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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정 Apr 15. 2022

통증의 이유

애도의 방식

복통이 시작된 것은 지난 월요일 부고 문자를 받고 나서부터이다. 부위를 특정할 수는 없는 통증으로 척추를 세우는  어려웠다. 물리쳐보려고 애써보았지만  되지 않았다. 퇴근한 남편과 조문을 가려고 준비하다 말고 남편에게 혼자 다녀오라고, 다음날 낮에 혼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남편은 진통제 챙겨 먹고 힘을 내서 자고 설득했다. ‘야속한 사람,’이라고 예전에 나였다면  그를 탓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슬픔을 몸의 통증으로 신체화하는 사람이었다. 심인성 복통이라는 걸 그도 나도 알았다. 진통제를   삼키고  위에 올랐다.


나는 얼마  존경하는 선생님이자 사랑하는 친구를 잃었다. 선생님은 나의 ‘친구였다(‘친구라는 관계의 정의를 선생님이 반기실 거라고 나는 믿는다.) 선생님이 떠나시고 그의 부재를 매일매일 꼈다. 슬퍼서 울다가 선생님이 내게 가르쳐주신  ‘유쾌함’이라는 게 떠올라 아이들 틈에 끼어 히죽거렸다.  어느 때고 아팠다. 잠을   수도 없었다. 아무 소용도 없는,  무력한 아픔은 뭐람? 팽팽하게 잡고 있던 일상의 줄을  놓아버리고 바닷가로 왔다. 파도 소리가 들려오고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방에 누워 점심밥도 거른 채  낮잠을 잤다. 잠결에  너머 물결 위로 윤슬이 드는  보았다. 부서지며 더욱 찬란해지는 빛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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