우리가 익숙해서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재조명하고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 있다며 그 새롭게 볼 수 있는 관점과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예술성이라고 했더랬다. 내가 여행을 즐기는 이유도 여행자의 시선을 가져다 쓰기 위함임을 감안할 때, 결국 그 둘은 같은 맥락에 있다.  


혼자 지내니 생각할 시간이 많고 상상도 많아진다. 결혼과 함께하는 삶으로 얻은 것도 많지만, 새삼 연애할 때의 설렘이 그립다. 멀리 사는 그를, 거리가 생긴 그를 잘 꼬셔 연애를 걸어봐야겠다. 잘 넘어올진 모르겠지만 잘 안되면 너는 사실 아스파라거스를 새롭게 볼 수 있는 예술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영감을 불어넣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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