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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자 Sep 22. 2022

반가운 사람, 그리운 외로움

결혼 방학 #7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 그리고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 이것들은 감정일까? 생각일까? 


어느덧 속초에 온 지 두 달이 되어간다. 그새 가족과 친구들이 다녀갔다. by myself(나 혼자, 스스로)가 삶의 방식이자 환경인 속초살이에 잠시 누군가 들리면 무척이나 반갑다. 누군가의 방문은 맛있는 것을 먹고, 수다를 떨고, 그동안 알게 된 속초의 매력을 기꺼이 나눌 기회이다. 단조로운 삶을 살고 있던 나는, 자연스레 바쁘고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 때보다 훨씬 더 방문자를 환대한다. ‘이 먼 곳까지 와주신 당신을 환영합니다. 당신이 보낼 이곳에서의 시간과 경험이 행복하고 만족스럽길 바랍니다.’의 마음이랄까? 물론, 나의 일상과 루틴은 내 삶의 공간과 마음을 내주는 순간 자연스레 흐트러진다. 하지만 뭐 어떠한가? 지금 함께 유쾌하지 않은가? 나의 소중한 방문자가 지금 웃고 있지 않은가? 나는 종종 그 순간이 쉽게 취할 핑계가 되어 주는 순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일상에서 깨어있고자 하는 순간과 대비되는 매력적이지만 두려운 시간 말이다. 연속된다고 느껴지는 흐트러진 순간들은 이내 내게 향수를 일으킨다. 혼자 있던 평화롭고, 통제되고, 고요한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다. 참으로 웃기는 일이다. 이는 이대로 즐기고, 저는 저대로 즐기면 좋을 것을, 즐기면서도 다른 것을 그리는 마음이라니 말이다. 아직은 내가 수행이 더 필요한 모양이다.


그새 나는 파주에 두 번 다녀왔다. 7월에는 그와 함께 가서 혼자 돌아왔고, 8월에는 놀러 온 친구의 차를 얻어 타고 가 강의 등 몇 가지 일정을 처리하고 왔다. 한 달 만에 다시 간 파주집은 그새 깨끗 아니 깔끔해졌다. 새삼 연애시절 그의 SNS에 적혀 있던 Cleaner라는 직함이 생각났다. 그 역시 혼자 지내며 어느새 잊어가던 자신의 성향을 하나씩 끄집어내 삶에 넣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는 나를 반겼고, 내가 속초에 있을 때 온 손님 대하듯 나를 환대했다. 3박 4일의 일정에 개인 일정이 있어 그 시간들을 온전히 둘이 보내지 못한 게 아쉬울 만큼 파주집에서의 시간이 행복하고 만족스러웠다. 아쉬운 마음에 일정을 바꿔 하루를 더 있다 갈까 싶기도 했지만, 나는 묘하게 그것이 그가 원하는 것은 아닐 거란 직감을 했다. 그새 단조로워지고, 루틴과 삶의 방식이 생긴 그의 일상에 나의 방문은 반갑지만 흐트러짐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것은 그저 내 관점에 비춘 오 측 일 수도 있다. 그 생각이 들자 나는 푸핫하고 실소 섞인 웃음이 났던 것 같다. 


나는 왜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으로 삶의 더 많은 시간을 보낼까를 생각하다 감사라는 키워드가 생각났다. 나는 뭔가를 알게 되거나 배우고, 깨닫고, 그를 통해 성장하는 것을 삶의 보람이나 재미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특별히 낯선 환경에 떨어져 몸의 감각을 키우고, 초심자의 마음가짐을 가지는 여행을 좋아하고, 워크숍이나 토론을 통한 교류, 학습 내용의 정리 기회를 만드는 것을 즐긴다. 그러다 보니 일도 반복적인 훈련을 요구하는 것보다는 새롭고 도전적인 것들을 선호한다. 그 경험들은 내게 안정감보다는 긴장감을 준다. 나는 무언가 새로운 것에 도전해서 이루어 냈을 때, 그것이 이뤄지게 된 환경 주위의 도움에 대한 감사보다는 내가 쌓은 XP(경험치)에 대한 만족의 감정을 더 크게 느끼는 것 같다. 물론 그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실제 내가 감사라는 감정이 없진 않으니 개인의 인지 일 뿐 타인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을 수도, 혹은 그저 황당한 가설일지도 모르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만약 내가 어떤 선택을 함으로써 놓친 기회비용에 대한 궁금함, 아쉬움, 욕망 없이 그저 선택으로 얻은 것에 대한 감사만 있다면 과연 내 삶을 어떻게 달라질까? 지금과 별반 다를 바 없을까? 아니면 삶에 대한 태도, 자세, 선택을 변화시킬까? 변화를 가정하고 그것을 내 삶에 넣고자 한다면 감사에 대해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감사는 과연 자연스레 올라오는 감정일까? 어떤 경험에 의한 긍정적 감정에서 비롯된 의식적 생각일까?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존 디스펜자의 책 <당신이 플라시보다>에서 말하는 것처럼 “믿음과 인식"을 바꾸는 노력부터? 아니면 그의 후속작 <Breaking, 당신이라는 습관을 깨라>에 나오는 생각하기에서 행동 없이 되기로 가는 익스프레스를 타고자 “명상”에 접근해 볼까? 혹은 온라인 불교대학에서 배운 십이연기를 더 잘 이해하고 를 인식하고 애, 취를 끊어낸 후 감사로 돌리는 시도를 해 볼 수 있을까? 어쩜 그 모든 것들이 사실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렸을 적 교회에서 들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같은 삶의 자세인 것 같은데? 접했던 경험과 지식을 기억에서 끌어내며 이런저런 생각의 꼬리를 물다 책들을 펴보기까지 했다. 이렇게 한발 진리 탐구로 나아갈 수 도 있을까 싶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니 심심해서 해보는 엉뚱한 사유일지도 모르겠다. 삶이 타인과의 교류와 개인만의 시간으로 비교적 명료하게 구분되니 경험에 대한 회고가 늘어난다. 그게 지금은 퍽 재미있다. 진정 감사할 일이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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