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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정 Jan 17. 2022

둥글고 뭉툭한

첫 아이를 출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업을 중단했다. 공부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이었다기보다는 낙오될지 모른다는 초조한 마음이 내 시선을 저 너머 아득한 어딘가로 잡아끌곤 하던 시절이었다.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온통 저기에, 스스로에게 들키고 남들에게 들키곤 했다. 하지만 아이의 속도에 맞춰 먹고, 자고, 걷고, 뛰다 보니 어느새 꼭 쥐고 있던 힘이 다 풀어지고 말았다. 그저 순순해지고 말았다. 느긋한 마음에 취해 그렇게 몇 해를 보내다가, 어찌어찌해서 다시 박사과정에 지원을 하게 됐다.


말랑말랑한 마음으로 얼토당토않은 지원서를 제출하고 얼마 후 도래한 면접일, 지나치게 큰 강의실에 두 명의  면접관을 마주하고 앉았다. 질문은 날렵하게 날아들었고, 나는 꿈꾸듯 노래하듯 답했다. 그리고 전생의 나인가? 자기 소리의 반향을 들으며 내 안의 나는 끊임없이 비명을 질러댔다.

“How unscientific! How embarrassing!”

하지만 둥글고 뭉툭한 오늘날의 나는 가만히 그 소리마저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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