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모델의 부재
초등학교 3학년인 우리 집 큰 아이 라윤이는 타고난 기획자다. 그녀의 적극성은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발휘된다. 그런 라윤이가 반장이 됐다. 공약대로 친구들과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학급 소식지를 만들고 나서는, ‘또 뭐할까?’ 궁리 중이다. 라윤이와 달리, 나는 유년시절 내내 조용한 관찰자였다. 두 번인가 학급 임원을 맡은 적이 있지만 다분히 수동적이었던 것 같다. 옛날 생각이 나서 “라윤아, 반장 역할하는 건 어때?” 하고 물었더니, “오늘 학급회의를 했는데…, 과학 시간에는…, 체육 시간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넌 즐기고 있구나’ 생각했는데, “엄마, 그런데 선생님이 나가시면 애들이 너무 장난을 치고 떠들어. 조용히 시키는 게 힘들어.”라고 덧붙였다. '맞지, 그게 반장이 하는 일이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흠칫 놀랐다. 나에게 반장은 '통제하고 관리하는 자’였다. 두 눈을 부릅뜨고 'Big Bother Is Watching You.’를 외치는 감시자. 선생님은 답을 가지고 계시지 않을까? 마침 담임 선생님과 전화 상담이 잡혀있어 선생님께 고민을 털어놓았다. 선생님은 나와 비슷한 성향의 분이었는데, 놀랍게도 같은 고민을 하고 계셨다. 그렇게 우리는 20분 동안 리더십에 대한 물음표를 주고받았다.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어떻게 발휘되어야 하는 것인가? 전화를 끊고 생각하니 선생님과 내가 주고받은 물음표들은, 좋은 리더의 롤모델 부재로 생긴 것 아닌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