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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정 Apr 17. 2021

처리된다

11, 10, 9, 8, 7...  

차가운 형광등 빛으로 채워진 1 남짓의 공간,  손에 음식물 쓰레기가  비닐봉지를 올려   서있다.


“2개월 영아 중태, 아버지가 홧김에 던져”

시선을 돌리다가 머리 위쪽에 달려있던 LCD 스크린을 본다. 헤드라인을 읽어버렸다. ‘ 끔찍한 사건. 보고 싶지 않아. 알고 싶지 않아.  알게 되지 않게 조심해야지.'  떠다니는 생각을 주워 담다 멈칫한다. 의식에게 들켰다.


… 3, 2, 1

한낮에도 짙게 그늘진 통로를 지나 아파트 밖으로 나온다. 대기 중에 하얀 씨앗 털들이 바람을 탄다. 분노와 책망과 한탄이 피어오른다. 걸음을 옮겨 나란히 놓인  개의 커다란 플라스틱 쓰레기통 앞에 선다. 바닥에서 10cm 떠있는 회색 페달을 힘껏 밟는다. 커다란 주황색 뚜껑이 열리고 냄새가 달려든다. 마스크 틈을 비집고 들어와 콧속을 파고든다. 손을 뻗어 비닐봉지 안에  작은 덩어리들을  안에 쏟아 넣는다. 몸에 닿지 않게 조심조심. 채소의 뿌리와 껍질, 씨앗을 품은 과일 심지, 밥알, 고춧가루 입자 따위가 후두우둑 각기 다른 속도로 떨어진다. 페달에서 발을 떼자 천천히 뚜껑이 닫힌다. 악취와 함께 쓰레기가 숨는다. 처리된다.


많은 것들이 처리되는 세상. 사건, 사고, 질병, 죽음, 가난, 장애, 차별, 불평등, 우리가 처리되었다고 믿는 것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쓰레기를 담았던 젖은 비닐을 전용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길을 되돌아 간다.


1, 2, 3, 4…

“2개월 영아 중태, 아버지가 홧김에 던져

헤드라인과 다시 마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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