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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정 Jan 18. 2022

따뜻하고 고운 옷 한 벌

삽화 작업으로 얼마간의 돈을 벌었다.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닳아버린 지우개만큼이나 '함께하는 분들께 폐만 끼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로 마음도 닳아버렸다. 그렇게 번 돈이었다. 나는 그 돈으로 엄마에게 옷을 사드렸다. 엄마처럼 따뜻하고 고운 옷 한 벌을 사드렸다.


나는 돈을 벌면 엄마에게 많이 많이 주고 싶었다. 뱃속에 아이를 품은 채로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미국으로 가는 나의 옆자리에 함께 앉아준 엄마. 직장을 그만두고, 열일을 제쳐놓고 달려온 그녀는 졸린 눈으로 웃었다. ‘어쩌면’으로 시작하는 진단명들 앞에서 휘청거릴 때도 가장 먼저 달려와준 엄마.  갓 삶은 고기와 막 무쳐낸 나물 몇 가지, 김이 피어오르는 잡곡밥이 담긴 소담한 쟁반을 내 앞에 밀어놓으며 그녀는 마음으로 울고 또 울었다.


“소정아, 엄마는 말이야. 하나님에게 ‘나눔의 은사’를 받은 것 같아.” 어느 날 밥상을 물리고 마주 앉아 과일향 가득한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마치 비밀을 털어놓듯이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엄마는 말했다. ‘맨날 오지라퍼라고 놀렸는데… 나눔의 은사가, 정말 맞다. 맞아.’라고 나도 생각했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엄마에게 진 빚이 너무 많아서, 엄마의 은사를 더욱 발휘하게 돕고 싶어서. 아직은 그 어느 하나 이루지 못했지만, 엄마에게 따뜻하고 고운 옷  한 벌 사드리고 와서는 내내 내 마음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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